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수강신청전쟁, 학생 기본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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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수강신청전쟁, 학생 기본권 침해
  • 김용호 대학생 기자
  • 승인 2014.05.26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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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상아탑'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아야···

명나라 때 출판된 笑林에 이런 고사가 있다.


옛날 차윤이라는 사람은 반딧불을 잡아서 주머니에 담아 그 빛으로 책을 읽었고, 손강이라는 사람은 눈(雪)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책을 읽었다. 어느날 손강이 차윤을 찾아갔으나 집에 없었다. “어디 가셨소?” “반딧불을 잡으러 가셨습니다.” 얼마 뒤에 차윤이 답례로 손강을 찾아갔다. 손강이 뜰 가운데 한가롭게 서 있는 것을 보고 차윤이 물었다. “어찌 책을 읽지 않고 뜰에 나와 계시오?” “아무래도 오늘은 눈이 내릴 것 같지 않습니다.” 행위의 본질을 망각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다. 상아탑이라는 말은 속세를 떠나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를 뜻하는 말로,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생트뵈브가 낭만파 시인 비니의 태도를 비평하며 쓴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의 모습은 학생들이 도무지 학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2월과 8월 학생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추위와 더위 때문도, 개강을 앞둔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다. 바로 자신이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이 꿈꾸던 대학생의 로망 중 하나는 원하는 수업을, 듣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수업을 마음껏 들을 수 없다.


대부분의 대학교는 수강신청 시 선착순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학생들은 반 년에 한 번씩 해커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한국표준시각과 PC 시각의 오차를 수정한다. 그런 후에는 도메인 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서버의 시각을 표시해주는 사이트에 들어가 사이트 주소를 입력해 시간값을 얻는다. 인터넷이 느리면 불리하기 때문에 수강신청 당일 학교 근처 pc방에는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pc방을 찾는 대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들은 모두 같은 창을 켜놓고 같은 자세로 클릭을 하기 위해 기다린다.


수강신청.jpg

▲수강신청 당일 대부분의 학생들의 PC화면 모습이다. 추석 혹은 설 연휴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 대학생들은 수강신청전(戰)을 겪는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나타난다. 정각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클릭을 하다보면 그 과목이 신청됐는지, 혹은 신청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 조차 1분이 넘게 걸릴 때가 있다. 만약 1분 뒤에 그 과목 신청이 실패한 것을 알게 된 학생은 남아 있는 선택권이 거의 없다. 많은 강의들이 이미 마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어떤 과목을 가장 먼저 클릭할 것인지, 그리고 특정 과목의 실패 여부에 따른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 여러 개의 시간표를 짠다. 어떤 학생은 듣고 싶지만, 경쟁이 치열한 과목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다른 과목을 신청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인기있는 과목의 경우 공공연하게 매매가 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은 대학평가 요소에 들어가는 항목에는 신경을 쓰면서, 이러한 문제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매 년 수강신청 당일에는 수강신청서버에 문제가 생기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대학평가점수를 올리려는 노력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학생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모두 성공하면 ‘전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모두 실패하면 ‘전패’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예지만 수강신청에 ‘전패’하고 충동적으로 휴학까지 했던 학생도 있었다. 대학은 학생들이 학문을 닦으러 오는 곳이다. 그 시작은 학생들이 듣고 싶고, 관심이 있고, 공부하고 싶은 과목의 수업을 듣는 데서 시작한다.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의 기본권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강의를 듣는 것이다. 이 기본권을 지켜주어야 할 주체는 대학이다.


2010년, 당시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인 김예슬씨의 ‘김예슬 선언’ 이후 7일 중앙대 철학과 3학년 김창인(24)씨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라는 제목의 자퇴 선언서를 낭독한 후 자퇴했다. 학생들의 이러한 외침이 공허해져서는 안 된다.


인천in 대학생 기자단

김용호(dyd3g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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