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재정위기 논란에 가로막힌 인천지하철 2호선 안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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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재정위기 논란에 가로막힌 인천지하철 2호선 안전문제
  • 이진숙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정책교육국장
  • 승인 2014.08.21 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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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권력-암묵적 동조, 망각의 트라이앵글

2013년 10월29일 인천시청 앞마당에서 개최된 '안전한 인천지하철 2호선 개통을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 발족 퍼포먼스 

민영화, 예견된 재앙

영국, 칠레, 아르헨티나 등 이른바 ‘민영화 1세대’ 국가들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블랙딜’에 나오는 얘기다.

아르헨티나의 한 민영철도회사가 운영하는 열차가 어느 날 역에 진입하다가 큰 추돌사고를 일으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 열차는 일본에서 40년간 사용하던 것을 수입한 것인데 창문도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을 정도로 노후했다. 게다가 이 노후한 열차는 승객이 늘 만원이라 탑승구에 사람들이 겨우 매달려 다니는 아슬아슬한 운행을 지속해왔다.

이 정도만 해도 전형적인 인재(人災)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사고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사건 이후에 발생한다. 사고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는 유족과 시민들의 요구에 아르헨티나 정부와 민영철도회사는 사고가 발생한 지점에 열차의 추돌을 방지하는 안전장치를 설치한다. 이 안전장치 또한 어딘가에서 쓰던 것을 재활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게 된다.

그 다음에 정부와 철도회사가 취한 대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열차가 역사에 다다르는 일정 시점부터 시속5km 미만으로 운행하도록 지침을 변경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사실상 무대책의 대책인 셈이고, 한 푼의 돈도 안들이고 모든 안전책임을 오로지 기관사에게 지우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제작이 완료된 것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전이라고 하는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와 어찌나 닮아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 칠레의 국민연금·교육 민영화, 아르헨티나의 철도·물·전기 민영화, 프랑스의 물 민영화, 독일의 철도 민영화. 한국보다 이삼십년 앞서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추진한 이들 국가들의 현실을 보고 있으면 어떤 기시감 같은게 느껴진다.

 

기관사도 역무원도 없는 인천지하철 2호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문제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규제완화, 민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반대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 시점에 2016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인천지하철 2호선 문제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인천 지역사회에서 인천지하철 문제는 주로 인천시 재정문제와 함께만 다뤄지고 있다.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인천시 재정위기를 가중시킨 주요인, 현재도 재원조달 방안이 마땅치 않아 개통시기가 불투명한 문제, 아시안게임이 코앞인데 아직 공사마무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한 공사현장 등이 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인천지하철 2호선의 안전문제는 그동안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온 사안이다. 다시 한번 그 핵심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천시가 작성하여 지금까지 인천지하철 2호선 건설사업의 방향이 되어온 「인천도시철도 2호선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에 대해 시민사회진영은 ?무인역사 ?무인승무 ?2량 1편성(운행열차가 두 칸으로 구성된다는 의미) ?(인천지하철 1호선 대비)유지보수 인력감축 등의 4가지를 주요하게 비판하며 계획변경을 요구해왔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살펴보자면, 「기본계획」이 그리고 있는 인천지하철 2호선의 청사진은 이런 것이다. 우선, 기관사와 승무원 없이 입력된 자동시스템에 따라 열차운행을 하게 되고, 전체 27개 역사 가운데 22개 역사가 역무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역사로 운영된다.

그리고 현재 하루 29만명 가량이 이용하는 인천지하철 1호선이 8량 1편성으로 하루 평균 편도 310회 운행되는데 반해, 하루 26만 명의 인천시민이 이용할 것이라 예측되는 인천지하철 2호선은 2량 1편성으로 하루 평균 편도 230회만 운행한다는 계획이다.

인력문제의 경우 무인승무, 무인역사에 따라 자연히 대폭 감축될 수 밖에 없는데다, 각종 시설안전을 유지, 보수, 점검해야 할 유지보수인력 조차도 1호선은 291명인데 비해 2호선은 119명 밖에 배치를 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천시의 계획대로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안전문제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게 된다. 자동 운행시스템이 인지·대응하지 못하는 위험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열차 안에는 아무도 없다. 열차사고가 벌어졌을 때 승무원은 위급상황 대처, 승객대피, 사령교신 등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유지보수인력을 감축했을 때 벌어질 상황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인역사 문제는 안전문제 뿐 아니라 교통약자의 대중교통 이용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현재 인천시민의 27%(약 78만명)가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로 추산되는데, 지하철 역에 이들의 지하철 이용을 도울 수 있는 역무원이 사라지게 된다.

