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상징, 800살 된 볼음도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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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상징, 800살 된 볼음도 은행나무
  • 김시언
  • 승인 2024.03.1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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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이야기]
(39) 볼음도 은행나무

 

볼음도 은행나무
볼음도 은행나무

 

볼음도 은행나무는 800살 된 나무로 1982년에 천연기념물 제304호로 지정됐다. 키 25미터 가슴둘레 9.4미터. 이 나무를 보려면 강화 본섬에서 배를 타고 볼음도에 가야 한다. 예전에는 내가면 외포리항에서 배를 탔지만 지금은 화도면 선수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야 한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800여년 전 홍수가 났을 때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수나무가 떠내려와 주민이 심었다고 한다. 할머니 은행나무는 연안군 호남중학교 운동장에 있다. 은행나무 부부가 떨어진 세월을 생각하면 애틋하다. 큰물을 만나기 전까지 수나무 암나무가 얼마나 사이좋게 지냈을까. 분단 70여 년이 된 우리나라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볼음도는 해안선 길이가 16킬로미터로 걸어서도 다닐 수 있다. 볼음도를 갈 때는 적어도 하루 이상 묵으면서 나무도 보고 섬을 둘러보면 좋다. 자동차 없이 들어가는 게 좋은데, 이는 차량 운송비가 비싼 데다 섬이 작기 때문에 걸어서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룻밤 머물 시간이 안 된다면 당일치기로도 가능하다. 은행나무만 보고 돌아오면 다음 배 시간에 닿을 수 있다.

볼음도(乶音島). 이 명칭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만나 체류하면서 보름달을 보았다 해서 ‘만월도(滿月島)’라고 부르다가 이후 ‘보름도’, ‘볼음도’가 됐다고 한다. 또 하나는 교통이 불편해서 한 번 다녀오면 보름이 걸린다고 해서 ‘보름도’로 했다가 ‘볼음도’가 됐다는 것. 지금이야 선수항에서 한 시간이면 다다르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가기 힘들었을지 이름에서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어떤 사람은 볼음도라는 이름이 불교에서 유래됐을 거라고도 한다. ‘관음(觀音)’이 ‘소리를 본다’는 뜻인 것처럼 ‘볼음’도 ‘소리를 본다’의 뜻일 거라고 했다. 강화가 고려 말기에 도읍지였던 걸 감안한다면 그 말도 일리 있다.

 

한낮의 햇볕을 쬐는 은행나무(2017.6)
한낮의 햇볕을 쬐는 은행나무(2017.6)
2017년 10월 은행나무 모습
2017년 10월 은행나무 모습

 

북쪽 바닷길이 막히고

한국전쟁 전에 볼음도는 전국 각지에서 고깃배가 몰려들어 북적였다. 하지만 전쟁 이후 민간인출입통제선과 어로저지선이 생기면서 북쪽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혔고, 그러면서 어업으로 북적였던 섬은 조용한 섬이 되었다. 볼음도는 북한 연안군과 5.5킬로미터 떨어져 있어서 북쪽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혔다.

한국전쟁 이후 볼음도 위쪽 말도 북쪽을 경계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졌고, 더 이상 고깃배가 모여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몇 어선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물고기를 잡자 정부에서는 1964년에 북위 38°35′45″선을 어로저지선으로 설정했다. 이때부터 북쪽으로는 배를 띄울 수 없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길을 저지당한 셈이다. 이렇게 바닷길이 막혀서 조기, 민어, 꽃게, 새우를 많이 잡던 섬은 지금은 농사를 주로 짓는다. 농사가 주업이고 어업은 부업이 되었다.

볼음도를 걷다 보면 논을 많이 볼 수 있다. 약 40년 전쯤만 해도 볼음도에서 논농사 비중이 3분의 2 정도였다. 당시에는 농업용수가 부족해 빗물에만 의존하는 천수답이었다. 주민들은 농경지와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바다를 막아 제방을 쌓았다. 1982년에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볼음도 은행나무 옆에 제방을 쌓고 볼음저수지를 조성했다. 은행나무 앞쪽으로 너른 저수지가 있는데, 이곳은 조류관찰소로도 유명하다. 추수가 끝난 늦가을이 되면 저수지는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기러기와 야생오리를 만날 수 있다.

