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흩날리는 공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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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흩날리는 공원의 밤
  • 홍새라
  • 승인 2012.05.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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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홍새라 / 소설가


아이가 스무 살이 넘어 독립된 생활을 하자 마음이 쓸쓸해져서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이름도 늦둥이로 지었다.

늦둥이가 제가 살아갈 집과 주인에게 적응하고 나 또한 강아지를 돌보는 일에 익숙해져갈 무렵,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밤 산책을 나갔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쳐다보며 둥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벚나무에서 꽃잎 흩날리는 것을 맞으며 즐거워 하다가 송아지만 한 개 두 마리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금방이라도 물어뜯길 것만 같아서 얼른 거리를 두고 피했다.

거리는 멀어졌지만 호기심까지 거둘 수는 없었던 터라 흘깃흘깃 그 개들을 훔쳐보았다. 그러다가 그 중 한 마리는 초등생쯤 되는 아이가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도 알았다.

아니 어린애도 쉽게 다루잖아?

여러 가지 호기심이 더욱 발동해서 둥이를 데리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개의 품종은 썰매를 끄는 시베리안이라고 했다. 3~4개월 된 것들이 송아지만 하니 성견이 되면 얼마나 크는가 물었다. 웬만한 남자 어른의 키보다 더 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연히 단독주택에서 지내려니 했는데 키우는 곳도 연립주택 안이라고 했다. 좋다고 달려들어 안기면 주인이 뒤로 넘어질 것 같았다.

3개월 된 우리 집 푸들 늦둥이가 그들이 무서워서 뒤돌아 앉아 있는 사이 개를 산책시키려고 나왔던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 곁으로 모여들었다. 품종도 다양했다. 얼굴이 주름으로 가득하고 코는 납작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퍼그, 오밀조밀한 눈 코 입에 화사한 털이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는 포메라이언, 직사각형 얼굴에 코와 입 주위에만 털이 길어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드는 슈나이저, 여느 개들과 달리 털이 길고 아름다운 요크셔테리어 등등.

우리가 앉아서 개에 관한 담소를 나누고 있노라니 어린 아이들도 모여들었다. 무섭다고 울며 돌아가기도 하고 다음에 보자고 인사하며 떠나기도 하며 용감하게 만져보며 즐거워하는 아이까지 그곳에 모인 개들만큼이나 성격도 다양했다.

하는 짓이 둥이와 전혀 다르지 않아 어느새 예뻐진 시베리안을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러보았다. 둥이는 여전히 떨며 몸을 웅크린 채 시베리안 친구들의 배웅을 받았다. 머리 위에서 눈송이처럼 어지럽게 날리던 벚꽃을 뒤로 하며 돌아오는 길, 문득 공원의 밤 문화가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연애하는 중고생들이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모습만 보이곤 했기 때문이다.

늦둥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공원에서의 변화된 문화만이 아니다. 한 건물에 살고 있지만 서로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지내던 아파트 같은 동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엘리베이터에 타거나 길을 걸을 때도 대개는 무표정하던 얼굴들이 둥이를 본 순간 활짝 핀 꽃이 되어 다가오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랴. 마치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다정한 이웃이 되었다.

그 영역이 날로 넓어져서 이전에는 그냥 지나쳐도 아무 어색함을 못 느꼈던 옆 동 사람들과 안면도 트게 되었다. 특히 개 키우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궁금한 점이나 품종이 다른 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것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말이다.

핵가족화가 된지 오래고 혼자 사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 주변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에 따라 개와 관련된 시설들이 늘어나고 개동호인들의 만남 등 어디에서나 모임이 이루어진다. 음주가무로 얼룩진 우리 생활에 또 하나의 새로운 풍속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오늘도 개와 더불어 산책하며 하루를 돌아본다.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동물과 함께하는’ 이 문화를 잘 가꾸어서 삭막한 도시의 삶이 좀 더 풍요롭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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