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으로 소리를 꽃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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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으로 소리를 꽃 피워"
  • 박영희 객원기자
  • 승인 2011.11.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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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임경배 인천시 지정 무형문화재 대금장

무형문화재 대금장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이야기'

오랜 인고(忍苦)의 시간을 겪은 대나무에 조상의 얼과 지혜를 담아 깎고 다듬어서 깊은 소리를 빚은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열매를 맺게 된다.

그렇게 한낱 곧게 뻗은 대나무에 지나지 않는 게 장인의 손끝에서 맑고 청아한 소리를 품은 고귀한 '대금'으로 피어난다.

마음을 사로잡은 '대금과의 만남'

'인천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6호 대금장 기능보유자' 임경배(62, 연수구 연수동). 그는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고향 집에서 대나무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워낙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에게 전통예절과 한자와 서예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고향집 근처에 대나무 밭이 있었는데, 그 대나무를 잘라서 구멍을 뚫고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늘 익숙해 있었던 그가 대금을 처음 만난 건 30여 년 전 순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서예학원에서 중학생이 대금으로 '한오백년'을 연주하는 걸 들으면서 가슴 깊이 파고드는 대금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날 바로 대금을 구입했다. 대금을 만져보고 불어보는 순간 묘한 전율이 온몸을 감쌌다. 그때부터 그이 마음을 사로잡은 대금을 전문가에게 제대로 배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직장일로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이 자주 이동을 하게 되다 보니 현실 속의 대금은 그저 마음뿐이었다.

대금과 연(緣)을 맺다

늘 대금을 마음 속 깊이 품고 있던 그는 1994년도에 인천에 와서 우연한 기회에 현재는 고인이 된 명인(名人) 김정식 선생(당시 인천시지정 무형문화재 제6호 대금장 및 무형문화재 제4호 대금정악)을 만나면서 그토록 갈망하던 대금과의 인생을 시작하며 대금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제대로 연주하는 법을 알아야 '명금'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대금연주와 대금을 만드는 비법을 스승에게 배우며 직함을 승계받고 뒤를 이어갔다.

우리나라 전통악기 중 하나인 대금은 가야금, 거문고와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는 관악기이다.

대금은 대나무에서 울려나오는 단아하고 처연한 음색과 맑고 깊은 울림을 갖고 있어 그 신비스럽고 생명력이 있는 소리가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할 정도로 신통한 힘을 가졌다. 그것이 대금의 매력이기도 하다.

신라시대 신문왕 때는 '만 가지 근심이 사라지는 악기'라는 뜻을 지닌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하여 국가의 보물로 삼았을 정도로 고귀한 악기였다.

나는 '대금장'이다

대금 재료로 쓰이는 대나무는 대 양쪽에 골이 있는 쌍골죽이어야 한다.

그러나 좋은 소리를 내는 쌍골죽은 심마니가 산삼을 캐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귀하다.

"남쪽지방 지리산과 담양 등지를 그 지역사람들과 함께 동행하며 구하러 다녀요. 쌍골죽은 흔하게 있는 대나무가 아니라서 쌍골죽을 보는 순간 '심봤다!' 라고 외치고 캐지요. 낙엽이 다 떨어지고 대나무 몸에 스며 있는 수분이 뿌리 쪽으로 내려갈 때가 좋은 시기예요. 주로 추운 한겨울로 가장 건조할 때라서 그때 캐는 쌍골죽이 대금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거든요." 대금장 임 선생은 쌍골죽을 꺼내 보인다.

"쌍골죽은 휘어 있기 때문에 불에 구워 반듯하고 곧게 펴서 다듬는 일이 중요해요. 그래야 변형이 안 생기고 좋은 소리가 나오지요. 나는 두 번을 구워요. 저만의 방식이예요."그는 입을 대고 부는 취구와 여섯 손가락이 닿는 지공 등의 구멍을 조심스럽게 뚫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여!"

"옛날 우리 조상들이 즐기던 전통문화는 소홀하게 여길 게 하나도 없어요. 과학적이고 지혜가 담겨 있어서 버릴 것이 없거든요. 특히 대금은 옛날 선비와 양반들이 즐기던 풍류로, 단전호흡과 복식호흡에 좋아서 심폐기능과 정신건강에 최고예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우리 전통문화가 외래문화에 밀려나는 것을 볼 때 안타깝고 서글퍼지지요. 서양음악에만 심취한 사람들에게 우리 전통악기가 많이 대중화해 하나의 전통악기쯤은 다룰 줄 알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 가르칠 곳을 찾아다니며 대금을 알리고 있어요."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임 선생의 '대금사랑'이다.

현재 그는 인천국악협회와 연수문화원, 세화복지관 등지에서 대금을 지도하고 있다.

피아노, 바이올린, 플릇, 오카리나 등 서양악기에 더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전통국악기를 외면한 채 '우리것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모르고 살아간다.

빠름을 추구하며 점점 서구화하고 있는 '퓨전문화' 속에서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품은 우리 전통문화를 통해 조상의 슬기로움과 지혜도 배우고,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작업장 한 쪽에 가지런히 세워놓은 대나무들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여러 공구들이 대금장 손길을 기다리는 듯 따뜻한 햇살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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