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球都) 인천, 왜 야구계 '큰 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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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球都) 인천, 왜 야구계 '큰 별' 없나?
  • 배영수
  • 승인 2011.10.11 1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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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은 최동원·장효조 등 '전설'을 재조명하는데…
 

故 최동원 선수의 시구 모습 ⓒ 롯데자이언츠 구단 홈페이지
 
취재 : 배영수 기자

'안타왕' 장효조와 '무쇠팔' 최동원. 프로야구의 두 '큰 별'이 지난 9월 7일과 14일 각각 세상을 떠났다. 경상도 지역인 대구와 부산 연고 구단 프랜차이즈 스타임과 동시에 모든 프로야구 팬들이 '최고'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전국구' 스타이기도 했기에, 며칠 간격으로 두 야구인이 암으로 세상을 등졌던 9월 전국 모든 야구 팬들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런데 인천지역 많은 야구 팬은 애도의 표현과 함께 "왜 인천에서는 저런 '전설'이 나오지 못했을까"하는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인천 역시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연고 구단을 갖고 활동해 왔던 도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천 출신 '전국구' 스타는 단 한 명도 없다. 옛 삼미 팬들 중 몇몇은 "한 시대를 풍미한 '너구리' 장명부가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재일교포 출신으로 구단에 대한 애정보다는 소위 '돈 보고 온' 사람이다. 여기다 마약과 도박으로 얼룩진 삶을 산 그를 인천의 야구스타로 올리기엔 터무니없다는 팬들이 많다.
 
인천의 야구 팬들은 인천 야구가 그만한 스타들을 배출하지 못한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SK를 제외한 역대 프로구단들의 부진한 성적, 또 하나는 그 구단들이 자주 바뀌며 풍파에 너무 휘둘렸다는 점이다.
 
야구 팬 이모(37)씨는 "초등학교 시절인 1984년, 나는 그 해 운명을 다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어린이 팬클럽'이었지만, 그 시절 삼미 구단의 모자와 점퍼를 한 번도 밖에 입고 나가보지 못했다"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다른 구단을 응원하는 어린이들은 삼미한테 지면 그 날은 초상집에 갔다 온 분위기였을 정도로 팬을 자처하기 부끄러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1982~1984년 당시 삼미가 주목을 받은 건 특정 야구팀(OB베어스)에 한 시즌 전패 기록(16패), 1할8푼8리라는 '엽기적'인 역대 최저 승률 기록,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 노히트 노런 헌납 구단 등 인천 야구팬들로서는 '악몽'과 같은 기록들이었다. 선수들이 전혀 조명을 받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지사. 몇년 전 개봉했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과 소설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등을 통해서도 부분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인천 프로야구가 삼미-청보-태평양-현대-SK를 거치며 남은 것은,
많은 팬이 원하던 '전국구' 스타가 아닌 수많은 종류의 기념 사인볼이었다. 
 
결정적으로 인천 연고 프로야구 구단은 너무 자주 바뀐 게 문제였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로 출발해 1985년 후반기 청보 핀토스, 그리고 1988년 태평양 돌핀스와 1996년 인천 야구 팬들에게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인천을 지키고 있는 SK 와이번스까지 5번 바뀐 건 유례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바뀐 사연도 참으로 구구절절하다.
 
삼미의 경우 소비재사업이 없어 구단 홍보 효과 부재, 청보는 그룹 부도, 태평양은 화장품 시장 개방으로 인한 시장 점유율 하락 등 지속할 수 없는 요인들이 끊임없이 있었다. 급기야 현대는 연고지 이전을 선언해 인천야구 역사까지 혼란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현 구단인 SK는 '졸지에' 인천을 가장 오래 맡아 온 팀으로 됐다.
 
야구 팬 강모(32)씨는 "멘탈 스포츠인 야구는 주변 환경이 안정화됐을 때 선수들도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마련인데, 구단이 자주 바뀌고 연고지까지 뒤섞이는 일이 일어나는 역사를 거치면 선수들에게도 연봉과 성적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인천야구가 소위 '큰 별'을 배출하지 못한 것은 정리가 어려울 정도로 변화와 혼재가 많은 역사 때문"이라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특히 인천 프로야구 역사에서 현대의 연고지 이전은 인천 스타들도 송두리째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짠물야구' 운영자 김훈희씨는 "결정적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등지면서 정민태, 김수경, 박진만 등 전국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천 스타들도 함께 그 명분이 사라졌다"면서 "인천 야구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들이 현대로 가 있고, 생경한 팀은 연고 구단이라고 하니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 혼란 속에 있었다"라고 밝혔다.


자문을 구하기 위해 만난 '짠물야구' 운영자 김훈희씨.
인천 야구팬들에겐 익숙한 얼굴이다.

아울러 김씨는 "현대 이전 삼미나 청보 시절에도 김진우나 양승관, 임호균 등 프로 창단 이후 인천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전국구'라는 명함을 받기엔 한계를 갖고 있었다"면서 "최근 30년 올스타 등 행사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인천은 소외된 느낌이 강해 기분이 무척 상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김씨는 "현대가 인천을 등지고 SK가 들어왔을 때 인천시민들은 SK에 대한 사랑보다 현대에 대한 미움이 강했던 만큼 SK에 대한 애정은 사실 팬들 입장에서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유를 묻자 "SK도 본디 인천에 입성할 생각이 없었고, 더 확장하자면 야구단에 대한 생각도 별로 크지 않았지만 정치권 등의 권유로 자의반 타의반 들어오게 된 경우였기 때문에 시민들의 애정도 클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지금 잘 하는 젊은 스타들을 지역이 키워내는 것도 방법이지 않겠느냐"고 묻자 김씨는 "지역 출신 전국구 스타를 만드는 더 확실한 방법은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하는 1차 지명권 제도를 다시 살려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현재의 광역연고 제도가 계속되면 인천 출신 선수가 다른 연고 야구팀에 가서 펄펄 날아다니는 상황을 계속 봐야만 한다"면서 "인천 출신은 인천 연고 구단이 데려가 키우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한편 김씨는 최근 김성근 감독 경질 후 혼란 속에 있는 구단에 대해 "사실 나도 마음이 많이 상해 있지만, 팬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은 자신이 김성근 감독 팬클럽인지, 아니면 인천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금 마음에 안 든다고 고개 돌리는 것보다 앞날을 위해 시민들이 먼저 애정을 보여 구단 관계자 마음도 움직이게 하면 고인이 된 두 전설 만한 스타가 나올 수 있는 토양도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SK 김광현.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구단이 '인천 스타'로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 SK와이번스 구단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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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2011-10-13 08:58:59
최창호:역대 투구폼이 가장 멋진 선수였지요^^
1994년 3년만에 두자리 승리(27경기 12승 11패 1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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