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 가면 아름다운 '다랭이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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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가면 아름다운 '다랭이마을'이 있다
  • 이창희
  • 승인 2012.08.1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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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아름다운 계단식 논

"어서오시다~"

남해대교를 건너자 생소한 사투리가 가장 먼저 외지인을 반긴다. 산기슭에서 바닷가 지척까지 파릇파릇 논이 흘러내린 한 장의 마을 사진을 본 이후, 한반도 남쪽 끝의 유혹을 떨칠 수 없다. 강원도에서 계단식으로 일군 밭은 가끔 만났지만 언덕에서 바다로 끝없이 이어진 계단식 논은 접한 적이 없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로의 여행.

 ‘다랑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골짜기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라는 해설이 나온다. 지역에 따라 ‘다랭이’ 또는 ‘달뱅이’라는 사투리로 불린다. 남해군 홍현리 가천마을에 들어서자 손바닥만한 논이 언덕 위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바다까지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45도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계단, 680여 개의 논이 펼쳐진 것이다. 길도, 집도, 논도 산허리를 따라 구불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다랭이마을 이창남 위원장은 “3평밖에 안 되는 작은 논부터 300평짜리 논까지 크기가 다양해요. 선조들이 산기슭에 한 평이라도 더 논을 내려고 90도로 곧추 세운 석축을 쌓았죠. 기계가 들어가지 못해 여전히 소와 쟁기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곳이 많지만 지금은 다랭이논이 마을을 살리고 있어요”라며 마을 역사를 소개한다. 힘겹게 농사를 짓던 다랭이마을은 이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 각광받는다. 선조의 땀이 밴 한 뼘의 역사가 큰 희망이 된 셈이다.

흔히 바닷가마을 하면 어업이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설흘산과 응봉산을 등에 업은 다랭이마을은 바로 앞에 푸르른 태평양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도 마을에는 포구가 없다. 그 이유를 마을 아래쪽 해변에 내려오면 금세 알게 된다. 거친 파도와 아슬아슬한 바위를 만나는 순간 배의 쉼터가 되지 못한 사연을 몸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태풍 피해도 많아 해안가의 바위 사이를 잇는 다리는 매년 개보수를 해야 한다. 마을 지붕은 모두 나지막하다. 매서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입구 전망대에 서면 다랭이논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곡선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산비탈 등고선을 따라 원래 지형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있다. 2005년 문화재청은 명승 제15호로 다랭이논을 지정했다. 58가구 150여 명의 주민은 집을 헐고 새로 지을 수 없다.

다랭이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구역이 됐기 때문이다. 모내기철이 한창인데 아직 빈 논이 꽤 있다. 여전히 기계화되지 못하고 직접 손으로 쟁기질과 써레질을 해야 하는 힘겨운 농사가 이곳의 논을 쉬게 만든다. 그래도 하나하나 손 모내기를 하고 있는 주민을 다랭이논 위에서 만났다. 사진을 찍는다고 논두렁에 내려서자 발이 빠진다며 장화를 신어야 한다고 걱정해준다.

마을 어귀로 나가니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한 쌍의 바위가 보인다. 여기서 기도를 올리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미륵바위, 일명 암수바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구불구불 골목길인 고샅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집과 집 사이에 소박한 돌탑이 서있다. 마을의 액운을 막아준다는 ‘밥 무덤’이다. 매년 음력 10월 15일이면 마을 제사인 동제를 올리는 곳이다.

경사진 언덕에 층층이 들어선 집들 사이로 특이한 옛집도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큰 바위가 있다. 집주인 송수량(86)할머니는 “내가 시집오기 전부터 이렇게 집 마당에 바위가 있었지. 이 집이 90년쯤 됐을 거야.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으면 대궐 같은 집에 떵떵거리고 살 텐데 말이지”라며 집 소개를 한다. 

마을을 한참 둘러보던 중 더위를 식히자며 시골할매막걸리 식당에 들렀다. 주인 조막심(81)할머니는 “16살 때 위안부 징집을 피해 산골마을로 시집 왔잖아. 전쟁 때는 요 앞바다에서 포를 쏘고 난리가 났었지. 마을 해안가까지 시체가 떠내려와서 주민들이 묻어주고 그랬어”라며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푸른 바다가 펼쳐진 집 마당에 앉아 다랭이마을 김효용사무장과 파전에 막걸리를 곁들인다. “일본 다랭이마을 주민과도 교류를 하는데, 이렇게 다랭이논이 촘촘하고 가파르게 펼쳐진 곳은 없더라고요.

정기적으로 마을에 찾아오는 주한외국인단체에게 왜 우리 마을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이곳에 가장 한국적인 매력이 있다나요.” 5년 전 귀농한 김사무장은 5대째 마을을 지키고 있다. “다랭이마을이 명승지가 됐지만 제약사항이 많아 젊은 세대가 살기 쉽지 않아요. 앞으로 고향 친구들이 귀농해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게 목표입니다”라며 포부를 밝힌다.

다랭이마을이 아무리 유명해져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소리다. 가장 한국적인 매력은 그림 같은 절경이 아닌, 한 뼘의 땅을 일궈내는 사람들의 땀에 맺혀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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