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 장학재단 "있으나 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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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 장학재단 "있으나 마나?"
  • 이병기
  • 승인 2011.02.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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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지원방안 부족 … 선정기준이나 등록금 지원시기 "아쉽다"


취재: 이병기 기자


지난해 4월, 모 정치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B장학재단의 장학금 전달식 모습

"인천에서 280만원의 등록금을 내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가정형편이 어렵고 장애가 있는 아이가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등록금을 마련해주고 싶은 게 다는 아니에요. 그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자신을 도와줬던 상담사처럼 '심리학을 공부해 인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기특했죠. 지역의 알 만한 장학재단에 모두 전화해 봤지만, '지원조건이 있다', '시기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지역 장학재단이라는 곳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돈을 잘 뿌리고 있을까', '치적만 자랑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올해 초 부평구 Y군을 취재한 지방일간지 K기자는 울분을 토했다. 장애와 불우한 가정형편을 딛고 서울대학교에 수시합격한 Y군. 인천으로 돌아와 자신처럼 방황하는 후배들을 돕겠다는 그 아이는 '형식'과 '절차' 때문에 서울대에 합격했어도 돈이 없어 진학하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아까운 인재를 놓칠 수 없다는 일념으로 K기자는 Y군 고등학교 동문을 비롯해 백방으로 후원자를 알아봤고, 결국 기한 내에 구할 수 있었다. 한 아이의 인생이 주변의 도움으로 희망의 불씨를 이어간 순간이었다.

6일 현재, 인천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에서 장학재단으로 등록된 곳은 60곳에 이른다. 인천시나 옹진군 등 행정기관에서 만든 장학재단을 비롯해 기업, 정치인, 사회단체 등 다양한 운영주체들이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고등학생의 경우 1년치 전액 장학금, 액수가 큰 대학생은 등록금 중 일부를 지원하는 게 대다수다.

그러나 장학재단 대부분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보다는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경우에도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치적'에만 신경쓰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많은 장학재단들이 자신들의 예산집행 시기에 맞춰 장학금을 내놓다 보니 Y군처럼 정작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야 할 시기에는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나오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1회성으로 '돈'만 전달하는 단순지원이 아닌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필요하며, 취약계층 청소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심리·정서적이나 가족지원 등 다각적이고 통합적인 지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지난 1975년 설립 당시부터 장학사업을 진행하는 S재단은 현재까지 5500명에게 22억원 가량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S재단은 지역 각 고등학교 교장들에게 1명씩 추천받아 1년 전액 학비를 전달한다.

대학생의 경우 1학기와 2학기로 나눠 140만원씩 두 번 지급하는데, 인천에 위치한 대학 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 한해 학교장 추천을 받는다. 지급 시기는 3월께 학생을 선발한 후 등록금 납입 영수증을 가져오면 장학금을 지급한다.

S재단 사무국장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후원회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성적 우수자녀나 근로자 자녀, 100일장 수상 자녀 등 분야별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꼭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역 국회의원이 대표로 있는 B장학재단은 연간 고등학생 15~20명, 대학생 30명 등 약 5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고등학생은 1년치 180여만원, 대학생은 300만원을 준다.

선정은 각 학교 교장에게 추천을 받아 지급한다. 대학생은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중 해당 학교장 추천을 받은 학생에게 졸업할 때까지 지원하는데, 단 학점이 3.3 이상이어야 한다. 

이곳 역시 3월 말에서 4월 초께 등록금 영수증을 가져온 학생에 한해서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B장학재단 관계자는 "대학 신입생의 경우 일단 등록은 자기 돈으로 하고, 나중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면서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K장학재단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매달 수령하는 세비 총 1억5천만원을 모아 장학기금으로 마련했다. 작년 말 설립된 이곳은 50개 초중고교 학생 160여명에게 50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다만 세비 전액을 기부한 국회의원은 재단 임원도 아니며, 운영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   

전국조직으로 인천에 지부를 두고 있는 A재단도 1월 말까지 각 지부에서 추천을 받아 3월 중순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작년에는 인천에서 11명이 장학금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6년도부터 인천장학회를 운영하는 인천시는 지난해 282명에게 2억4천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인천시도 일반 민간장학재단과 비슷하게 1년에 한 번 6~7월경 일괄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한다. 그러나 2010년도까지는 1회성으로 진행돼 사후관리 측면에서는 부족함을 드러냈다.

시는 올해부터 지속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며,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인천시장학회는 지난 12일 시장 접견실에서 교육환경이 열악한 서해5도 지역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대청고등학교 백진성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장학재단 운영해야

부평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중인 D교사는 "민간 장학재단은 성적순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학년별로 인원을 배정하고 학년협의회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데, 특정한 기준을 지정하지 않으면 모호해지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D씨는 "장학재단 지원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면 바람직하겠지만, 좋은 취지로 시작했어도 정치적 목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데, 정말 어려운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장학금이 지원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2학년을 가르치고 있는데 35명 중 7명이 국가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국가 지원을 받는 아이들은 서류를 일정하게 갖춘 경우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 중에서도 실제로는 빚더미에 쌓인 아이들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유해숙 안산1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 장학재단의 경우 수혜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장학금을 주기 일쑤"라면서 "장학금의 취지가 실질적으로 삶의 희망을 얻고, 독려하기 위함인데, 공급자 입장에서만 지원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수치심 등의 스티그마(stigma)를 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장학금을 지원하는 선발방식에서부터 전달과정, 사후 효과까지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고 '사진 찍기'나 '생색내기', '기업홍보'를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면 받는 학생들이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더구나 성적 장학금이 아닌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주는 장학금은 학생들이 스스로 처지를 알기에 더 부담스러워 한다고 유 교수는 말한다. 그들이 '돈'이 없어 할 수 없이 받아야 한다면, '키다리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기업이나 복지가들이 의미 있고 좋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장학금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과정에서 자칫 취지와는 다른 효과가 날 수 있다"면서 "장학금을 받았던 한 아이 말로는 '불우이웃으로 낙인이 찍혀 차라리 받지 않으면 좋은데, 그래도 부모님 돈 벌어준다는 마음으로 받았다'라고 해 마음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어른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왜 고마워 하지 않지?', '돈을 주는데 왜 태도가 저렇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대상으로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등록금을 준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면서 "단순지원이나 숫자를 늘리기 위한 지급보다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인기 있는' 학생, 즉 공급자가 좋아하는 학생의 경우 장학금이 '독'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년소녀가장인 한 학생이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아 돈을 지니게 되고, 보호할 만한 어른이 없는 그 아이의 집은 동네의 일탈 학생들의 온상으로 되는 경우가 있다고 유 교수는 말했다.

그는 "이 사회에서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지원돼야 한다"면서 "더불어 취약계층 청소년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할 수 있는 다각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아이들의 심리적 상담이나 가족 지원, 교육 관련 상담 등 민관이 협력해 지원하면 장학금을 매개로 굉장히 의미 있는 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게 유 교수의 충고다.

유해숙 교수는 "장학재단이 '돈' 뿐만 아니라 아이의 문제가 되는 많은 부분들을 분석하고 사후관리까지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청소년 전문기관이나 공적기관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문적, 유기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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