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나는 '인천사람이다' 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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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나는 '인천사람이다' 이로소이다
  • 이장열 기자
  • 승인 2013.11.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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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사람] 장종권 '아라문학'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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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남구 숭의동에 위치한 리토피아 사무실에서 최근 계간 문예지 [아라문학]을 창간한 장종권(1955년생) 주간을 만났다. 13년 동안 계간문예지 [리토피아]를 발행하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문예지를 만든 곡절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그 곡절은 일부 [아라문학] 창간사에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인천문학의 보다 폭 넓은 수용에 있어 [리토피아] 역시, 일정 부분 한계가 있었음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다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아라문학]이 필요했다.’  ‘고사 직전의 문학이 자본을 향해 타협의 손을 내밀고 구원의 눈빛을 솔직하게 드러낸다고 해서 과연 회생의 길은 있을까. [아라문학]이 그 물음의 가운데에 서고자 한다.’
 
‘내가 소중하고 당당한 우주적 존재이어야 우리 속에서 살아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로컬리즘 역시 소중하고 당당해야만 글로벌리즘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문학의 특성화와 스러져가는 문학의 중심을 되세우기 위해 [아라문학]을 창간한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결국, “인천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인천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30년 이상의 세월이면 자신도 당연히 인천사람이어야 맞다”는 그의, 인천문학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소신이 [아라문학]을 창간한 곡절로 보인다.
 
 
[리토피아] 창간사에는 인천이란 단어가 어디에도 없다.
 
장종권 주간은 2001년 [리토피아] 봄호를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발행한다. 인천보다는 서울에서 문예지를 발간하는 것이 여러 점에 있어 발전적이라는 생각으로 서울에서 [리토피아]를 창간했다. 그러나 인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문예지 편집과 발행까지 병행하기에는 우선 몸부터 힘이 들었다. 또 하나 사무실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퇴근 후 다시 서울로 출근해야 하는 어려움을 계속하기 힘이 들었다.
 
그는 탱크처럼 일을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장종권 주간이 만든 [리토피아] 창간사를 살펴보면, 지역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호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리토피아]는 리터러쳐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라고 한다. 인천보다는 문학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리토피아]를 만들 때에는 인천이라는 지역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전국적인 수준급 문예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러나, [리토피아]를 발행한 지 3년이 지나자, 장종권 주간은 현재 리토피아 사무실인 인천 남구 숭의동으로 발행처와 사무실을 옮겼다. 이 때부터 이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타 지역에서는 [리토피아]를 당연히 인천의 문예지로 간주하고 있는데, 인천에서는 쉽게 인천의 문예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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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가 어디에서 창간이 되었건 간에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발행인과 주간이 인천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고, 발행처와 사무실이 인천에 있다면 그것은 인천의 문예지인 것이다. 인천 시인과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충분히 싣고 있으며, 타 지역에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또한 인천의 문예지 자격으로 전국 계간지협의회에 가입했다. 인천 지역 안배로 우수문예지에도 선정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장종권 주간의 말이다.
 
현재도 [리토피아] 편집회의는 서울 인사동에서 갖고 있다. 장종권 주간은 [리토피아]가 전국에서 현 위치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유능한 편집위원진이다. 둘은 질 좋은 필진들, 셋은 작지만 성의를 다하는 원고료를 들었다. 좋은 시인작가의 작품을 받기 위해서는 원고료는 필수다. 원고료 없이 문예지는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원고료 지급 없이 품격 있는 문예지를 만들 수 없음은 당연하다.
 
[리토피아]가 인천지역 문학인들에게 인색하다는 평가에 대해 다시 물었다.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리토피아]는 계간지라서 인천의 문인들 작품을 수용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전국의 좋은 필진들 작품으로 질을 높이면서 인천 문인들의 작품을 소개해야 상승작용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그의 말이다.
 
이런 편집방침이 무너졌다면 리토피아는 고만고만한 지역 문예지로 전락했을 것이며, 이런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는 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지역의 비판적인 분위기를 작품 수록면에서만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학산문학이나 작가들도 마찬가지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리토피아]가 더욱 강하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개인인 장종권이 만드는 문예지라는 생각에서 가슴을 열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며, 게다가 그가 인천 태생도 아니고, 인천에 쓸만 한 인맥이나 학연이 존재하지 못하는 데에서도 기인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장종권 주간은 [리토피아]를 통해 김구용시문학상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이 상은 그의 스승이기도 한 김구용 시인의 문학성을 기리는 상이다. 김구용 시인이 한국현대시사에 남긴 족적은 대단하다. 그러나 인천 지역에서는 그렇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장종권 주간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 자신에게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김구용 시인의 고향에서 이런 문학상 제정이 이뤄지도록 추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김구용 선생의 고향이 인천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로 인천지역 문학인들이 소홀하게 다가서는 것은 올바른 문학관이 아니다”고 말한다. “인천이 인천 출신 문인만 기리는 사업을 한다면, 그러면 세금도 인천 출신만 내야 하는 것 아니냐” 강하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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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인천문학을 살려내는데 기여할 것
 
장종권 주간의 2013년 [아라문학] 창간사에는 13년 전 [리토피아] 창간사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인천이라는 단어가 두 쪽 분량의 창간사에 스물네 번이나 나오고 있다. 분명 변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천문학판에 무릎 꿇고 [아라문학]을 바친다”고 선언한다. 수십 년 동안 정체되어 변화가 없는 인천문학판에 본격적으로 지형변화를 일으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문예지의 질적 수준은 [리토피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라는 무엇인가 물었다. 바다라는 옛말이라고 한다. “인천은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아라는 곧 인천이라는 말이다. 요즘은 아라뱃길이 생기면서 아라는 인천을 상징하는 단어로 인식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모여드는 끝없이 넓은 세계가 아라”라고 한다.
 
장종권 주간은 인천지역의 [학산문학], [작가들]과 인천문학의 발전을 위해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인천문단의 새로운 젊은 문인들을 발굴하고 존경하는 선배 원로들을 제대로 대접하기 위한 모색의 자리였는데,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야 되지 않겠느냐,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아라문학]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
계간지를 발행하려면 한 해에 네 권의 책을 만드는 데 기천 만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운영 경비까지 합하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장종권 주간은 13년 째 혼자의 힘으로 비용이 만만찮은 [리토피아]를 만들어 왔음에도, 또 다시 [아라문학]을 창간하여 지속적으로 발행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문학과 문예지에 대한 대단한 집념이 없이는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가슴에 시퍼런 칼이 꽂히고, 그의 분노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져도, 눈 감았다가 뜨면 송이송이 만발하는 꽃이 됩니다. 당신의 무서운 말도 알고 보면 아름다운 꽃입니다”(‘당신의 칼’ 가운데서, [장종권 시, 호박꽃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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