손 쓸 수 없는 바보스러운 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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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쓸 수 없는 바보스러운 누리
  • 최종규
  • 승인 2010.12.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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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모치즈키 미네타로, 《동경괴동東京怪童 (1∼2)》

 기계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이곳입니다. 기계가 아닌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이 누리입니다. 기계가 아닌 아이들이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는 이 나라입니다. 기계가 아닌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꽃과 열매를 맺기에 비로소 먹을거리를 얻는 우리 터전입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가르치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 마을입니다.

 그렇지만 이곳 이 터 이 자리를 돌아볼 때에는 사람이 잘 안 보입니다. 온통 기계투성이입니다. 사람이 다루는 기계라 하지만,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맨 기계들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이라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누리에 자리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이제 와서 헤아린다면 퍽 우스운 이야기요, 이 우스운 이야기마저 사람들은 차츰 잊는다고 느끼는데, 예부터 한겨레 사람들은 ‘마음이 따스하며 사랑이 깊은 겨레’라 일컬었다고 합니다. 이웃을 아끼며 서로를 포근히 보살피는 겨레라 했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우리네 역사를 거슬러 봅니다. 참말 이 말이 맞을까 싶기도 하지만 틀리지도 않으리라 느낍니다만, 정치권력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따스하거나 사랑 깊은 사람은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정치권력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웃 나라나 겨레하고 싸움을 벌였고, 파벌을 이루었으며, 농사짓는 사람들 삶하고 동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사람들을 신분으로 가르고 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많이 배우거나 많이 가지거나 많이 누리는 사람들치고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모습은 퍽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적게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들, 적게 가지거나 못 가진 사람들, 적게 누리거나 못 누리는 사람들한테서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모습을 마주한다고 느낍니다.

 배고픈 거지는 임금님이나 사대부한테서 밥 한 그릇 얻지 못합니다. 배고픈 거지는 임금님 사는 궁궐은커녕 궁궐 둘레로 발을 들이지조차 못합니다. 사대부 으리으리한 집 대문을 두드리지도 못합니다. 배고픈 거지는 당신하고 비슷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문을 두드리며 밥 한 그릇 얻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배고픈 사람이 돕고, 마음 아픈 사람은 마음 아픈 사람이 돌봅니다.

 지난날 이 나라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는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며 밑바닥이었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너나 없이 밑바닥인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도우며 사랑하는 가운데 따스함과 넉넉함이 꽃피었다고 느낍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너나 없이 배가 부를 뿐 아니라 돈이고 이름이고 힘이고 많이 움켜쥘 뿐더러 많이 누리기 때문에, 따스함이랑 넉넉함을 잃는구나 싶습니다.

- “그래, 넌 사실밖에 말 못하지. 많이 힘들 거야. 하지만 이게 현실이야.” “저 나무, 싫어. 여전히 죽고 싶은 기분이야. 내 인생은 엿 같아.” “그렇지 않아. 다 왔다.” (1권 50∼51쪽)
- “나도 알아. 다들 이유가 있다는 것쯤은! 나도 나쁜 뜻은 없어. 입이 더러운 건 내 병이야. 하지만 약으로 낫는다며.” (1권 63쪽)
- “그림에도 자주 나오잖아. 고흐도 저 측백나무가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렸어.” “고흐. 더 잘 듣는 약을 줘. 다 토했더니 효과가 없잖아. 물리요법으로는 해결 안 나는 병이라니까.” “바보한테 듣는 약은 없어. 그야 네 병은 생각한 것을 숨김없이 다 입 밖으로 뱉는 증상이긴 하지. 하지만 결국 네멋대로 사람을 바보 취급 하고 있는 것뿐이잖아. 자신의 미숙함을 자각하는 인간은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이야. 본인은 원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다들 마음속의 부담을 가지고 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무리하게 살지 말고 솔직하게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아마도 그 방법밖에 없을 거야.” (1권 87∼88쪽)

 만화책 《동경괴동》을 생각합니다. 모두 세 권으로 마무리된 작품이고, 일본책에 붙은 이름은 “東京怪童”입니다. “도쿄에 사는 괴물 아이”라는 뜻입니다. “도쿄에 사는 끔찍한 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볼썽사납거나 못 말린다거나 짜증스럽거나 미친 아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 일본 도쿄에서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정신병원과는 또다른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더욱 따순 손길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1권과 2권을 가만히 보다가는, 3권이 나온 뒤 1권과 2권을 다시금 넘기며 생각합니다. 이들 “도쿄 괴물 아이”를 보살피거나 돌보거나 아픔을 씻어 주겠다는 사람들은 ‘기계와 다를 바 없는 도시에서 겉모습을 감춘 채 지식을 높이 쌓아올린 사람’들입니다. 학문으로 파헤치고 돈을 들여 좋은 시설을 갖추어 놓습니다. 그러나, 학문이든 시설이든 옳고 바르게 건사할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되려나요. 참말로 마음과 마음으로 “도쿄 괴물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어른은 몇이나 있으려나요.

