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아닌 '선택'인 투표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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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아닌 '선택'인 투표를 하고 싶다
  • 이영주
  • 승인 2012.04.09 14: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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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이영주 / 인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일이 말 그대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때면 어떤 당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는 안보론과 색깔론이 나오고 각종 막말파문이 '주요' 일간지를 뒤덮는 걸 보니, 달력을 보지 않아도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선거는 막바지만 이랬던 게 아니다. 정당이 후보자를 정하는 당내 경선부터 정당 간의 연대연합으로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본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심판과 쇄신과 색깔 등 온통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어들로 도배된 19대 총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말로는 정책선거를 이야기하지만 이번 총선 기간을 통틀어 정책이 이슈가 된 적은 없었다. 상대에 대한 원초적 비난 혹은 닥치고 지지만 있었을 뿐이다. "가장 공이 많이 들어가는 기사가 정책 분석 기사이지만, 정작 그런 기사는 인기가 없다"는 정치부 기자들의 한숨 섞인 푸념도 들린다.

이렇듯 정책이 실종된 선거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이들은 여성이나 장애인, 이주민 등 소위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그룹이다. 선거는 사회적 약자들이 그나마 공적으로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선거가 제공한 유권자라는 위치는 지금껏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들에게 '소중한 한 표'라는 요술봉을 쥐어주고, 이전까지 권력을 쥐고 군림하던 정치인들이 가식이든 진심이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적어도 그런 제스처라도 취해야 하는 강제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애초부터 현 정부의 성찰 없는 질주를 멈추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름하는 선거가 돼 버렸다. 심판론이 득세한 선거에서는 정책이 설 자리가 없다. 심판론을 내세운 후보는 자신이 심판을 더 잘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고, 현재 구도를 유지하려는 후보는 그에 맞서 인신공격성 약점찾기를 할 뿐이다.

선거 막바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지면을 왕창 할애해 '특집' 편성한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 역시 그 맥락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전국 246개 선거구 중 한 선거구의 후보의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되었을 뿐인데 이것이 마치 이번 총선의 전국적 이슈인 양 취급되는 이상한 현상은 19대 총선의 기형성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물론 김용민 후보의 과거 언행에 대해서는 나 또한 허투루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국가를 침략한 적대 민족/국가를 비난하는 방식이 '강간'이라는 성폭력적 언행밖에 없다는 것은 여성의 몸과 성을 민족/국가가 지키거나 짓밟을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아주 오래된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사고가 전쟁 중 집단강간이 매우 당연한 일이 되게 했고,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할 수 있게 했다.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김용민 후보를 비난하는 목소리에서는 이러한 성차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언행에 대한 비판과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상대편의 약점을 잡은 호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호전성만 번득일 뿐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건수 하나 잡았다 싶으니 그 후보의 과거행적을 낱낱이 파헤쳐 특집 시리즈로 편성했다. 이건 뭐, 연예인 신상털기 저리 가라다.

묻고 싶다. 앞장서서 그 후보의 언행을 비난하는 이들은 과연 김용민 식 사고로부터 자유로운가? 떳떳한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금을 모아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전쟁과 인권박물관을 지으려 할 때 '국가의 수치'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독립투사들을 동급으로 볼 수 없다며 온갖 시비질을 일삼고 결국은 박물관 건립 장소를 바꾸게 한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여성의 몸과 성을 민족/국가 간의 거래와 침략의 대상으로 여기는 남성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있을 때 김용민에 대한 비난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김용민 막말파문은 우리사회의 남성중심적 국가관 역사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키려는 쪽의 '신상털기' 식 억지 비난과 심판하려는 쪽의 '미국의 만행에 분노한 인간적(?)인 반응'이라는 옹호의 구도에서 그런 성찰과 비판은 설 곳이 없다.

다시 선거정책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어떤 정책도 이슈가 되지 못한 이번 선거에서 여성정책은 존재감 '제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여성정책이 선거의 핫 이슈였던 적은 지금껏 없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처럼 여성정책이 '없는' 선거도 드물다. 출산율 저하에 대한 국가적(!) 대책 차원에서라도 여성정책은 어떤 식으로든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그마저도 없다. (물론 각 정당과 후보의 공약자료집에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결코 이번 선거의 의제로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성 중에서도 더욱 소수자인 이주여성의 문제나 결혼상태가 아닌 여성들의 주거문제, 빈곤여성의 문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문제, 성소수자 문제는 아예 누락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금까지 여성단체들이 으레 벌여왔던 여성정책 정책협약이나 매니패스토운동 역시 이전 선거보다 빈약하거나 했어도 티가 안 난다. 여성정책 운운은 배부른 소리, 하나마나 한 소리다. 이번 선거의 핵심은 '유지'냐 '심판'이냐를 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입장과 처지에 서 있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정책이 중심에 서는 선거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그런 이야기들이 '원천봉쇄'된 선거다. 이야기가 없는 선거, 정책이 설 자리 없는 선거.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정치는 실종되었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언제쯤이 되어야 투표가 '심판'이 아닌 '선택'인 선거를 할 수 있을까? 국민들이 어떤 정치지향과 정책을 선택할지 자유롭게 토론하고 더 나은 내일을 그려보는 선거는 언제쯤 가능할까?

4월 11일 나는 투표소에 갈 것이다. '심판'이 아닌 '선택'이 가능한 선거를 가능하게 할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할 것이다. 지금처럼 국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유지냐 심판이냐 양자택일하게 만드는, 어떤 정치적 토론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아예 실종시켜 버리는,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치'를 끝내기 위해 투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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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2012-04-10 17:32:28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래서 저도 투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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