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와 '착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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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와 '착한 사랑'
  • 유은하
  • 승인 2012.03.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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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유은하 / 화도마리 공부방


우리 가족은 현재 모두 흩어져 살고 있다.

대안학교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지리산에 연수원을 세우면서 그곳에 있고 큰 아들은 대학생이라 서울에서 살고 나와 작은 아들은 강화도에서 살고 있다. 참으로 바쁜 가족이다. 가족이 모여 있지 못하니 가끔은 쓸쓸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4식구가 모두 모이면 즐겁기 짝이 없다. 서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 과정에 있었던 희로애락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자기 수련에 중점을 두고 살고 있는 남편은 처와 자식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 보라고 훈화(?)나 잔소리를 한다.

남편이 오랜만에 강화도에 오면 반갑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기도 하는데, 며칠 있게 되면 언제 내려 가냐고 묻게 된다. 나름대로 나도 바쁜데 남편에게 이것 저것 신경쓰게 되니 귀찮아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못 보면 그립기도 해서 편치 않은 바가지는 예전보다 덜 긁게 된다.

남편과 연애할 때는 하루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애절했는데, 지금은 그 때처럼 절절하지 않다. 

며칠 전 컴퓨터에 있는 문서를 검색하다가 결혼 전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소박한 다짐의 글을 썼던 게 발견되어 내 기억을 새롭게 했다.

 

나는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투쟁을 통해 승리하고 결혼을 한다.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내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이다.

나는 존경했던 선배와 결혼을 한다.

결혼 후에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존경하는 마음이 부서지면 부부 간 사랑으로 살 것이고

부부 간 사랑이 무너지면 같은 길을 걷는 동지애로 살 것이다.

동지애가 무너지면 친구 간 우정으로 살 것이고

우정마저 무너진다면 의리로 살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40-50대 정도에 도래할 것 같았던 의리로 살겠다는 다짐이 결혼한 지 1년이 지나자마자 벌써 의리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눈에 씌었던 콩깍지는 모두 벗겨졌고 내 모든 관심은 오로지 아들에게만 있었다.

뭔가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웃음을 짓다가 다른 글 하나가 발견되었다.

5년 전 쯤 남편이 내게 보낸 러브레터(?)였다.

 

나는 한때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열림과 나눔, 낮춤 등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열림’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또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가 어떠한 행동과 말, 요구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헤아리는 일입니다.

‘나눔’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과 공유(共有)하는 일입니다. 아니 상대방이 내 모든 것을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오히려 고마워하는 일입니다.

‘낮춤’은 상대방의 감정, 생각, 이익 등보다 자신의 감정, 생각, 이익 등을 앞세우지 않는 일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상대방의 그것을 이루도록 애쓰는 일입니다.

열림, 나눔, 낮춤 등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닙니다. 열림, 나눔, 낮춤이 없는 사랑은 삿됨이 깃들어 있는 거래(去來)일 뿐입니다.

나는 이와 같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또는 단점을 드러내 보일 때, 또는 논리적으로 허점을 드러낼 때, 이 세상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로 대응을 합니다. 하나는 약점이나 단점 등을 공격하거나, 곤경에 빠진 틈을 활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세우는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약점이나 단점을 보완하고, 곤경에 빠진 이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도와주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후자는 드물게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세상을 어둡게 만듭니다. 후자는 세상을 밝게 합니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는 일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완전하다고 인식하는 일

사랑은 함이 없이 다독거리는 일

사랑은 상대의 빈 곳을 채워주는 일

살림은 상대가 성찰하도록 도와주는 일

살림은 성찰을 재촉하지 않는 일

살림은 성찰이 된 만큼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일

살림은 아직도 빈 지점을 나무라지 않는 일

사랑은 상대가 성찰하도록 도와주는 일

사랑은 성찰을 재촉하지 않는 일

사랑은 성찰이 된 만큼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일

사랑은 아직도 빈 지점을 나무라지 않는 일

살림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는 일

살림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완전하다고 인식하는 일

살림은 함이 없이 다독거리는 일

살림은 상대의 빈 곳을 채워주는 일

사랑과 나 사이의 거리를 혜량하면서도, 그 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바로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며, 스스로를 살리는 길

  

내가 어떤 상황이었을 때 이 글을 나에게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부인인 나를 온전히 생각하며 이 글을 보냈다고 적혀 있었다.

글을 본 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 40대였을 때 남편이 내게 지어준 별명은 ‘40먹은 청소년’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청소년처럼 왕성하게 살기도 했지만 반대로 천방지축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변사람들은 나를 ‘자유부인’이라고 하였다. 남편은 나를 구속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어떤 상황을 연출해도 항상 정서적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 행동의 내면에 이런 생각이 있었음을 지금에야 온전히 느낀다.

지금은 뜨거운 연애보다 더 강렬한 ‘착한 사랑’이 필요하다.

가장 착한 사랑이란, 어떤 것도 그냥 있는 대로 바라볼 뿐, 평가하지 않는 것. 평가해서 한다면, 어떤 것도 되지 않는 것. 평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욕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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