 입으로 내뱉는 소리가 아닌,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마음이 보여주는 모습을 읽을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 “이 목소리는 하시? 그런 거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게 그 애라고?” “이 감촉, 역시 우리 애야. 엄마인 난 감각으로 알겠어.” “당신은 지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잤잖아! 머리가 이상해진 거야!” “하시가 돌아왔다구요!” “이렇게 기분 나쁜 괴물이 우리 애라니. 그리고 그 애는.” (1권 111쪽)

 사람은 한손에 한 가지를 쥡니다. 한손에 두 가지를 쥐지 못합니다. 먼 옛날 옛적 이야기를 떠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요, 누구도 모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한손에는 한 가지만 쥡니다. 한손에 사랑을 쥐었으면 돈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돈을 쥐었으면 사랑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이름값을 쥐었으면 믿음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믿음을 쥐었기에 이름값을 쥐지 못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은 한손에 사랑이나 믿음을 쥐지 않습니다. 한손에 두 가지 다 쥐려 하면 못 쥐는 만큼, 한손으로 사랑하고 믿음을 함께 쥐려 하다가 그예 놓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데, 왼손에는 사랑을 쥐고 오른손에는 믿음을 쥐면 놓칠 일이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손에 책만 쥐어야지, 이 한손으로 책과 지식을 함께 쥐려 하면 둘 모두 놓칩니다. 책하고 지식은 사뭇 다를 뿐더러 한동아리가 될 수 없는데, 숱한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에 자꾸만 지식을 움켜쥐려 합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면 넉넉하고, 책 하나로 내 삶을 따숩게 돌아보면 흐뭇하지만, 이 흐름을 옳게 새기지 못합니다.

- “전에는 모두가 날 이해해 주기를 바랐지만, 하지만 지금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난 나의 이 인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겠으니까 적어도 나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하는 것뿐이에요. 지금은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 (1권 159쪽)
- “넌 입만 열면 사랑해 줘, 사랑해 줘, 나를 사랑해 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사랑받고 싶단 생각만 하느라 다른 사람 일은 아무래도 좋은 거지? 사랑만 받을 수 있다면.” (1권 184쪽)

 아이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은 몸이 아픈 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바랍니다. 아이들은 멋진 옷이나 예쁜 집이나 빠른 차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말을 섞을 벗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비싸구려 손전화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몸소 보고 배울 뿐 아니라 즐거이 함께 살아가고픈 어른을 꿈꿉니다. 아이들은 대학교나 유학 따위를 꿈꾸지 않으며, 변호사나 판검사나 의사 같은 어버이를 꿈꾸지 않습니다.

- “그건 ‘너희’는 애초에 이상한 사람이고, 너는 사고로 머리에 이물질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하는 거야? 내가 왜 이런 멍청이를 상대로 잠시라도 말을 꺼냈을까. 대체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넌 네 머리 때문이 아니야. 너라는 인간 자체가 저질인 거잖아!” (2권 15∼16쪽)
- “아니, 하나도 안 괜찮아.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래, 하지만, 그건 병이 아니라도 다들 그런단다.” (2권 155쪽)

 적잖은 어버이들은 당신들이 돈을 조금밖에 못 벌어 당신 아이들을 더 따스히 돌보지 못하는 줄 잘못 알기 일쑤입니다. 당신들이 한 달에 70만 원밖에 못 번다 한들 아이들이 당신들한테 서운하다고 느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값싼 튀김닭 한 마리 사 주지 못한다 해서 아이들은 하나도 싫어한다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동무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식은밥에 김치쪼가리 하나일지라도 밥상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울 살가운 어버이를 바랍니다. 자가용으로 학원이나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돈 많은 어버이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걸어가느라 한참 걸리지만, 서로 손을 따숩게 꼬옥 잡으면서 얼굴을 마주보는 가운데 이야기꽃 피울 줄 아는 어버이를 기다립니다.

