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지치지 않는 판을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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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지치지 않는 판을 만들어야죠"
  • 배영수
  • 승인 2011.10.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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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설치 미술가 이탈

설치 미술가로 활동하는 이탈 작가

인천in-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연재
'2011 인천문화·예술을 일구는 사람들'
 
'살기 좋은 도시 인천' '살고 싶은 도시 인천'으로 나가기 위해선 문화·예술적 창조도시를 지향점으로, 창조적인 문화·예술 행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인천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성 혹은 대중성을 내건 활동들이 펼쳐져 왔다. 예술의 가치를 확산시킴으로써 살고 있는 도시의 가치를 높인다는 진정성으로 살아온 이들이다.
 
<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에게 다가가 집중 인터뷰를 통해 열정이 담긴 창작물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를 걸고 기획연재 '2011 인천문화·예술을 일구는 사람들'을 시작한다. 매주 화요일마다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 코너에서는 인천문화재단의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된 6개 단체를 비롯해 2011년 하반기에 활동하는 문화·예술가(혹은 단체)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번에는 지역에서 설치 미술가로 활동하며 오는 11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탈 작가를 소개한다.
 
취재 : 배영수 기자
 
소위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가 예술계에도 스며들면서 현대인들은 참으로 풍요로워진 예술세계를 접하고 있다. 음악에서는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혹은 메시앙 등 예상 가능한 전개방식을 거부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이 나타났고, 미술계에는 순수미술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잭슨 폴락과 같은 액션페인팅 기법이나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 아트, 그리고 사실 표현을 극대화하는 극사실주의 등 마치 철학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는 몇몇 예술가들에게도 해당된다. 인천에도 이러한 영역에 있는 작가들이 꽤 있다. 그중 오는 11월 9일부터 22일까지 신포동 갤러리 '유네스코 A포트'(신포동 51-1)에서 여는 개인전 '거미의 성' 준비로 한창인 이탈 작가를 만났다. 지역 내 대표적 설치 미술가로 작품을 통해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물론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인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7살 때 인천에 와 계속 이곳에서 자라며 활동한 그에게 '출발점'은 그림이었다. "미대생들이면 흔히 대학 때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분야를 정하기 마련"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림을 그리면서도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졸업 후인 1990년대 중반부터 설치 미술과 같은 작업을 시작해 왔다. 그는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 역시 지금 활동에 대해서는 '미술이란 게 뭘까?'라는 원론적 고민에서 출발했다"라는 고백을 했다.
 
"흔히 초상화나 풍경화 등의 경우 하면 할수록 기술이 많이 늘죠. 그런데 저는 그런 쪽에 큰 관심이 없었나 봐요. 사회 에서 어떤 문제가 발견되면 그에 대한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결국 작품도 그를 내용으로 하는 녀석이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첫 개인전은 '돼지 살덩어리'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였다. 그가 고속도로에서 트럭을 몰고 가던 중 살덩어리들이 난자돼서 피비린내가 나는 현장을 목격해 추적을 했더니, 돼지를 싣던 차에서 문이 열리면서 돼지들이 떨어졌고, 결국 그 돼지들이 차에 밟히면서 난장판으로 됐던 상황이었다고 한디.
 
"그때 난자돼 있던 돼지 살덩어리에서는 잔혹함 같은 게 느껴졌는데, 그 당시 제 작업실 앞이 공교롭게도 정육점이었어요. 그런데 거기 돼지 살덩어리들도 같은 건데, 그걸 보면 식욕이 돋는단 말이죠. 같은 사물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주는지에 대한 건 180도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게 결국 작품으로 이어진 거죠."
 

이탈 작가 대표작 '기억애'

어떻게 보면 작가의 고뇌와 생각을 공간화뿐만 아니라 시각화한 요소로도 표현해야 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설치 미술에 대한 선택이 필연적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설치품에 영상 모니터를 달아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도 있고, 간혹 행위 예술을 떠올리게 하는 퍼포먼스를 추가하기도 한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본 문제들을 나름대로 표현하지만, 이 작가는 "예술가가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운동(Movement)으로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서 자신 역시 그것을 견제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예술가는 사회에 적극 참여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를 나쁘게 보자는 건 아닙니다만, 예술가로서 위험한 부분은 분명 있죠. 그리고 어떤 작가는 정말 예술에만 탐닉하며 자신의 작업실에서 모든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런데 저는 두  성향 모두 별로 갖고 있지 않아요. 중간쯤 되는 편에서 송곳으로 세상을 툭툭 찌르는 작업을 해 왔다고 하면 맞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군중 속에서 다소 벗어나 그 군중을 바라봐야 하는 작업도 하게 마련이고요."
 
남들이 보기엔 약간 '추상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작가로도 보이지만, 지역 공공미술에도 관심을 보이며 활동해 온 그이기도 하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작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작년에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한 프로젝트 '아름다운 교문 만들기' 디렉터로 활동했다. 그 결과 신흥초등학교를 비롯한 몇몇 학교 교문들이 통상적인 학교 교문과는 다른 형태로 탈바꿈했다. "현재 형태의 교문은 일제 흔적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예"라며 교문뿐만 아니라 구령대 등과 같은 시설도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도 고심하고 있음을 그는 밝힌다.
 
11월 여는 전시회 '거미의 성'은 인간 욕망이 주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 개개인 욕망의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욕망을 넘어서면 무리수가 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지며, 그것이 곧 인간 특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번 전시회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다만 "이제까지 전시회보다는 조금은 쉽게, 그리고 접근이 용이하도록 가볍게 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현대 미술계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 걱정은 바로 후배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다.
 
"국내 다른 시장이 그렇듯, 미술계 역시 유행이 빠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지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소위 '잘 팔리는 성격'의 작품에 집중하는 경향이 높아지는 현상도 곳곳에서 보여요. 그것이 작가들을 뒤흔들고 지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죠. 물론 '미술품에 대한 경제적 가치 작업'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너무 그런 성격 일색이라면 미술계가 자칫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어요. 제가 다작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우려되는 부분인데, 바람이 하나 있자면 작가들이 지치지 않는 '어떤 판'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이탈 작가의 작품은 설치 미술 형식을 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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