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터널, "밑 빠진 독에 세금 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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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터널, "밑 빠진 독에 세금 붓기"
  • 이병기
  • 승인 2011.03.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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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이슈] 인천시, 사업자 유리하게 제도 만들고 이젠 "나 몰라라"


문학터널 주변 약도

취재: 이병기 기자

"민자터널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게 만든 데엔 여러 사람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선 정책 당국자들이 민자사업 활성화에 매달리다가 사업자에게 너무 유리한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준 게 하나 있어요. 협상 과정에서 자기 돈이 아니었으니까요. 또 민자사업에 전문가가 동원됐는데, 용역 과제가 상당부분 발주처 의지에 맞춰지기 일쑤였죠. 과거에는 사업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놓고 실수를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 허동훈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2002년 이후부터 개통된 인천지역 3곳의 민자터널이 올해까지 1천200억여원의 '혈세'를 낭비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인천시 재정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올해도 170억원의 예산이 민자터널 최소운영수입보장지원금(MRG)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인천시는 뚜렷한 대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초 협상 당시 시민들의 세금 낭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업자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했던 인천시는 이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민자터널 사업지원을 방치하면서 향후 길게는 20년이 넘는 기간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소모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인천시가 부채를 발행해서라도 부분, 또는 전체 민자터널을 매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준비나 사회복지 지원 등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어 해마다 지적되는 '밑 빠진 독' 민자터널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인천시는 1990년에 중반 이후부터 지역 간 주요 연결도로망 확충과 구도심 교통상습정체지역 교통난 해소를 목적으로 민자터널 사업을 추진했다.

최초 개통된 문학터널(운영기간 2002년~2022년)을 시작으로 천마터널(2004년~2034년), 만월산터널(2005년~2035년)에 대해 20년에서 30년 단위로 추정 통행료 수입의 90%(문학, 천마터널)와 73.9%(만월산터널)를 지원하기로 사업자와 협약했다.

그러나 짧게는 5년에서부터 길게는 8년 동안 민간 투자액(문학: 703억원, 천마: 543억원, 만월산: 942억원) 2천188억원의 절반가량을 투입하고도 향후 10년~20년이 넘는 기간 해마다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해야 할 처지다.


천마터널

예산을 낭비하는 가장 큰 원인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추정통행량 측정'에서 비롯된다.

그나마 교통량이 나은 문학산터널의 경우 한국교통연구원(KOTI)이 조사한 2010년 추정통행량은 5만5천대이지만 실제 하루 평균 통행량은 3만4천705대로 추정치의 63%였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천마터널은 하루 평균 통행량이 1만276대로 28.8%에 불과했으며, 만월산터널도 2만292대로 38.9%를 기록했다.

인천시는 각각의 터널에 당초 협약한 추정치의 90%~73.9%를 최소운영수입보장지원금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도 17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인천시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된 일부 민자터널 인수설 등은 모두 잘못 나간 것"이라며 "민자터널 해결방안의 경우 아직까지 정확히 논의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민자터널 최선책은 '매입', 하지만 현실성 낮아

민자터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우려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 2005년 인천발전연구원에서 발표한 '문학산터널의 효율적 운영관리방안'을 보자. 인발연은 "수요 예측결과는 민자사업 추진의 중요한 판단기준이며, 이는 사업 추진여부 뿐만 아니라 시설규모와 사업시기, 사용료, 보조금, 최소운영수입보장금을 결정하는 기초 자료로 된다"면서 "중요한 만큼 제대로 된 예측이 필요하지만, 현재 운영중인 민자도로의 통행량 대비 실적 통행량은 대부분 예측의 절반을 밑돈다"라고 밝혔다.

인천발전연구원은 민자사업에서 교통수요를 과다하게 측정하는 이유로 최소운영수입보장금액이 예상수입의 90% 선으로 높게 책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장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예상수입을 늘려야 하고, 수요를 과장할 유인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허동훈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자터널 사업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설명하면서 "사업자에게 상황이 바뀌었으니 다시 계약하자고 하면 하겠냐"라고 말했다.

고속도로 터널은 출입구가 제한돼 있어 비용징수가 용이하지만, 시내의 경우 일부 구간만 통행료를 받으면 돈을 내지 않는 곳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즉, 우회도로가 막히지 않는 곳이라면 운전자들이 옆길로 빠지기 때문에 시내에서 돈을 받아 민자사업비로 회수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는 설명이다.


만월산터널

허 연구위원은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처음부터 인천시 재정사업으로 진행해야 했던 것"이라며 "통행량이 적은 구간은 시 재정수익으로는 잡히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게 시민 편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면서 "인천시가 민자터널을 모두 인수해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인천시의 열악한 재정형편상 현실적으로 택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허 연구위원은 차선책으로 통행료를 내려고 사람들이 더 다니게 된다면 그만큼 시의 재정부담도 줄고, 사회적으로도 이익이라고 한다. 하지만 몇 백원을 내린다고 해도 통행량이 늘지 않아 시 재정 부담만 증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민자터널과 이어진 도로들을 넓히고, 연결교통망을 확충하면 통행량이 늘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금석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사무처장은 "3곳 전체를 똑같은 방식으로 협상할 게 아니라, 각각 대응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면서 "인천시가 한꺼번에 매입이 불가능하다면 가장 적자가 큰 곳만 우선 매입하고, 다른 두 곳은 운영비율을 조정하는 등 어떻게든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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