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료복지시설의 촉탁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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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료복지시설의 촉탁의사
  • 김정아
  • 승인 2013.06.0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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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정아 /햇살노인전문기관 온가정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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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법이 시행되면서 요양원이라고 불리던 요양시설이 새로운 법에 따라, 시설 및 인력기준을 갖추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노인의료복지시설(이하 시설로 칭한다)로 통합되었다. ’의료’복지시설이라는 명칭을 듣고 우리 환자 중에는 요양원이 병원에서 해 주는 치료도 싼 값에 다 해 주는 것 아니냐 하고 고마워하시는 분도 계셨으나, 장기요양보험은 기본적으로 신체활동 혹은 가사활동 지원 등 ‘수발(돌봄)보험’이다.
 
그러나 시설에 입소하는 어르신들은 수발만 열심히 한다고 일상생활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요양 1,2 등급 어르신은 말할 것도 없고, 3등급 어르신의 시설 입소 자격을 보면 ‘배회나 폭행 등 문제 행동 때문에 보호자가 없다면 하루 종일 밖에서 문을 잠궈 두어야 하는 상태에 있거나, 치매증상이 심하여 수발자가 24시간 지켜야 할 정도인 어르신’이다 보니 질병으로 인한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 주지 않고는 수발을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노환으로 단순 수발만 필요한 어르신은 10%도 안 되는 것이 현재 시설의 현실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부딪히는 의료적 상황을 의사나 의료 처치 없이 대처해야 하는 시설 직원들은 크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시설은 병원이 아니다. 시설의 의료 문제를 대처하기 위해서 ‘노인의 심신상태나 건강 등이 악화되지 않도록 의료서비스와 연계하여 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급여제공 원칙에 명시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 협약의료기관 및 촉탁의 제도를 두고 있다. 즉 입소자 건강관리 책임자로 의사가 근무하고 있거나, 상주하는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거의 전부가 이 경우에 해당하지만) 촉탁의사나 협약의료기관을 계약하여 2주에 한번 이상 의사가 시설을 직접 방문하여 어르신들을 진찰하고 의료적 상황을 파악하여 필요한 약물을 처방하고, 건강 상태가 악화된 어르신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있다. 현행 장기요양법에는 촉탁의사 이외에는 시설 내에서 어르신을 진찰할 수 없게 되어있으며, 와상상태인 어르신을 모시고 외부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받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촉탁의사가 시설의 의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촉탁의사로 있는 시설 어르신들의 평균 연령은 만 83세이다. 어떤 병이든 없을 수는 없는 나이이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고 그 동안 돌아가신 어르신도 많다. 또한 우리 시설만 하더라도 보호자들이 시설 운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데, 장기요양기관이 83세 노인의 의료서비스를 배제하고 수발서비스만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인’의료’복지시설의 당연한 조건으로 의료적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2주에 한번, 두 시간 동안 어르신들을 성실히 진료한다고 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어르신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만 하더라도 시설이 우리 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 두세 번은 어르신들에 관하여 전화상담을 하거나, 아프신 어르신들이 휠체어를 타고 직접 내려 오시기도 하고, 완전 와상인 어르신을 위하여 방문하는 날이 아니라도 올라가 진료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의료적 문제는 끝이 없다. 장기요양보험 첫 해에는 노인의료에 관심이 많은 개원의사들이 촉탁의사를 하기도 했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4-5가지 질병을 한꺼번에 가진 노인의 진료를 책임진다는 것은 열정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노인환자 유치를 바라는 종합병원을 협력의료기관으로 하여 그 병원에서 의사가 파견 나오는 win-win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니 의사는 자주 바뀌고 어르신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정을 갖는 의사는 드물어질 수 밖에 없다.
 
2013년 1월 보건복지부에서는 ‘노인의료복지시설 건강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입소 어르신들의 건강관리와 의료연계 서비스를 표준화하면서 체계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지침이다. 촉탁의사의 진찰 방식과 서류작성, 시설 직원과의 의료적 의사소통 등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나서 그 지침을 따라줄 수 없는 바에야 차라리 촉탁의사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이라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촉탁의사와 함께 정해진 두 시간 동안 시설 라운딩이라도 해 보고 나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지 담당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 지침대로 시행하자면 2주에 한번 방문이 아니라, 법안 제정 초기에 잠깐 논의된 대로 주 2회 이상은 시설 내 진료를 해도 만족할 만한 평가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 시설 진료를 다녀왔다. 총 60명 어르신 중에서 14명이 음식을 입으로 드시지 못해서 비강영양 튜브를 꽂고 계신다. 3명이 열이 나고 있으며 1명이 탈수 증상을 보인다. 다른 3명 어르신은 문제 행동이 심하여 같은 방 어르신들이 덩달아 잠을 못 주무시고 1명 어르신은 폐렴으로 입원 중이시다. 15명 어르신의 보호자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이미 쓰셨다. 제도가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이제는 이 어르신들은 집으로는 못 가실 것 같다. 수발보험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어떻게 의료적 보완을 해야 할 지 현실적으로 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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