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흔적, 현재의 모습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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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흔적, 현재의 모습 기억하기
  • 윤현위
  • 승인 2012.03.07 18: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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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칼럼] 윤현위 / 자유기고가

-주안염전과 수출공단에 대해-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 지역, 도시는 우리 삶의 터전이다.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소이다. 물론 이런 문장이 항상 옳지는 않다. 우리 도시는 무척이나 빠르게 급변하기 때문이다. 삶의 흔적이 묻어온 공간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교육자료 활용을 떠나서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삶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현재 우리나라 각 도시들은 박물관 만들기에 한창이다. 보통 '박물관' 하면 고려시대, 조선시대 유물들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오래된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역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그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야기를 주안으로 옮겨보겠다. 주안역 뒤편, 우리가 흔히들 주안공단으로 부르는 곳, 주안역에서 지하상가로 해서 뒤편으로 가면 주안5동이다. 주안공단의 정식명칭은 수출산업 5,6공단이다. 5,6공단은 주안을 포함하여 십정동, 가좌동 일대 공업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그림  <1910년도 인천의 지형을 복원한 그림>
출처: 최영준, 1997, 국토와 민족생활사

2000년 이전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경인공업지역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에서 가장 큰 규모와 역할을 보였던 곳,(구로공단-부평공단-주안공단) 구로와 인천을 잇는 공업지역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시내버스 16번이나 62번을 타고 주안역 뒤를 지나가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주안공단은 매우 평평하다. 왜 그럴까? 이 지역은 염전이었다. 주안염전은 1907년도에 처음 지금의 십정동(구 서울제강자리)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천일제염은 일제에 들어와서야 시작됐는데, 주안염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천일염전이 시작된 곳이다. 지금이야 주안이 내륙으로 느껴지지만 100년 전 매립하기 전만 하더라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역이었다. 주안에 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 1969년부터였으니 그 이전까지 약 60년간 염전이었던 셈이다. 염전의 규모는 3000평으로 시작하여 1918년에는 63만6천평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공단이 완공된 때는 1974년이다. 근대적 공업화를 추진했던 중앙정부 정책에 따라 염전은 공단으로 됐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그 사이 다른 공단도 많이 조성됐고, 일하는 사람 중에 이방인들이 늘어났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인천의 역사를 다루는 많은 문헌에 나와 있는 것이다. 산업단지 규모나 시설에 대해서는 한국산업단지공단에 가면 정확한 자료들을 받아볼 수 있다. 공단자체에 관해서는 시설을 고도화하거나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연구들이 계속 진행 중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지역의 흔적을 기록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적다는 사실이다. 주안공단은 단순히 공장들이 모여 있는 거친 공간, 작업장, 일터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그 지역에는 지나간 인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분명히 담겨 있다. 대규모 박물관이 아니더라도 그 지역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주안공단에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작업, 염전박물과 공업박물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물론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 이미 2007년 소금박물관이 개관한 바 있다. 신안군에 있는 태평염전은 140만평으로 우리나라 최대규모이다. 신안의 소금박물관은 신안의 현재이다. 주안염전은 주안의 과거이고 우리나라 최초라는 역사성, 그리고 거리상으로 신안군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최근 많이 거론되고 있는 문화시설 중복투자에 대한 염려 역시 적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공업박물관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공업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박물관이 없다. 충주대학교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 1980년에 잠시 공업박물관이란 이름을 사용했고, 부평역사박물관에는 부평지역에서 진행된 공업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섹션이 있지만 우리나라 공업발전상을 전체적으로 정리한 시도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산업단지, 지방일반산업단지, 농공단지 등 무수히 많은 공업단지가 있다. 그 중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조성된 주안공단에 공업박물관이 조성된다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장소마케팅 전략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매립'이라는 단어는 웬지 구시대적으로 느껴질 법도 하다. 인천의 매립 역사는 개항 이래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송도로를 보라! 주안공단에서 과거 공간에 대한 흔적을 기억하는 작업을 시도한다면 앞으로 송도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데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안공단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미래는? 답은 아마도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에 사는 외국인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고 미래에 주안의 '빛과 소금'으로 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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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ctus 2012-03-08 21:54:03
바쁜 현재를 살면서 경인공단이라는 장소의 표면 아래, 시간의 지층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미래에 새로이 형성될 지역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물론 잊혀지는 과거사실에 대한 현재의 '추억하기!'도 중요하고요ㅎㅎ 앞으로도 삶의 향기가 잔뜩 깃들어 있는 칼럼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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