 

나무 옆으로 저수지가 있다.

 

맛있는 밥에다 짠족은 금상첨화

볼음도에서 생산되는 쌀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이는 벼를 수확하고 나온 볏짚을 잘게 썰어 거름으로 사용한다는 점도 한몫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볏짚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는데 볼음도에서는 거름으로 쓰면서 벼가 난 땅으로 도로 보내기 때문이다. 이는 볼음도 섬에 소나 돼지를 키우는 농가가 없기도 하지만, 배를 이용해 운송하면 뱃삯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볏짚을 흙과 섞어 거름으로 사용함으로써 볏짚에 함유된 규산 성분이 훌륭한 양분이 돼 더 맛있는 쌀이 나올 수 있다. 강화 본섬에서 나오는 쌀도 맛있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볼음도 쌀은 이보다 맛있으니 얼마나 더 맛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밥맛 이야기가 나왔으니 반찬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볼음도에는 ‘짠족’이라는 음식이 있다. 볼음도 선착장에서 마을로 걸어가다 보면 집집이 높다랗게 설치된 생선 건조대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계절별로 잡히는 생선 내장을 빼내고 소금에 절인 뒤에 바닷바람에 말리기 위한 장치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내장을 제거한 생선을 나무에 꿴 다음 도르래를 이용해 지붕 높이로 말린다. 이러면 고양이로부터 안전하고 파리도 꼬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이틀 말리면 꾸덕꾸덕한 생선이 되는데 이를 ‘짠족’이라고 한다. 이는 냉장 보관해서 찜이나 구이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 입맛이 없을 때 짠족의 짭쪼름한 맛은 대번에 입맛을 돋우고 밥 한 그릇을 더 먹게 하는 마력이 있다.

 

건조대에 물고기를 널어 짠족을 만든다.
건조대에 물고기를 널어 짠족을 만든다.

 

볼음도 주민은 2024년 3월 현재 160세대 250명이다. 50대 이상이 80%를 이루고, 학교 다니는 나이대는 없다. 볼음도 마을은 당아래, 대아래, 샛말, 안말로 나뉜다. 당아래 마을은 ‘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는 당집이 있었고, 그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대아래 마을은 예전에 망대가 있던 마을, 샛말은 대아래와 안말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안말은 말 그대로 선착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안쪽에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볼음도는 섬 안에서 걸어서 다 다닐 수 있다. 대중교통 수단은 없다. 해안선 길이가 16킬로미터라 도보로 두어 시간 남짓이면 돌 수 있다.

 

볼음도 선착장
볼음도 선착장

 

가지를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

볼음도 선착장에서 은행나무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마을을 통과해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르면 가슴이 설렌다. 아니, 선착장에서 은행나무까지 가는 길 전체가 아름답다.

정월 그믐이면 마을 사람들은 나무 앞에서 풍어를 비는 제를 지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출어가 금지되면서 풍어제를 지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참으로 아끼며 애지중지하며 아낀다. 은행나무 가지를 꺾거나 부러진 가지를 태우면 재앙을 받는다고 했다. 은행나무 뒤에는 작은 나무가 하나 있는데, 이를 ‘김첨지대감’이라고 부르면서 목신대감에 제를 올릴 때 이 나무에도 제물을 차렸다. 2018년 8월에 문화재청에서 풍어제를 대대적으로 올린 적이 있다.

은행나무는 수세가 보기 드물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2019년 태풍 링링이 왔을 때 큰 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때 볼음도 사람들은 무척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은행나무 옆으로 전망대에 올라 북한 쪽을 바라보면 참으로 애틋하다. 가지를 뻗으면 닿을 듯한 북한 황해도지만, 두고 온 암나무가 지척이지만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훗날을 기약하지도 못한 채 헤어진, 수십 년 동안 오가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019년 태풍 링링으로 큰 가지가 부러졌다.
2019년 태풍 링링으로 큰 가지가 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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