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지역아동센터들 "문 닫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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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역아동센터들 "문 닫을 판"
  • 이혜정
  • 승인 2011.02.15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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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거부'로 운영비 50% 삭감 현실화 … '피해자는 아동'


인천지역의 한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
미술수업 시간에 종이를 잘라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취재: 이혜정 기자

보건복지부가 '지역아동센터 평가'를 거부한 인천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를 50% 삭감했다. 이 때문에 지역아동센터들은 운영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결국 그 피해는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4천여 명의 아동이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빚어지게 됐는지를 살펴보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9년 9월 처음으로 아동센터들이 본연의 아동 보호와 프로그램 지원 기능 등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천 지역아동센터 130여 곳이 평가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현재 지역아동센터 평가를 받지 않은 인천 지역아동센터 130여 곳은 올해부터 절반의 운영비만 지원받고 있다. 아동 10명 이상 29명 이하(종사자 2명)일 경우 월 370만원의 운영비를 지급하고, 평가를 거부한 시설은 절반인 185만원만 받는다. 10인 이하(종사자 1명) 시설은 월 125만원을 못 받는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평가 우수 시설에 대해선 운영비 외에 100만원씩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당연히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은 '보복성 페널티'라는 주장을 한다.

이런 결과 정부 평가를 통한 운영비 연계 방침에 거부한 인천 지역아동센터 130여 곳은 운영비 50% 삭감이 현실화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인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와 학부모들이 
서울 종로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가 미참여 시설에 대한 운영비 50% 삭감 철회 및 피해 아동에 대한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모습.


지역아동센터들은 운영난으로 "문 닫을 판"

남동구 만수동에서 아동들을 돌보기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지역아동센터 예꿈마을 윤귀염(43)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줄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도 단순히 평가를 거부한다고 운영비 50%를 삭감한다는  건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몇몇 후원자 도움으로 간신히 운영해 왔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그것마저도 줄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

예꿈마을은 지난 2002년 공부방으로 시작해 저소득층 아이들이 밀집해 있는 만수동 일대를 떠나지 않고 10여 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이곳은 한동안 후원금과 자원봉사만으로 운영해 왔다. 특히 시설장과 교사(사회복지사)의 헌신적 노력과 지역민들의 도움으로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꿈마을은 2005년 지역아동센터로 변경되면서 현재 국비와 시비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도까지는 아동 수에 따른 운영비 300만원과 급식비, 복지기관 파견 교사,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운영을 했다. 운영비 지원액 중 25%는 교재비, 도서구입비, 각종프로그램 재료비 등 프로그램 운영비용으로 한정돼 있다. 나머지 75%로는 두 명의 인건비, 운영전반에 필요한 공간운영비(공과금, 시설비) 등으로 충당을 했다.

그런데 2009년 들어 보건복지부가 지역아동센터들을 평가해 평가점수에 따라 운영비를 200만원~350만원까지 차등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때 평가점수에 따라 하위 5%에는 전액을 삭감하고, 하위 15%에는 50% 삭감한 운영비를 지급했다.

예꿈마을은 다른 인천 지역아동센터들과 함께 2009년도 평가결과에 따른 운영비 차등에 대해 반발했고, 2010년도 지역아동센터 평가를 거부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10년 평가를 거부한 지역아동센터들에 대해 올해부터 50%를 삭감한 185만원을 지급했다.

이로 인해 예꿈마을은 운영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그동안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급여와 부족한 운영비로 전전긍긍해가며 센터를 운영해 왔는데, 운영비가 50% 삭감되면서 결국 둘 중 한 명의 인건비는 없어지는 셈이 됐다.

다른 지역아동센터는 공과금과 4대 보험료 등을 연체하고, 교사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한 지 7년 만에 교사(사회복지사)들도 바뀌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지역아동센터장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 못해 적금을 해지하거나 주택을 전세로 돌려 운영비를 보태기도 한다.

윤귀염 센터장은 "삭감하기 전 지원받은 운영비도 다른 사회복지기관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면서 "몇 달째 종사자들이 인건비를 받지 못하고 센터 운영비로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년 동안 시설을 이용한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제2의 집과 같은 곳"이라며 "운영상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빚이 많아 생활이 어렵거나 의료보험기준 몇 천원 차이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등 서류상 근거를 만들지 못하는 아이들을 자부담으로 보호하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윤 센터장의 얘기다. 

