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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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유감
  • 문계봉 시인
  • 승인 2014.07.30 15: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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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봉의 지극히 주관적인 인천이야기]
 
문화 예술계에도 '이유 있는 룸펜'의 시대가 있었다. 가난한 문인들이 술값을 벌기 위해 매문(賣文)을 하고, 화가들은 헐값에 그림을 팔며, 특정한 술집이나 다방을 아지트로 삼아, 남는 게 시간뿐인 일상을 담배와 술로 죽이며 생활하던 시절 말이다. 전쟁 직후의 명동 일대가 그러했고, 80년대 인천의 경우 신포동의 은성다방, 미미집, 백항아리, 시랑(詩廊)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아마도 그 시절 문인들의 그러한 풍정(風情)은 무력한 자신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는 루저들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그나마 예술가적 자부심마저 없었다면 그악한 그 시절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재로 그 시절, 가난한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켜 대작(大作)과 절창(絶唱)을 만들어낸 많은 작가들이 존재했다. 궁핍한 일상마저 창작의 모티브로 전환시켜 낼 수 있었던 빛나는 감수성들이 그 시절, 그들에게는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의 경우, 명동의 박인환과 신포동의 김윤식이 그 시절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겠다.
 
다른 예술 장르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특히 문학의 경우, 세상이 바뀌었어도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제외하면, 전업 작가 대부분이 가난과 궁핍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금의 현실이 해방 전이나 전쟁 직후의 상황처럼 끼니를 걱정할 만큼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앞선 시대의 선배들보다는 비교적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졌고,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도 상당히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르를 막론하고 현재의 젊은 작가들(과 그들과 어울리며 심리적 보상을 받는 문화판 룸펜들) 상당수가 이전 선배들의 ‘개폼’만 배워서는 하나같이 딜레당트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저 낮부터 술판을 벌이거나 기행(奇行)을 일삼는 것이 마치 예술가들의 특권이라도 되는 양, 떼 지어 다니며 요란을 떨고 그것을 힐난하는 사람들과 싸움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전의(戰意)와 호승심'이 당면 현실 문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나 문제의식으로 연결될 리 만무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악한 감수성, 민망한 능력, 일천한 인문학적 소양, 변두리 예술가로서의 열등감 등등이 혼합된 ‘무정형의 패거리 의식’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동료 시인이 부친상을 당해 빈소인 인천의료원을 다녀오다 신포동 ‘민 주점’에 들렀을 때, 신포동 지킴이 M선배께서 혀를 차며 던진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신포동이 이제 무척이나 후져졌어. 낭만과 품격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야. 진짜 예술가는 없고, 개폼 잡는 인사들만 횡행하고 있으니, 원.” 선배는 사실 오래 전부터 신포동에서 주점을 운영하며 그곳을 드나드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예술가들의 행태를 많이 봐 왔고, 진짜 예술가와 싸구려 예술가를 구별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닌, 몇 안 되는 주점의 사장이라고 나는 믿는다. 현 인천문화재단 이사장인 K선배(시인) 역시 ‘민 주점’의 단골이었다는 것은 신포동을 왕래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지의 사실이다.
 
얼치기 예술가들의 행태야 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왔겠지만, 내가 문청(文靑) 시절을 보내기도 했고, 사춘기의 기억이 녹아있는 신포동이 ‘젠체하는 예술가들의 집합지’가 되어버렸다는 말은 나를 무척이나 맘 아프게 했다. 그냥 그렇게 제멋에 취해 '놀라고' 하면 되지, 뭔 오지랖으로 이렇듯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이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포동은 나에게 예사로운 공간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일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중구청에서는 전혀 문화마인드가 전제되지 않은 난개발을 일삼고 있어 많은 이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데, 낭만과 운치가 있던 신포동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젊은 문화 예술인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힘든 상황을 견디며 제대로 된 문화예술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애쓰는 젊은 작가들과 문화애호가들도 많다. 아마도 신포동의 예향이 미진하게나마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일 거라 나는 생각한다. 시대가 흉흉할수록 문화예술가들의 역할과 임무는 그만큼 중차대하다고 하겠다. 숱한 '악화(惡貨)들이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고 있는 현재의 신포동에서 다시 한 번 문향(文香) 및 예향(藝香)을 살려내어 그곳을 폼나고 아름다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퉁(진짜) 예술가들과 문화애호가(지킴이)들’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다.

*매달 1회 문계봉 시인(인천작가회의 회장)의 '지극히 주관적인 인천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이라고 표현했지만, 시인의 예술적 감성으로 포착한 오늘 인천의 이야기 속에 우리 모두가 깊이 되새겨봐야 할 성찰이 빛나리라 기대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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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2014-07-31 12:53:54
선배님..
신포동에서 한번 뵈요~

무지개천사 2014-07-31 09:06:14
예술가의 촉촉한 감성이 살아 있는 글을 기대합니다.
이성은 우리를 이끌지만, 감성은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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