 어려운 일이란 한 가지도 없습니다. 하나같이 쉬운 일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할 때에 학교버스나 자가용 따위에 태울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아이랑 함께 학교에 가면 됩니다. 아이랑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더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아이를 굳이 학교에 안 보내겠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까닭은, 어른들이 바깥에서 돈을 벌 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하고픈 일과 놀이’ 때문이니까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배우지, 학교에서 교과서랑 교사한테서 배우지 않아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에 독도가 있다는 지식을 갖추어야 나라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내 동네에서 식구들이랑 조용히 살아가면서 넉넉히 나라사랑을 합니다.

 더 아낄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애써 도시에서 살아갈 뜻이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온몸 가득 자연을 껴안으면서 자연스러운 넋을 북돋울 때에 아이들 또한 온마음 가득 자연을 보듬으면서 자연스러울 얼을 살찌웁니다. 아이들한테는 ‘자연그림책’을 사다 주어 읽히지만, 정작 어른들부터 자연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어른들부터 자연을 헤아리는 책 한 줄 못 읽으며 지냅니다. 아이들이 자연을 알고 느껴야 한다면 어른들 또한 자연을 알고 느껴야 하는데, 막상 어른들은 자연하고는 등을 진 채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돈벌이에 얽매입니다.

- “부장님, 병 때문에 불감증에 걸린 환자 있댔죠? 누가 더 나을까요?” “무슨 그런 질문을 해. 나도 이 나이까지 이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왔어. 물론 다른 인생도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잖아?” (2권 193쪽)

 만화책 《동경괴동》을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일본 도쿄라는 곳은 한국 서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두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이랑 꾸리는 삶은 다르다지만, 두 곳은 서로 한몸과 같다 할 만합니다.

 일본 도쿄 아이들은 티없이 맑으며 사랑스러운 아이로 크기보다는 괴물 아이로 크고 맙니다. 한국 서울 아이들 또한 해맑게 빛나며 어여쁜 아이로 자라기보다는 괴물 아이로 자라고 맙니다.

 학교 건물이 너무 큽니다. 도시가 너무 큽니다. 한 학년 학급 수가 너무 많습니다. 학급마다 아이가 너무 많습니다. 교사들이 한 학교 모든 아이들 이름조차 ‘외우지’ 못합니다. 아이들 숫자가 너무 많으니 ‘이름 외우기’를 해야 하는데, 이름조차 못 외우는 판에 아이들 삶과 아이들을 둘러싼 삶과 삶터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골학교가 한결 낫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다만 가장 학교다운 학교라 할 때에는 한 동네나 마을에 하나씩 아주 조그맣게 꾸리는 학교입니다.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무주임 같은 자리는 따로 없이, 오로지 아이들 삶을 헤아리는 교사만 있는 학교일 때에 비로소 학교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참다운 ‘배움터’ 노릇을 하겠지요.

 배우는 터전이어야지 가두는 터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가는 터전이어야지 옭죄는 터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지고 보면, 도쿄이든 서울이든 아이들도 너무 많이 득시글대지만, 어른들부터 지나치게 많이 복닥거립니다. 알맞게 얼크러지고, 살가이 어우러지며, 따숩게 얼싸안을 때에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 우리보다 더 손 쓸 수 없는 사람이 있는지, 난 알고 싶어졌어.” (2권 198쪽)

 더 손을 쓸 수 없도록 망가지면 어찌 될는지 모릅니다. 더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만, 자꾸자꾸 바보스러운 길에 붙들리다 보면 내가 바보인지 내가 사람인지 내가 기계인지 내가 돌멩이인지 내가 멍텅구리인지 내가 이웃인지 내가 목숨붙이인지 내가 나무인지 내가 컨베이어벨트인지 헷갈리다가 그만 고꾸라집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사람다이 살아가며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나 스스로 어린이임을 느끼고, 어른들은 당신 스스로 어른임을 깨달아, 우리 둘레에서 피고 지는 꽃을 알아채고, 우리 둘레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알아보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와 흙과 하늘과 바람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언제나 고마운 하루이고, 늘 새롭게 빛나는 하루이며,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고맙게 보내며 즐거운 하루이고, 새롭게 빛내며 알찬 하루이며, 사랑스레 누리며 오붓한 하루입니다. “도쿄 괴물 아이”들은 시설 좋은 병원에서는 그저 괴물 소리를 듣는 아이로 늙어 버립니다.

― 동경괴동 (1∼2) (모치즈키 미네타로 글·그림,이지혜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10/42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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