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경지에 이른 소남의 『태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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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경지에 이른 소남의 『태현경』
  • 송성섭
  • 승인 2021.06.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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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소남 윤동규]
(13) 소남과 태현경②
인천의 잊혀진 실학자, 소남(邵南) 윤동규(1695~1773) 탄생 325주년를 맞아 [인천in]은 소남의 삶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기획해 격주로 연재합니다. 송성섭 박사(동양철학),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원재연 박사,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 3분이 집필합니다.

 

조선시대에 『태현경』은 학문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는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역』에 관한 기록은 많지만, 『태현경』에 관한 언급을 찾을 수는 없다. 전한(前漢)을 무너뜨리고 신(新)왕조를 창건하여 중국 역사상 최초의 '찬탈자'로 평가받는 왕망(王莽)의 대부(大夫)가 양웅(揚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선 태종 때에는 문묘의 제사에서 양웅이 축출되었고, 양웅의 신주(神主)는 막히고 가려져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묻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정조(正祖)는 『일성록(日省錄)』에서 “《태현경(太玄經)》도 매우 훌륭하다.”고 말한 바 있으며, 퇴계도 《태현경(太玄經)》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는 『태현경』에 대한 연구가 제법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태현경』은 조선시대 중요한 문헌 중의 하나였던 『주역』과 도(道)는 같지만, 법(法)은 다르다. 『태현경』 중에서 천현(天玄)은 중(中, , 一方一州一部一家)에서 시작되는데, 『주역』의 중부(中孚)괘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진(晉)의 범망(范望)의 주해에 따르면, 중(中, )은 24절기 중에서 동지(冬至)에 해당하며, 해(日)는 28수(宿) 중에서 북방7수의 우수(牛宿) 1도(度)에서 시작하고, 북두칠성은 자(子)의 위치에 있고, 12율려(律呂) 중에서는 황종(黃鍾, 서양음악의 도에 해당)에 들어맞으며, 하(夏) 나라의 11월에 해당한다.

지현(地玄)은 경(更, , 二方一州一部一家)에서 시작되며, 『주역』의 혁(革)괘에 해당한다. 24절기 중에서 곡우(穀雨) 절기가 경(更)의 첫 번째에서 시작된다. 북두는 진(辰) 방향을 가리키고, 12율려(律呂) 중에서 고선(姑洗, 서양음악의 미에 해당)을 사용한다. 경(更)의 첫 번째에 해(日)는 서방7수 중에서 묘수(昴宿) 9도(度)에 들어간다.

인현(人玄)은 감(減, , 三方一州一部一家)에서 시작되며, 『주역』의 손(損)괘에 해당한다. 24절기 중에서 처서(處暑) 절기가 감(減)의 첫 번째에서 일어난다. 북두는 신(申) 방향을 가리키고, 12율려(律呂) 중에서 이칙(夷則, 서양음악의 솔#에 해당)이 사용된다. 감(減)의 첫 번째에 해(日)는 남방7수 중에서 익수(翼宿) 15도(度)에 들어간다.

『태현경』은 천현(天玄) 27수(首), 지현(地玄) 27수(首), 인현(人玄) 27수(首), 총 81수(首)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천현(天玄) 27수(首): 中⸱周⸱礥⸱閑⸱少⸱戾⸱上⸱干⸱⸱羨⸱差⸱童⸱增⸱銳⸱達⸱交⸱耎⸱傒⸱從⸱進⸱釋⸱格⸱夷⸱樂⸱爭⸱務⸱事

지현(地玄) 27수(首): 更⸱斷⸱毅⸱裝⸱衆⸱密⸱親⸱斂⸱彊⸱睟⸱盛⸱居⸱法⸱應⸱迎⸱遇⸱竈⸱大⸱廓⸱文⸱禮⸱逃⸱唐⸱常⸱度⸱永⸱昆

인현(人玄) 27수(首): 減⸱唫⸱守⸱翕⸱聚⸱積⸱飾⸱疑⸱視⸱沈⸱内⸱去⸱晦⸱瞢⸱窮⸱割⸱止⸱堅⸱成⸱䦯⸱失⸱劇⸱馴⸱將⸱難⸱勤⸱養

소남 선생은 『태현경』에 관하여 두 편의 글을 남겼다. 하나는 ‘서태현경(書太玄經)’이라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양자의 태현경 제편을 읽고 의문을 기록하다(讀楊子太玄經諸篇記疑)’라는 글이다. 이 중에 후자의 글은 『태현경』의 이론을 설명한 「현리(玄攡)」, 「현도(玄圖)」, 「현영(玄瑩)」을 인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이기에 제법 난해하다. 이에 반해 ‘서태현경(書太玄經)’은 『태현경』에 관한 기본적인 개요를 설명한 글인데, 소남 선생은 『태현경』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개 현(玄)은 모두 천(天)⸱지(地)⸱인(人) 삼방(三方)을 낳으며, 방(方)은 각기 천⸱지⸱인을 더하여 9주(州)가 되고, 주(州)는 각기 천⸱지⸱인을 낳아 27부(部)가 되고, 부(部)는 각기 천⸱지⸱인을 낳아 81가(家)가 된다. 1은 3이 되고, 3은 9가 되고, 39는 27이 되고 3,27은 99, 81인 것이다.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천⸱지⸱인으로써 서로 더하여 방(方)⸱주(州)⸱부(部)⸱가(家)를 낳는데 불과하니, 현(玄)은 그 중에 실려있는 것이다.”

