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우는 결혼이주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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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에 우는 결혼이주여성들
  • 이혜정
  • 승인 2011.09.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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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고부 갈등에 시달려 - 신중한 국제결혼 절실


 얼마 전 계양구 계산동 대한적십자사 인천시지사 북부봉사관에서 열린
 '다문화가정 친정가족맺기 결연식'.

취재 : 이혜정 기자

지난 2009년 6월 한국으로 시집을 온 베트남인 B(22)씨는 시집식구들과 갈등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편과 시누이,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그는 의사소통 문제, 문화적 차이 등으로 시집식구들과 잦은 실랑이를 벌인다. 특히 추석이나 설 등 명절에는 그런 다툼이 더 자주 일어난다. 

B씨가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처음 우리 문화를 접한 건 시어머니와 장을 보는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시장 가는 길, 시장에서 가격을 깎는 법, 물건 잘 고르기 등을 설명해줬다. 10여 차례 함께 장을 본 후 시어머니는 B씨 혼자 장을 보라고 했다. 시장에서 오이, 파, 생선 등 그날 저녁 반찬거리를 샀다. 조금 남은 돈으로 과일을 사들고 집에 갔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돈을 함부로 쓴다면서 당장 돈으로 바꿔오라며 그를 집밖으로 내쫓았다.

1년쯤 지나 집안살림을 B씨 혼자 감당하게 됐다. 한국말이 서툰 B씨는 한 달에 5만원을 주는 생활비로는 턱도 없어 "어머니 돈이 더 필요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살림도 못하면서 돈만 밝힌다며 오히려 꾸중을 했다. 

심지어 남편과 시누이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도망을 가기 위함이라고 여겨 화장실 가고 장보는 것 이외에는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 혹여 모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려면 친구와 친구 남편에게 확인 전화를 한 뒤에야 외출을 허락한다.

이뿐만 아니다. 집안일을 하고 잠시 방에 쉬기라도 하면, "젊은 애가 왜 이렇게 게을러"라며 쉬는 일조차 눈치가 보인다. 또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임신이 늦어져 시어머니의 또다른 간섭과 꾸중이 늘었다. B씨는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2년여 결혼생활을 하면서 늘 혼자인 거 같아 외롭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온 이주여성인 G(27)씨는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한 지 올해로 4년째다. 만 2세 된 딸을 두고 있는 그는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한 지 반 년 좀 지났을 때부터 남편이 술만 먹으면 폭언과 폭행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수줍음이 많고 착한 남편이기에, 그는 곧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술을 먹는 날은 늘어나고, 얌전하던 사람이 돌변해 발로 차는 등 폭력을 가하는 날도 늘어났다.

시어머니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 이유가 있어서 그런다며 두둔할 뿐, 오히려 G씨에게 문제가 있다면서 감시를 한다. 또 G씨가 출근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외출을 막아 고향친구들도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모든 걸 버리고 고향으로 가고 싶지만 아이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면서 "아이가 크면 돈도 많이 들어가야 하니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변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으로 이주를 한 상당수 외국여성들이 고부와 부부 갈등 등으로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발표한 '2011 외국인 주민현황'자료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및 귀화자가 경기 27.7%(5만8509명), 서울 23.2%(4만9천24명), 인천6%(1만2천583명), 경남 5.9%(1만2천509명), 충남4.9%(1만254명) 등으로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결혼이민자는 14만1천654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13.3%(1만6천567명)로 증가했다. 특히 전체 결혼이민자 및 혼인귀화자(21만1천458명) 중 89.2%(18만8천580)가 결혼이주여성이다.

통계청에서 인천지역 결혼이주여성 이혼을 연도별로 살핀 자료를 보면 2005년 136건, 2006년 214건, 2007년 320건, 2008년 488건, 2009년 530건 등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만 471건으로 11% 가량 줄었다.

특히 최근 4년간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사건이 4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이주여성 지원기관에서는 대부분 상담만으로 조치를 완료해 다문화가정 폭력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이 있는 다문화가정 내 성폭력 및 가정폭력사건은 지난 2007년 1천793건에서 지난해 6천985건으로 4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했다.

폭력사건 외에도 다문화가정에서는 부부 및 가족갈등, 법률 및 체류 관련 피해상담이 줄을 이어 2007년 전체 1만8천401건에서 지난해 6만1천393건으로 무려 4만3천여건이나 늘었다.

하지만 이주여성지원센터에서 피해상담 후 조치한 현황(지난해 기준)을 보면, 직접 상담 또는 2차상담 권고 등 '상담'으로 조치한 사례가 5만1천여건으로 전체의 90%를 넘는다. 반면 보호시설(0.85%)이나 전문기관(2.57%), 의료기관(0.19%), 수사기관(0.38%) 등 타 기관 연계는 불과 5% 남짓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서광석 (사)이주민사회통합지원센터 소장은 "다문화가정을 꾸려서 한국에 살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 가정을 보면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본국에 돈을 보낸다든가 고향 방문을 하고 싶은데 여력이 없어 찾지 못하는 등 경제적 문제로 여러 가정불화를 겪기 일쑤"라고 말했다.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결혼이주여성들이 도망을 갈까 생활비를 적게 준다든가 하는 이유로 결혼여성이민자와 한국 남성 간 갈등이 불거지기 예사라고 한다.

서 소장은 "한국사회 고부 갈등은 점차 해결되고 있다고 보지만, 여성결혼이민자들에게는 몇 십년 전 고부 갈등이 답습되고 있다"면서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외국인 배우자의 문화와 언어 등을 배워 상대를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같은 한국 남성과 여성이 결혼을 해서도 여러가지 갈등이 발생하는데, 문화와 언어 등이 매우 다른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면서 "최소한 외국인 배우자가 한국에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서 소장은 "단순히 국내 배우자를 얻을 수 없어 외국에서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제결혼을 한다면, 거의 다 결혼생활에 실패를 하게 된다"면서 "다문화가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부터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7명의 영정 

'노르웨이 연쇄테러'가 주는 교훈

얼마 전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연쇄테러'는 다문화주의에 심한 반감을 가진 우익 극단주의자가 저질렀다. 유럽에선 경제 불안과 정치 우경화로 일반인까지 다문화주의를 공격하는 경우가 늘고,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도 심해졌다. 정체성 혼란에 휩싸인 이민자 2세들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사회적 갈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얘기처럼 보이지만,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한국에선 매년 2만5000여 쌍이 국제결혼을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는 14만여 명에 이른다. 과연 이들이 일반 한국인 가정 자녀들과 차별없이 학교에 다니고, 취업과 결혼을 해 한국사회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 2등 국민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

베트남국립정치행정연구원 응오 티 응옥 안(Ngo Thi Ngoc Anh·56) 박사는 지난달 14일 재단법인 '행복세상'과 한국체육개발원 주최로 충남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전국다문화가족생활체육대회'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1998년부터 2010년 말까지 29만4080명의 베트남 여성이 결혼이민을 떠났는데, 대만으로 간 이가 12만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이 4만여 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이민자의 2세들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그는 "다문화가정 부모들이 '한국에서 잘 가르치면 되지, 무엇 때문에 베트남어와 베트남 문화까지 가르쳐야 하느냐'는 생각이 강한데, 다문화가정 가정폭력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었던 기존 논의에서 더 나아가, 이들의 2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의제화할 시점"이라며 "무엇보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에서 한국어나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는 일자리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들을 잘 도와야 2세들도 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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