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이야기
상태바
시와 음악 이야기
  • 정민나
  • 승인 2012.07.17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학의 향기] 정민나/시인



장마철이어서 습기와 부족한 일조량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거나 불쾌감을 느끼는 날이 많아졌다. 가수 박인수와 이동원이 함께 부르는 정지용의 시 <향수>를 어둠 속에서 듣고 있노라면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이 때 문득 페이터(W. Pater)의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시가 음악성의 아주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암송해온 『일리아드 The Iliad』와 『오딧세이 Odyssey』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서정시 「황조가」가 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 「산유화」,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먼 후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는 민요의 율조를 정교하게 다룬다. 신경림의 (「목계장터」, 「농무」, 「달 넘세」) 역시 전통적 가락의 친숙성을 현대시에 감각적으로 수용한 시이다. 또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서정주의 (「오갈피나무 향나무」)가 음악적 효과를 최대로 살려 대중적 공감을 얻고 있는 시이다. 민중의 사랑을 받는 현대시 (「청산별곡」)도 운과 율의 반복성으로 고려가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를 읽었을 때 율동이 살아나는 언어의 음악적 효과는 마음을 움직인다. 19세기 독일 예술 가곡이 시문학의 융성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데 볼프 (Hugo Wolf, 1860~ 1903)는 시의 장면이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하여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도록 했다. 이 시기엔 괴테, 하이네, 쉴러 등 시인들의 시를 여러 작곡가들이 재해석하여 시와 음악의 융합을 꾀하였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슈만의 <시인의 사랑>과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일정한 주제가 있는 연작시에 곡을 붙여 만든 연가곡이다. 시의 운율과 감정의 기복을 선율과 리듬, 화성과 피아노 반주 등의 음악적 특징을 살려 표현한 것이다.

시인과 가수가 팀을 이루는 문학과 음악의 결합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2012년 4월, 3회째를 맞이한 ‘인천 AALA 문학포럼’ (주제: 생명을 위한 노래)의 < 시노래 콘서트 >는 노래패의 대표적 가수와 아시아•아프리카의 시인, 한국의 작가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읊조리고 낭송하여 감동을 주는 문학 양식으로서의 시는 음악적 리듬과 호흡을 만나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구체적인 사건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 됨으로써 사람들의 감정을 재현하는 판소리나 힙합은 완전히 몸에 베인 리듬으로 시를 완벽하게 구현하여 집단적 흥분과 유대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시와 음악은 감각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함으로써 생리적 상태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단순히 ‘시와 음악’이라는 예술적 범주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뮤지코필리아』는 음악 사랑을 통해 손상된 운동계를 활성화 시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문학적인 글쓰기를 하는 “의학계의 계관 시인”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음악으로 파킨슨,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치매, 실어증, 기억상실증 환자들의 고정된 몸과 마음을 활성화 시킨 의사이다. 시나 음악은 이해하기 쉬워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임상 실험을 통해 인간이 ‘음악적인 종’임을 명료한 문체로 표출해 낸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시인 중에는 빠른 비트로 이질적 세계관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 힙합 창법을 고유한 목소리로 구사하는 이승원, ‘혼종성’이라는 새로운 시적스타일을 다성의 시학으로 보여주는 황병승, 불협화음의 세계를 신파와 순정, 세속과 사랑이라는 ‘文語와 뽕짝’의 만남으로 이어주는 장석원이 있고 ‘말놀이 에드리브’를 이어가는 ‘오은’은 언어유희의 미학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한 나라의 언어가 그 나라의 음악 구조에 중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역부족이겠지만 침체된 문학과 음악이 만나 긴밀한 재창조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