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華嚴)의 세계(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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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華嚴)의 세계(世界)
  • 지용택
  • 승인 2013.05.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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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택칼럼] 지용택/새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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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하면 불자는 물론이요, 일반인들도 내용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 누구나 아는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입니다. 여기서 화엄(華嚴)이란 꽃으로 장엄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꽃이란 열매의 시작이며 싹에서 시작하여 낙화할 때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꽃이며 생명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 탄생할 때 완전하게 태어남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의 생명에 대해서는 티 없는 생명이라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자연에서 꽃들이란 화려하고 값비싼 장미, 백합, 튤립 같은 꽃들만이 아니라 어느 들판, 두메산골의 골짜기, 논두렁에서 볼 수 있는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들꽃과 잡초로 장엄(莊嚴)을 이룹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시절에 맞춰 제 역할을 다하며, 이렇게 소리 없이 모여 자기 나름의 존재 이유를 나타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장엄입니다. 그래서 거체전진(擧體全眞)입니다.
 
『화엄경』 입법 계품에 보면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게 법문을 듣고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즉, ‘아뇩다라 삼막삼보리’ 석가모니세존의 깨달음의 경지를 가기 위해서 선지식 53분을 찾아 한결같이 ‘보살행과 보살도’를 배우는 방법을 묻습니다. 우리가 매일 읽는 “관자재보살이 지혜의 완성을 실천하고 있을 때”로 시작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과 같은 뜻이라 하겠습니다.
 
선재동자가 친견하는 28번째 선지식이 ‘관세음보살’입니다. 불심 깊은 고려의 화공(畵工)들이 이 장면을 정성을 다해 재현한 것이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감탄해 마지않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입니다. 이 고려 불화는 세계에 모두 40여 편이 남아 있는데 이것이 고려의 정신·문화·힘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선재동자가 만난 것은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같이 위대한 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는 어린 아이도 있고 창녀, 악마 등 별별 중생이 다 있습니다. 이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화엄경』과 『금강경』에서는 “네가 곧 부처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모든 존재를 포함한 삼라만상이 모두 위대한 부처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 위에 돌 하나, 풀 한 뿌리, 짐승들, 나무 한 그루, 흐르는 물 그리고 72억 생명 중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미한 사람조차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이 얼마나 광대하고 큰 것인지 그 깊이와 높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큰 생각이며 참된 것입니다.
 
이것은 명성 높은 화가가 전력을 다해 그린 어떤 풍경화보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광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시장통의 생명력이야말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골목마다 성시를 이뤄 혼잡하다가도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 시장은 파시가 되고, 다음날 아침이면 또다시 사람이 모여들어 전날의 풍경을 재현합니다. 불교의 이치는 꽃으로도 장엄을 이루지만 그보다 더욱 귀한 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름 없는 중생들의 삶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재래시장의 풍경 하나에서도 화엄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불교는 『화엄경』이 없었더라면 기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엄이 없이는 선(禪)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스님과 중생들 중에는 법력이 높은 분도 계시고, 낮은 분도 계시며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장엄이며 거체전진입니다. 『노자(老子)』(4장)에 보면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덕을 먼저 쌓은 분이 뒤처진 사람을 교화·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인천 불교가 화광동진하여 조화를 이룬다면 단결이란 속된 표현보다는 얼마나 믿음직스러울까요?
 
석가모니세존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먼저 부처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석가모니세존께서 진정으로 불제자들에게 바라시는 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모두 부처를 바라보는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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