 

讀楊子太玄經諸篇記疑 1
書太玄經 (1)

 

소남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태현경』은 천(天)⸱지(地)⸱인(人)을 계속 더하여 81가(家)에 이르는 3수(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현(玄)은 천(天)⸱지(地)⸱인(人) 삼방(三方)을 낳는다. 즉 현(玄)은 천방(天方) , 지방(地方) , 인방(人方) 으로 분화되고, 천방(天方) 은 또한 그 밑에 천(天)⸱지(地)⸱인(人) , , 을 낳고, 마찬가지로 지방(地方) 도 그 밑에 천(天)⸱지(地)⸱인(人) , , 을 낳으며, 인방(人方) 도 각기 그 밑에 천(天)⸱지(地)⸱인(人) , , 를 낳아 9주(州)가 된다. 9주(州)는 27부(部)가 되고(예를 들면, ), 27부(部)는 81가(家)(예를 들면, )를 낳는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태현경』은 천(天)⸱지(地)⸱인(人)에 기반한 3수(數) 체계를 그 특징으로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태현경』은 방(方)⸱주(州)⸱부(部)⸱가(家)의 2수(數) 체계를 포함한 천(天)⸱지(地)⸱인(人) 3수(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주역』은 3수 체계를 포함한 2수 체계이다. 『주역』은 음양 이기(二氣), 사상(四象), 팔괘(八卦), 64괘(卦)로 이어지는 2수 체계이면서도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를 포함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3수 분화의 세계관’이 수렵⸱유목 문화에 기반한 북방 샤머니즘 사유체계의 특징이며, ‘동북아시아의 모태문화’인데, 『태현경』의 수리체계도 북방 샤머니즘에서 기원한 ‘3수 분화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견해를 제출한 바 있다. 매우 흥미로운 견해이지만 따져볼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다.

『태현경』은 또한 이른바 「천부경(天符經)」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부경」은 1916년에 계연수(桂延壽)가 묘향산 석벽본을 탁본한 것이라고 하면서 1917년 단군교당에 보낸 후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후 1920년에 도교 사상가이자 정신철학자인 전병훈(全秉薰)이 그의 저서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에 「천부경」 해제를 실었다. 그런데 「천부경」에 대해 단군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고유의 경전이라는 견해도 있고, 불분명한 출처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회의하는 견해도 있다.

「천부경」은 모두 81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도 아직도 제각각인 형편이다. 「천부경」은 여전히 해독되어야 할 암호문서인 것이다.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천부경」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一析三極’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동일한 편이다. 즉 일(一)은 천⸱지⸱인 삼극(三極)으로 나누어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천부경」 중에서 『태현경』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바로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이라는 부분과 ‘大三合六生七八九’라는 부분이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은 곧바로 , , 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태현경』의 「현도(玄圖)」편에서도 “현(玄)에는 하나의 도가 있는데(玄에서 쓰이는 바는 一이고, 道는 나뉘어 三을 사용한다), 일(一)은 삼(三)으로써 일어나고, 일(一)은 삼(三)으로써 낳는다. 삼(三)으로써 일어나는 것은 방(方)⸱주(州)⸱부(部)⸱가(家)이다. 삼(三)으로써 낳는 것은 양기(陽氣)를 셋으로 나누어서 삼중(三重)이 된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삼중(三重)이란 一一, 一二, 一三을 말한다고 주석하고 있다. 이로부터 보면, 「천부경」에서 말하는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은 『태현경』에서 말하는 삼중(三重), 즉 ‘一一, 一二, 一三’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大三合六生七八九’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이는 ‘六生七八九’로 끊어 읽기도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大三合六生七八九’로 읽어야 제대로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서 ‘大三’이란 천방(天方) , 지방(地方) , 인방(人方) 을 의미하며, 1+6=7, 2+6=8, 3+6=9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즉 ‘大三合六, 生七八九’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태현경』의 「설법(揲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설법(揲法)」에 의하면, 천(天)의 산가지는 18이고, 지(地)의 산가지도 18인데, 지(地)는 산가지 세 개를 비운다.

이는 주역에서 대연(大衍)의 수가 50이지만, 49개의 산가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따라서 설법(揲法)에서는 33개의 산가지를 사용한다. 33개의 산가지 중에서 하나를 떼어내어 왼쪽 손가락의 새끼 손가락에 끼운다. 32개의 산가지를 임의의 두 부분으로 나눈 후에 한 쪽을 세 묶음씩 세면, 나머지가 1이나 2 또는 3이 된다(이것이 「천부경」에서 말하는 ‘大三’이다). 다시 다른 한 부분을 세 묶음으로 세면, 10 이하에 이르게 되는데, 나머지 산가지가 7이면 1획( )이 되고, 나머지가 8이면 2획( )이 되고, 나머지 산가지가 9이면 3획( )이 된다. 이를 네 차례 반복해서 하나의 수(首)를 얻게 된다. 이로부터 보면, ‘大三合六生七八九’는 『태현경』의 「설법(揲法)」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으며, 「천부경」은 그 족보를 따지자면 『태현경』과 친족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남 선생이 『태현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를 아직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소남문집』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지만 적어도 몇 가지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첫째로는 퇴계와의 관계이다. 성호 이익이 젊었을 때 『퇴계집』을 채록하였다가 신유년인 1751년 소남 선생에게 정리를 부탁한 일이 있다(『星湖先生全集』「答安百順」(壬申, 1752)). 이때 『퇴계집』에 수록되어 있는 『태현경』에 대한 기록을 보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퇴계가 『태현경』에 대해 해박을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소남은 퇴계보다 한발 더 나아가 『태현경』에 관한 한 조선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천문학과의 관계이다. 소남 윤동규 선생은 서방7수 중에서 ‘규(奎)’라는 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듯이, 천문학적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태현경』은 기본적으로 천문학을 배경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기에, 소남 선생 또한 태생적으로 『태현경』을 연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 소남보다 앞선 자가 없었던 『태현경』! 이번 기회에 남동문화원에서 『태현경』에 관한 심도 있는 공부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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