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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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 178호)
  • 이창희
  • 승인 2012.12.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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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상이 아름답다.

전등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불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건물이다. 위 건물은 보물 제178호로서 1916년 해체수리 때 발견된 것에 의하면, 이 건물은 1605년(선조 38) 화재로 절반이 탔고, 1614년(광해군 6) 12월 다시 짓기 시작하여 1621년 윤2월 7일 서까래를 놓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중기의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막돌허튼층쌓기로 된 높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원기둥을 세웠으며, 창방으로 기둥 윗몸을 결구하여 그 위에 평방을 놓았다.

공포는 외이출목·내사출목으로 외부로 뻗은 살미첨차의 끝을 보면 초제공과 이제공은 앙서로 되어 있으나, 삼제공은 수서로 되어 있고 가냘프게 길어졌으며 곡률(굽은 정도)이 심하여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집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귀공포에서 귀한대[귓기둥에서 도리와 45°각도로 내민 포살미] 삼제공 위에 나무로 깎은 인물상을 조각하여 올려놓은 것은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내공포는 제공 끝이 판형으로 되어 있으나, 기둥 위만은 교두형(깎아낸 모양)으로 되어 있다. 공포의 배치는 전후면의 각 주간에는 2구, 양측면의 어간에는 3구, 변간에는 2구씩 두었다.

가구는 내부에 고주를 세우지 않고, 대들보를 앞뒤 평주위에 걸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게 하고, 여기에 우물천장을 가설하였으며, 천장은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다. 또, 양 측면의 어간 평방에서 보머리에 용머리를 조각한 충량을 걸었다.

불단 위의 닫집은 처마를 정자각모양으로 꾸미고 16개나 되는 공포를 포개서 배열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 투각한 장식판과 부룡(뜬 용)·극락조 등을 매달아놓았는데 능숙한 조각공의 솜씨가 잘 발휘된 수준급의 작품이다. 지붕 위 기왓골 끝에 백자로 만든 연봉오리 장식이 올려져 있다.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전등사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때문이다.

대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에 웬 벌거벗은 여인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숭이는 사자나 용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호하는 짐승으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사찰에 모셔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사 대웅전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나부상이라는 데 의견이 더 많다.

이 나부상과 관련해서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되었다.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된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어서 불사 끝내시구 살림 차려요.”

“좋소. 우리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오순도순 살아봅시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수. 찾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

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도편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전등사 대웅보전에 얽힌 전설이다. 이 나부상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제각각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옷을 걸친 것도 있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만 처마를 떠받든 조각도 있으며 두 손 모두 올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전등사 대웅전의 나부상은 희랍의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전각이지만 그런 조각상을 세운 당시 도편수의 익살과 풍자, 그런 파격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전등사 스님들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스님들은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올려놓았던 것일까?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그렇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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