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사회와 시민 책임
상태바
부패 사회와 시민 책임
  •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준비위원장
  • 승인 2014.08.21 22:0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수의 법과 인권 이야기] 1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촛불문화제

늘 이 꼴이고 이 꼴로 사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때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성취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그 성취한 민주라는 것이 얄팍해서 단지 ‘선거 행위에 의한’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성취한 것이 없다고 해도 객관성을 잃거나 야박하게 평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임병의 가혹행위로 사병이 목숨을 잃고 평소 따돌림을 당하던 병사는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속출한다.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세월호 침몰과정에서 선장 등의 직업 윤리는 찾기 어려웠고 청와대와 정부의 위기 상황 대처는 무능력했으며 책임자도 없었다. 한 지역에서는 장애인을 강제 노역시킨 이른바 ‘염전 노예’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도시에서는 잦은 지하철 사고가 나고 부실공사의 결과로 싱크홀이 생긴다. 사람의 목숨과 존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일상화 되었다.
 
안보는 여전히 북핵 등 침략 위협과 한미 공조라는 낡은 지정학적 상황에 고착되어 있다.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같이 이념적인 틀로 부풀리는 공안과 국가보안법 체계는 여전히 수구 정치세력의 뒷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 등 관조직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른바 댓글사건으로 정치개입을 노골화했다.
 
장관 등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은 예외 없이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논문 표절, 아들 병역 비리 의혹과 특혜 등과 같은 비위와 편법 심지어는 불법의 전력이 따라 붙는다. 정치인의 뇌물 수수 등 비리는 이제 갈수록 좋은 볼거리가 됐다. 심지어 한 지방검사장까지 음란행위 혐의로 수사를 받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런 부정과 부패를 행한 자들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거나 자신들의 행동을 은폐한다. 관자의 말을 빌자면 정치와 행정의 네 가지 축인 예·의·염·치 없는 사회가 됐다. 관자는 권한이 남용되지 않는 것이 ‘예’고, 스스로 출세를 지향하지 않는 것이 ‘의’이며, 악을 감추지 않는 것이 ‘염(廉)’이고, 잘못된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을 ‘치(恥)’라 했다.(國有四維 (중략) 何謂四維?一曰禮、二曰義、三曰廉、四曰恥。禮不踰節,義不自進。廉不蔽惡,恥不從枉。故不踰節,則上位安;不自進,則民無巧軸;不蔽惡,則行自全;不從枉,則邪事不生。(《管子》, 牧民 第一)) 한국 사회는 정치와 행정의 네 가지 축이 모두 무너진 사회이다. 위기 상황이다. 이 위기는 곧 부정과 부패가 상존하는 구조를 형성시켰다.
 
그래서 사회 도처에서 부정이 만연되고 인권을 경시하며, 평화보다 군사적인 대결을 조장하는 제도, 관행, 문화는 좀처럼 시정되지 않는다. 이런 한국 사회를 한마디로 말하면 ‘만성적인’ 총체적인 부패 상황이라고 부를 만하다. 총체적인 부패는 과거에도 늘 있었지만 구시대와의 결별은 없었다. 정치권은 늘 정략적인 야합을 통해 현실론을 들고 나왔고 근본적인 혁파는 없었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한국 사회는 진보적인 혁신을 이룬 적이 거의 없다. 이런 정치사회적인 무기력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책임은 누가에게 있는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만성적인 부패를 용인하는 요인은 첫째, 이중기준이다.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일상에서 만연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 계모에 의한 아이 구타 사망사건, 윤 일병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 등에 대해서 정치인, 정부, 국민 모두가 분노한다. 공직자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불신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나는 예외라고 생각하거나 인권 존중의 문화와 교육을 확산시키기 위한 제도 도입엔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둘째, 대증적인 값싼 정책이다. 이런 이중기준의 뒤에는 정책에 대한 잘못된 경제관이 도사리고 있다. 구식일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간주되는, 가해자에 대한 엄벌주의가 그것이다. 경찰과 검찰의 권력을 이용해 가해자나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범죄자에 게 전자발찌 착용이나 화학적 거세 등의 부과조치를 한다든지, 살인 등에 대해 유기징역을 50년까지 늘리는 따위의 조치는 범죄억제 효과는 검증되지도 않았지만, 엄벌로써 모든 부패와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값싼 정책의 예이다. 이런 배제정책의 강화는 부패의 원인을 부패한 자에게만 국한시켜 결국 사회경제적인 구조와 사회문화적인 요인은 덜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게끔 한다. 다시 원위치 되는 것이다.
 
셋째, 정치권의 고리타분한 정책 공급이다. 안보와 경제 문제에서 언제나 보수적이거나 영향력이 큰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제도적인 공리주의로 인해 한국 사회는 냉전적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체제가 해체되지 못하고 남북이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은 경제정의와 인권존중의 비전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행정혁신이 공직자의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도 한 이유이다.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권력의 이른바 적대적인 공생도 이런 고리를 강화시키는데 한 몫 한다.
 
만성적인 부패 구조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정치적으로는 당연히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책임을 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나 윤 일병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형사고와 부패가 있었어도 고위직 권력자들은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들이 집권 여당에 대해 정치적인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민주주의 운영의 원리를 이탈한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런 선거제도나 정치공학적인 셈법에는 대안 세력의 존재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만성적인 부패 구조를 극복할 만한 역량을 갖춘 대안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국민의 눈에 야당은 이를 수행할 만한 개혁 역량을 갖추었다기보다는 단순히 권력을 탐하는 또 다른 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는 개혁을 말했지만, 경제적인 불평등은 해소되지 못했고 독재 체제를 지탱했던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집권세력은 정치 혐오와 정당 불신을 조장하여 반사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에 불과하다.
 
정치권력이 바뀐 것은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성적인 부패가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려고 자임하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 상황이 바로 위기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를 살았던 고염무의 눈으로 이 위기를 보면 단순히 ‘국가’가 망한 문제가 아니라 ‘천하’가 망하느냐 흥하느냐의 문제이다. 세상 즉 삶 자체의 흥망이 달려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필부도 책임이 있다고 고염무는 말한다. 정치와 행정의 책임을 묻지 않는 책임,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을 대충하려는 정치권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정치적 대충주의의 결과로써 우리 사회는 만성적인 부패 사회로 고착되었다.
 
만성적인 부패 구조 속에서 국민은 결국 살 수 없다. 부패한 곳에서 인권은 자랄 수 없고, 인권이 자라는 곳에선 부패할 수 없다. 모순이다. 부패사회는 힘 있고 가진 자들이 바라는 세상이다. 이를 고쳐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반시민[필부]들이 주권을 제대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사병의 인권을 지키지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사퇴와 병사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개혁을 촉구하는 글부터 써보자.



현 법인권사회연구소(준) 위원장
전 새사회연대 대표, 지도위원
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특별법쟁취위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자연이좋아 2014-08-22 08:49:01
우리모두 유권자가 변해야합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