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오르고 박수칠 때 내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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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오르고 박수칠 때 내려가라
  • 이수석(인천교육연구소, 석남중학교 교사)
  • 승인 2014.08.06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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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인천교육 미래찾기]

내가 잘하는 것

나는 어떤 의견을 먼저 내놓지 못한다. 머리가 부족해서 그렇고, 일에 대한 지속성이 떨어져서다. 의욕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자고 나에게 청하면, 그리고 내가 그 일을 재밌게 할 수 있으면 나는 그 일을 한다. 일이 재밌기 때문에 엉뚱한(?)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새롭고 다르게 진행하는 나를 보며, 함께 했던 동료들은 나를 인정해 주고 격려 해 준다. 그리고 다음에 또 진행하자며 청한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나는 다른 일을 찾기 위해 슬며시 뺀다. 지속성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면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거듭 청한다. 부족한 면들은 서로 채우고, 잘 할 수 있는 점들을 모으자며 거듭 청한다. 실수 투정인 나는 재밌고 유쾌하게 참여한다. 그러면 다음에는 이번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부족한 면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잘하는지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소개시켜준다. 그 사람을 추천한다.

대의명분이 있고, 그걸 실천할 시너지효과가 갖추어져 있다면 나는 그 일에 동참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것은 일이 잘되었을 때, 사람들이 박수칠 때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도지죄(餘桃之罪)를 생각하는 삶

먹다 남은 복숭아의 죄란 의미의 여도지죄가 있다. 위나라의 임금은 미소년인 미자하(彌子瑕)를 총애하였다. 미자하는 오만방자하였다. 예의와 지켜야 할 법마저도 무시하였다. 미자하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릴 듣고 임금의 수레를 몰래 끌어내었다. 그걸 타고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보살폈다. 이는 사형감이었다. 임금의 수레에 발만 올려놓아도 발목을 잘라야 했다. 그것이 법이었다.

미자하를 벌주어야 한다고 대신들이 말했다. 하지만 미자하를 예뻐했던 위왕은 말했다.
“아픈 어머니 생각에 발목이 잘린다는 벌마저도 생각 못했던 미자하의 효심이 얼마나 예쁘냐?”
 
임금과 함께 대궐 정원을 거닐 때였다. 탐스럽고 예쁜 복숭아가 열려있었다. 미자하는 그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었다. 먹다보니 너무 달고 맛있었다. 미자하는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위왕이 말했다.
“얼마나 복숭아가 맛있었으면, 자신도 모르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과인에게 주었겠느냐. 과인을 생각하는 미자하의 마음이 지극하구나.”
 
세월이 흘렀다. 미자하의 미색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빛을 잃어갔다. 미자하에 대한 위왕의 사랑도 식어갔다. 어느 날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다.

위왕은 노하여 말했다.
“저 무례한 놈을 당장 끌어내다 목을 베어라! 저 놈은 자신의 아름다움만을 믿고 위아래를 몰라보았다. 감히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탄 적이 있었고, 나에게 먹으라고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준적도 있었느니라.”
 
이제 나는 학생들과 재밌게 논다. 교문에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기분 좋게 말하며 인사한다. 복도와 계단 곳곳에서 만날 때도 먼저 본 사람이 ‘사랑합니다.’를 말하며 인사한다. ‘사랑합니다.’는 말을 하니,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진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니 정말 아이들이 고마워 진다. 나와 학생들의 관계는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이제는 학생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야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부모의 뱃속에서부터 SNS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던 신인류(?)인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박수치며 청할 때 무대에 올라가자.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한 모든 연극이 끝나면 다음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무대에서 내려오자.
 
내 마음 속에는 몇 가지 담고 사는 삶의 지혜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먹다 남은 복숭아의 죄란 의미의 여도지죄(餘桃之罪) 이다. 잘한다고 예쁘다고 축하해 줄 때,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분명한 것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육에는 정답이 없고 모법답안만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진보교육감 시대가 되면서, 다르게 생각하고, 기존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던 교사들의 활동 폭이 넓어졌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신인류라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일제식 수업과 일제식 평가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현실에 맞는, 다른 방법으로 다르게 수업하고 다르게 평가하는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일어나야 한다. 교육에 대한 새로운 헤게모니가 정립되어야 한다.

이제 학생들은 더 이상 훈육의 대상만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우리 교사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때이다. 학생들은 그 무엇이든지 빨아들이고 담을 수 있는 스펀지 같은 존재이다. 교사들의 역할은 그들에게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자존감을 높여주고, 따뜻한 인간애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박수로 그대들을 청하고 그대들을 밀어내고 있다.
다시 그 모든 사람들에게 청한다. 박수로 청할 때 무대에 오르고, 박수칠 때 내려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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