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처럼 살다가 섬에 오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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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처럼 살다가 섬에 오니 좋아요."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9.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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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남초등학교 승봉분교, 신태식 섬마을 선생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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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품처럼 살다가 섬에 들어오니까 좋아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아침마다 이장님댁 닭 우는 소리에 깨요. 퇴근해서 밥 먹을 때 식구들 생각나면 라디오를 듣고, 밭농사도 짓습니다. 계란말이에 넣어먹으려고 쪽파도 심었고, 근대도 심었습니다.” 지난 9월 1일에 주안남초등학교 승봉분교로 발령받은 신태식 선생님(50). 그는 섬에서 교사생활을 한 지 보름 남짓 되었지만, 섬이 조용하고 한적해서 좋다. 동네 여느 아저씨처럼 편한 모습으로, 수시로 출몰하는 뱀을 쫓으려고 긴 작대기를 들고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사방이 논에 둘러싸인 학교에는 물뱀이 자주 올라오기 때문이다. 혹여나 독 있는 뱀이 올라올까봐 걱정도 된다. <인천섬마을조사단>과 함께 승봉도에 갔다가, 스스럼없이 섬마을에 녹아드는 선생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심심하긴 한데 바다가 잘 있나 한 번 둘러보고, 마을도 한 바퀴 돌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젠 도시에서 살고 싶지 않죠.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스트레스가 없어서 괜찮아요.” 신 선생님은 자신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섬에서 근무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논두렁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이 보이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한다. “밥 먹었냐?” 그는 시골에 있다 보니 사람이 반갑고 그립다. 지렁이 한 마리에도 애정이 간다. 눈으로 보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등 섬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조용하다. “자연에 사니까 때가 바뀌는 걸 알겠더군요. 바다가 참 맑아요. 섬사람들은 소라나 전복을 따갖고 오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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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한가운데 있는 승봉분교와 사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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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 옆으로 배추와 쪽파, 근대 등 여러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부품처럼 살다가 섬에 오니 좋다.
섬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조용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인천남초등학교 승봉분교는 학생이 모두 여섯 명이다. 6학년은 없고 한 학년에 한 명씩이고, 4학년만 두 명이다. 선생님은 분교장을 포함해 네 명이고, 복식 수업을 하고 있다. 신 선생님은 4학년 두 명을 맡고 있다. 그는 애들한테는 혜택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영어순회교사가 있어서 여기 승봉도랑 이작도를 왔다갔다 하면서 가르칩니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피아노랑 주산도 배우죠. 애들이 중학교 갈 때는 뭍으로 나가야 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노니까 좋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착할 수밖에 없겠죠.”

섬마을조사단 가운데 한 사람이 학교 청소는 누가 하냐고 물었다. “선생님들이 해요. 섬이라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냥 다 먹어요. 1회용 안 쓰고 다 먹어요.” 원두커피를 손수 갈아서 내려주면서 선생님은 섬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들 급식이요? 교육청에서 지원해주죠. 하지만 애들한테 밥 해 먹일 사람이 없잖아요. ‘바다가 보이는 집’에 가서 점심 먹어요. 거기가 식당 겸 펜션이거든요. 애들한테 배삯, 급식비는 지원이 잘 되고 있습니다. 소이작도에 사는 애들은 대이작도에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하니까 배삯이 지원되거든요. 어느 섬에선 학부모가 배삯을 받고도 제때 안 보내서 수업 결손이 생기기도 한다네요.(웃음) 아이들 수가 적다보니 사람 두고 밥 먹이기가 어렵죠. 섬에서 일하면 체류비, 인건비가 괜찮습니다. 애들도 도시에 비하면 좋죠. 애들이 적어도 예산은 똑같으니까, 더 많이 나온다고 보시면 되죠.”

섬으로 발령받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심심하지 않냐고 물었다. 퇴근도 이른 데다, 사택도 바로 옆에 있는데 출퇴근하느라 시간을 쓰는 것도 아니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금했다. “할 일 많아요. 밭도 가꾸고, 악기도 다루고 할 일이 널렸습니다. 좀 젊은 선생님들은 섬에서 지내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나이가 있는 사람은 섬에서 지내기 참 좋습니다. 임기를 채우기 전에 학생들이 자연 감소되면, 그럴 때는 섬 안에 자리가 비면 나가는 자리를 먼저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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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쫓는 작대기를 들고 섬마을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생님.
 

