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놀이, 그리고 창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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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놀이, 그리고 창조성
  • 김자영
  • 승인 2012.04.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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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김자영 / 인천시 여성문화회관 관장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할 무렵 내 아이가 재미 있는 게임 어플이라며 앵그리버드를 받아주었다. 그 게임이 어찌나 재미 있던지 노안이 시작되어 피곤한 눈으로 정신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저녁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눈이 아프도록 손가락을 움직여댔다. 남편은 스마트폰 폐해라며 겨우 그 정도인 나를 보곤 폐인이라며 혀를 끌끌 찼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포맷하며 앵그리버드는 내 폰에서 사라졌고 그 김에 앵앵대며 이런저런 모습으로 날아가 숨어 있는 돼지를 공격하던 앵그리버드는 내게서 잊혀져버렸다.
 
그런데 총선 직전 초록돼지를 공격하는 노란 앵그리버드가 투표독려와 함께 뉴스에 나타나면서 갑자기 앵그리버드가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게임어플을 받으려고 하니 space편이 나와서 중력을 이용한 직선과 포물선 공격이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 우주유영의 공격으로 발전하여 있어 무중력 우주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격을 생각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게임의 단순성이 없어진 것은 내게 재미 있는 휴식이 아니라 과업이 되었다. 힘의 원리나 운동성의 이해 등이 약한 내겐 그것조차도 머리쓰기여서 쉽지 않았다. 그 게임이 나에겐 잘 하지 못하면서도 중독성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니 허무한 피곤함이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놀이였다. 시소나 그네를 타며 발을 구르고 상대방과의 균형을 나도 모르게 맞추며 몸을 띄워 기분 좋게 하늘을 날듯 높이 오르던 기억. 5개 돌로 1년, 2년 세며 수를 쌓았던 공기놀이, 또 공기돌을 한아름 쌓아놓고 건드리지 않고 많이 가져가기 위해 가슴 졸이며 살금살금 집었던 많이공기. 전래동요를 부르며 마당 한켠이면 가능했던 고무줄놀이. 고무줄을 넘느라 맞았던 바람, 뛰는 순간에 한없이 넓게 가슴으로 들어왔던 하늘. 아무 곳이나 빈터에 나뭇가지나 돌부리로 선을 긋곤 칸을 쳐서 돌맹이만 하나 있으면 발 보폭을 넓게도 뛰고 한 발로도 칸을 넘나들었던 팔방놀이. 지금은 규칙조차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남동생과 어울려 놀았던 자치기놀이. 절묘하게 손에 잡은 긴 막대기가 바닥에 놓인 작은 막대기를 쳐서 튀어 오르면 그 작은 막대기를 멀리 쳐내면서 느꼈던 통쾌함. 
 
밖에서 많은 놀이를 즐기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내 유년시절도 이런 기억들을 기분 좋게 지니고 있다. 아마 이런 아이들의 놀이는 자신의 몸 움직임도 이해하고 힘의 원리와 균형도 저절로 익히는 계기로 되었다. 자연의 이치와 흐름, 아름다움까지 깨닫는 감각의 예민함을 발달시키는 도구도 되었을 것이다.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한복을 입은 개그맨이 "전통놀이 다 어디 갔어!" "전통문화 다 어디 갔어!"라며 호통을 치고 10년 전, 20년 전 유행했던 것들을 소재로 잊어버린 시간을 되돌려주며 한바탕 웃음을 안겨준다. 전통놀이, 문화라고 하기엔 웃음이 터지는 지난 시절 아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음악, 패션, 놀이 등 많은 것을 보여주는 데 촌스럽지만 그 당시 아이들이 푹 빠져 즐겼던 놀이와 문화들을 거쳐 현재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이 탄생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놀이와 문화는 즐겁게 행하는 중에 내 마음과 몸이 온통 몰입하여 맞닿았던 일이라는 게 중요하다. 그러한 놀이의 즐거움은 기성세대 이해 여부를 떠나 긴장과 성취감, 그리고 기쁨을 유발시켰을 것이다.(물론 그 건강한 즐거움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놀이는 지속하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이끌어내고 의무적인 긴장감 없이 즐기는 일들이다. 곧 놀이의 핵심은 즐거움이다. 게임이 규칙 안에서 정해진 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 즐거움의 추구이며 행동의 방식이다. 게임은 결과가 중요하지만 놀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은 끝없는 탐색 가운데 각 개인의 독특한 느낌으로 충만해지고 즐거움이 되며 창조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 
 
융(Carl Gustav Jung)은 새로운 것의 창조는 지성이 아니라 놀이 본능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그 많은 예술가나 과학자들의 일대기를 보면 평범한 모범생이었다는 이야기보다 골칫거리 괴짜가 많았던 이야기를 수없이 접한다. 이는 각자의 즐거운 놀이에 심취해 창조의 세계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놀이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들의 산만한 부스럭거림은 자취를 감춘다. 마치 무아의 경지에 다다른 듯 모든 것을 잊은 채 집중한다.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있는가! 내면의 끝없는 창조의 영감과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느끼는 예민함으로 즉흥적인 마음의 동요를 놓치지 않고 집중하는 것. 이러한 놀이는 독창적인 문화를 이끌어내는 근원으로 되고 자유로운 탐색을 가능하게 한다. 특별한 목적이나 동기가 없었던 놀이, 의무도 아니고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놀이, 이러한 놀이의 자유로움과 직관이 바로 창조적 영감을 불러오는 힘이다.

과학, 수학, 음악, 미술, 건축, 어느 것도 상상력의 빈곤에선 발전할 수 없다. 그 상상력의 창조는 무한한 자유로운 놀이에서 기인함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해결해야 하는 과업이 아닌 풀어가는 놀이로 즐기는 유연성을 통해서 행복한 창조 작업으로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문화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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