그는 "겨울방학에는 아이들이 오전 10시~오후 9시까지 센터를 이용하고 있지만, 운영비 부족으로 당장 월 평균 40만원의 난방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 지역아동센터들은 인천시에서 32만5천원의 난방비를 지원받았지만, 월 평균 난방비용에 못 미쳐 실질적으로 난방비 문제를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평가 자체가 아닌, 평가방식이 문제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9년 지역아동센터의 공공성, 책무성 인식 및 서비스 질 향상, 제도 개선의 기초자료 확보 등을 이유로 전국 지역아동센터들을 평가했다. 이 평가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는 하위 5%에 해당하는 센터는 운영비 전액삭감, 하위 15%는 운영비 50%를 삭감했다. 평가 이전에는 정부에서 예산을 확보하는 대로 200여 만원의 운영비를 전국 지역아동센터에 매달 지급해 왔다.

이에 인천시내 170여 개 지역아동센터들은 현장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평가위원들의 평가지표, 높은 적성평가 기준, 타 복지시설과 다른 평가주기 등 정부의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고 아동센터를 줄 세우려 한다며 평가를 거부했다. 특히 복지부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아동을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으로 한정지으면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나 홀로 방임아동'의 소외를 더욱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아동센터 반발에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평가지표 및 평가 절차 등을 일부 수정해 2010년 평가를 강행했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아동센터들은 평가를 수용했지만, 인천 지역아동센터의 80%인 130여 곳은 평가를 거부하면서 복지부와 대립해 왔다. 이 결과 2010년 평가를 거부한 인천 지역아동센터들은 올해부터 운영비를 50% 삭감된 185만원밖에 받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인천 지역아동센터들은 지난달 5일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복성 페널티' 적용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평가방법을 절대평가로 전환해 평가 통과 최저 점수를 40점으로 변경하면서 운영비 삭감이 적용된 곳이 거의 없어 실질적으로 운영비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우선 평가거부를 자율적 운영 의사표시로 간주하고 운영비 삭감 지침을 인천시에 통지했고, 올 평가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평가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19일에는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학부모들이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평가결과와 운영비 연계라는 부당한 방침으로 피해 아동에 대한 대책마련 없이 운영비 50%를 삭감한 데 대해 복지부가 모든 책임을 지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평가 미참여 아동센터 운영비 50% 삭감 철회를 비롯해 평가 결과와 운영비 연동 철회, 운영비 삭감으로 인한 아동피해 대책 마련 등 아동센터 종사자와 학부모들의 의견을 담은 탄원서 2000부와 성명서 600부를 보건복지부와 인천시청, 국민인권위원회, 청와대 등 4곳에 전달한 상태다.

'아이들 피해'는 누가 책임을 지나?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인 공부방은 1995년 전국에 100여 곳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7년 IMF를 거치면서 2000년에는 500여 곳으로 급증했고 현재는 3500 곳을 넘었다. IMF 이후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방임아동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전국적으로 20여만 명의 아동들이 지역아동센터, 방과 후 보육시설, 종일 돌봄 교실 등에서 보호받는다. 하지만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도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난해 정부의 평가방식을 거부한 인천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 지원금 삭감은 종사자와 아동들이 1차적 피해자다. 130여 아동센터 한 곳 당 아동 수가 29명이라고 해도 3천770명 정도가 피해를 입는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가를 거부한 시설에 50%의 운영비 지원금을 지급한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음에도 아이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평가를 하지 않고 지난 2009년과 2010년 평가 내용을 갖고 전반적인 평가제도를 만들어 2012년에 다시 평가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황미숙 (사)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인천지부 대표는 "보건복지부가 운영자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정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어 아동복지발전을 후퇴시키고 있다"면서 "올해 많은 지역아동센터들이 문을 닫으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올바른 평가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음에도 이를 만들지 않은 채 평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운영비를 삭감한 것은 복지부가 보복성 조치를 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운영비 연계 문제를 넘어 아동센터 평가 제도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힘을 쏟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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