 
할 일 많아요.
밭도 가꾸고, 악기도 다루고
할 일이 널렸습니다.

신 선생님은 교직 생활 24년째다. 일반대학 영문과를 다니다가 제대하고 다시 대입시험을 치르고 교대에 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방향을 틀었죠.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교사생활은 재미있습니다. 우리 승봉분교에 있는 선생님은 모두 남자 선생님입니다. 부부교사는 섬에 먼저 보내줍니다. 섬에도 급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연신 커피를 내리느라 바쁘다. 커피향이 도서관 안을 가득 메운다. “커피는 볶아서 사흘 정도는 맛있습니다. 이 커피는 뒤 끝에 신맛이 있는데, 괜찮으세요? 커피를 왜 배웠냐구요? 이 다음에 정년퇴직하고 커피장사 하려고 배웠습니다.(웃음) 10년 금방 가요.” 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뭍이 더 생각나지 않겠냐는 물음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도시 생활에 질리기도 하고, 삶을 돌아보고 싶기도 해서 들어왔어요. 바로 전에는 경인교대 부설초등학교에서 일했죠. 거기보다는 여기가 조용하잖아요. ‘조용히 살고 싶어서!’ 섬으로 왔어요. 왠지 도시에서는 ‘밀려서’ 사는 것 같더군요.”

승봉분교에서는 정규수업 5교시가 끝나면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방과후 수업을 진행한다. 영어, 단소, 마술 등 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아이들을 즐겁게 가르칠 수 있다. 식사는 가끔 모여서 먹지, 자주는 같이 먹지 않게 된다. 주말에 선생님들은 집에 갈 때가 많지만, 그래도 한 명은 꼭 남아야 한다. “혹시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하면 누군가 수업을 해야 하니까요. 일정을 짜서 누군가 꼭 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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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겸 보건실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인천섬마을조사단.'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하면
누군가 수업을 해야 한다.
일정을 짜서 누군가 꼭 남는다.

운동장에서는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데 뱀이 그렇게 많냐고 물었다. “뱀 많죠. 다 친구들이에요. 잡으려고 하진 안아요. 걔들 영토니까. 논뱀은 괜찮아요. 혹시 독이 있는 뱀이 있을까봐 그러는 거죠. 애들한테 위험하잖아요. 며칠 전에는 세 번째 만난 물뱀도 있더라구요. 사이좋게 지내야요.(웃음)” 그러면서 선생님은 애들이 참 유식(?)하다고 덧붙였다. “애들이 해산물 이름을 참 많이 압니다. 집에서 늘 엄마 아빠가 말해서 아는 거죠. 두루미도 잘 알고, 애들은 섬에 있는 걸 많이 알아요.”

학생을 두 명만 놓고 가르치면 수업이 잘 되냐고 누군가 물었다. “‘콩나물시루’ 이론 있잖아요. 물을 주면 흘러내리지만 잘 자라잖아요. 어디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학생 중심’ 교육을 하죠. 아이들이 배우고 즐기다 가면 좋죠. 자연스럽게 배우는 데서 아이들이 즐겁지 않을까요. 여기 도서관에도 책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은 오자마자 여기서 책을 읽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교실로 갑니다. 재미있는 책 참 많아요.”

“아이들한테 섬은 안전합니다. 위험한 사람이 없죠. 시골이라 배타적인 부분이 좀 있지만, 그건 늘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런 거구요. 섬 사람들은 인심도 좋고 따뜻합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 그런가봐요. 나도 유리창에 있는 거미줄에 있는 거미도 반갑더라구요. 거미가 잘있나 들여다보기도 하죠. 생명력을 느낄 수 있죠. 사람이 자연에서 사는 건 참 중요한 일입니다. 새도 가끔 들어오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예전에는 내가 잘 나서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섬에 들어오니까 덤으로 사는 인생처럼 느껴지네요, 하하. 커피 생각 나면 내일 오전에 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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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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