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의 흥행 요인과 항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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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의 흥행 요인과 항일 메시지
  • 윤세민
  • 승인 2024.03.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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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의 영화산책]
(18) 〈파묘〉 - 윤세민 /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시인, 평론가, 예술감독
영화 <파묘>의 ‘특별 포스터’. <파묘> 주인공 4명이 묘를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하얀 공간 배경이 마치 한반도 지형처럼 나타나게 한 장면 연출은 우리의 역사의식을 새삼 일깨우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묘를 다시 파는’ 영화 <파묘>가 흥행 돌풍과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3월 12일 현재 817만 관객을 기록하며,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거기에 해외 133개국 판매 소식과 더불어 해외 유수의 영화제 초청까지 쇄도하며 연이은 낭보를 전하고 있다.

<파묘>의 기획·각본·연출을 맡은 장재현 감독은 그 동안 <검은 사제들>(2014), <사바하>(2019) 등 오컬트(초자연적인 현상, 악마, 악령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심령영화, 공포영화) 장르에 천작해 왔다. <파묘>의 돌풍에 장 감독 자신도 “원래 오컬트 마니아를 위한 장르 영화로 만들었는데, 실수로 대중영화가 된 듯하다”고 한 인터뷰에서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22일 개봉한 <파묘>는 개봉 18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687만 관객의 <곡성>(2016년)을 제치고 역대 한국 오컬트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이전의 천만 영화 <범죄도시2>와 최근의 <서울의 봄>보다 흥행 속도가 빠른 <파묘>가 오컬트 영화 최초로 ‘천만 흥행작’으로 올라설 듯하다.

무엇보다도 ‘파묘’(破墓: 묘를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해 무덤을 파내는 것을 의미)라는 신선한 소재와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배우의 신들린 열연, 오컬트 영화 장르에 몰두해 온 장재현 감독의 공들인 연출 등이 합력해 빚은 결과이리라.

 

<파묘>의 독특한 서사와 소재

<파묘>는 거대한 부를 축적한 가문의 장손 집안이 신병을 앓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름난 무당과 풍수사, 그리고 장의사가 힘을 합쳐 한 기괴한 무덤과 관련된 심령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다.

미국 LA에서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나게 된다. 조상의 묫자리로 인한 묫바람(흉지에 묘지를 쓰는 경우 그 그 자손들에게 불운이 닥치게 되는 일을 의미)이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이에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대통령의 염까지 담당했던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그만 나와서는 안 될 것이 나오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게 된다.

영화 <파묘>는 한국인들의 전통사상인 묫자리 및 풍수지리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거기에 한국식 무속 샤머니즘과 일본 신토의 애니미즘(정령신앙)이 서로 대결을 벌이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자행된 제국주의 침략 역사와 고위 친일파들에 의해 자행된 매국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 민족의 혈맥과 기운을 누르기 위해 명산에 쇠말뚝을 꽂았다는 소위 ‘풍수 침략’이 언급되곤 하는데, 풍수 침략과 쇠말뚝은 이 영화에서 서사와 분위기를 반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일본 주술사가 태백산맥에 쇠말뚝으로서 ‘오니’(요괴로 여겨지는 일본의 전설상의 존재)를 심어두었다는 설정과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실제 존재했던 독립 운동가들을 연상케 하고, 영화 전반부 의뢰인의 친일 행적 등이 이 영화의 항일 테마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 <파묘>가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해서 무속 관련 서사에 흥미를 더하는 점은 2016년 개봉된 영화 <곡성>과 비슷한 점이 있다. 즉 <파묘>는 그 동안 한국 심령스릴러 장르의 가장 강력한 흥행공식인 무속 샤머니즘, 풍수지리, 그리고 반일감정 등을 적절히 섞어놓은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서사 및 연출 전략 덕분에 오컬트 영화의 새 지평을 열며, 현재까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리라.

 

<파묘>의 이례적 흥행 요인

<파묘>의 이례적인 흥행에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의 내용과 구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시대정신과 소통한 메시지가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파묘>는 일제 강점기 역사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이 땅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메시지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야기 자체의 흥미, 대중적 재미도 한 몫 하지만 우리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발굴했다는 측면에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중간에 오컬트 장르를 넘어서서 감독이 가진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이것이 우리 시대 정서와 맞물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례로 ‘파묘’의 주인공인 상덕, 화림, 영근, 봉길은 실제 존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 그대로다. 작품 속 이들의 차량 번호도 삼일절(0301) 광복절(0815) 광복연도(1945)와 같다. 이런 점들은 감독의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속내 깊은 연출임은 분명하다.

이렇듯 장재현 감독은 기이한 초자연적 현상의 근간을 이 땅 위에 기록된 ‘역사’로 삼았다. 친일파 자손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며 사는 박지용네 가족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이어 받아 가장 어두운 곳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주인공을 떠올리면 저절로 이 땅의 역사적 모순을 느끼게 된다.

영화 <파묘>는 독특하게도 관객의 사전 이해를 위해 주요 구성(시퀀스)의 시작마다 제목을 화면에 띄운다. 즉 도입부, 1장: 음양오행(陰陽五行), 2장: 이름 없는 묘(墓), 3장: 혼령(魂靈), 4장: 동티(動土), 5장: 도깨비불(おに), 6장: 쇠말뚝(鐵針), 에필로그 등 총 8번 등장한다. 이렇게 장으로 구분된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면서 관객들은 이들과 함께 수상한 묘지의 진실에 점차 근접하게 된다. 단순히 정체 모를 공포감보다는, 각 장의 제목처럼 어딘가 있을 법한 미스터리 사건처럼 전개되는 구성에 자연스레 빠지게 한다. 그럼에도 전개 흐름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아지는 괴괴함, 기괴한 볼거리, 느닷없는 반전 등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런 속에서 주인공들의 열연은 관객들을 저절로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대살굿(피를 흘리며 죽어간 군웅신을 대접하고 험한 일을 막아달라는 의미로 동물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굿거리의 일종으로 황해도 지방에서 유래)과 파묘를 동시에 진행하는 장면에서 펼쳐진 김고은의 무당 연기는 일품이다. 단순한 무당 흉내가 아니라 실제 재현으로 다가올 만큼 현장감과 긴박감이 넘친다. 또한 파묘한 웅덩이에서 오니와 처절히 맞서는 최민식의 정중동의 열연은 명품 배우로서의 관록을 충분히 보여준다. 두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연기의 합은 <파묘>의 극적 재미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영화 <파묘>는 오랜만에 접하는 오컬트 영화의 장르적 매력을 신선한 내용과 구성, 빼어난 연출과 연기를 통해 대중 친화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더욱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함께 호흡하며 우리가 놓치기 쉬웠던 혹은 간과하고 있던 역사의식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기회도 제공해주고 있다. 마치 잠들어 있던 우리 의식을 새롭게 ‘파묘’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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