2량 1편성을 하게 될 경우 인천지하철 2호선이 끔찍한 지옥철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용객의 편의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사례처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참사를 더욱 키울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그런데 이 문제는 인천지하철 2호선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사업추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천시가 이용객 수를 과대추산한 측면과 연결해서 봐야 할 것 같다. 인천지하철 1호선이 1999년 개통 당시 2호선과 유사한 이용객수를 추산했으나, 개통 첫해에는 불과 13만명에 불과했고, 2013년 경이 되어서야 하루 이용객이 26만명이 되었다.)


인천시 재정위기 논란에 가로막힌 시민안전

시민사회단체들의 대응이 있자 인천시와 인천교통공사가 다소 전향적으로 입장을 제출한 부분이 있다. 인천교통공사가 작년 말에 제출한 「2호선 인력 및 조직설계(안)」 등의 연구용역에서는 역사에 1인 이상 상주인력을 배치하는 것과, 유지보수인력을 다소 증원하고 야간시간대의 전담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무인역사, 유지보수인력 축소 계획을 다소 수정한 것인데, 이렇게 되면 애초 「기본계획」에서 200명 대에 불과했던 인천지하철 2호선 인력이 400명 가량으로 증원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임 송영길 시장 집행부의 경우 이러한 내용을 수용하여 계획 변경을 추진하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리고 시집행부의 교체 이후 인천시의 공식적인 입장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시민의 안전을 충분히 담보할 수 없다. 무인승무, 2량 1편성 문제는 전혀 재검토되지 않았고, 역무원, 유지보수인력 증원 또한 충분하지 않다. 인천지하철 노동조합이 자체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안전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여 산정한 인력은 900명 정도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주장은 인천시 재정위기 논란에 번번히 막혀왔다. 또한 지금도 재원조달 방안이 가장 큰 관심거리이다. 일부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도 인천지하철 2호선 안전과 관련한 문제는 인천시 재정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있어왔다. 인천지하철 1호선의 인력 구조조정과 연동하여 인천지하철 2호선의 인력증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구체적인 제안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인천지하철 1호선의 실상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인천지하철은 1999년 개통 이래 거의 인력증원이 없었다. 그런데 사업은 인천지하철 1호선 송도 구간 확장에 따른 6개 역사의 증설,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 위탁운영, 의정부경전철 위탁운영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일하는 사람 숫자는 늘지 않았는데, 일의 양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도 인천지하철 1호선 운영인력은 자연스레 대거 축소되어 온 것이다.

사실상 인천지하철 1호선의 안전문제도 다시 점검해도 모자랄 상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기업, 공공서비스가 그렇듯 인천지하철 역시 외형은 공공적 형태가 유지되고 있지만, 운영, 사업방식 등에서는 민영화와 다를바 없는 내용이 이미 상당히 도입되어 있다.

 

‘블랙딜’, 자본-권력-암묵적 동조와 망각의 트라이앵글

인천지하철 2호선에 대해 제기되는 안전 문제는 물론 인천만의 상황은 아니다. 무인승무, 무인역사는 최근 십여년 사이 신설되는 도시철도, 경전철 등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2003년의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이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화재참사 직후인 2004년에 철도안전법이 새롭게 제정되었다. 이 법은 철도종사자의 면허관리와 시설검사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정했는데,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내용이 거의 없고 기관사 면허제만을 새롭게 도입했을 뿐이었다. 기관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해 오던 것에서 안전을 명분으로 국가 양성 기관사로 제도변경을 했지만, 실제로는 면허취득에 필요한 절차는 더욱 간소화되었다. 이 법이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때 투입하는 대체인력을 양성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크다.

또한 철도안전법에 그나마 존재하던 안전관리 조항들은 폐지되거나 완화되어 왔다. 내구연한, 철도용품의 품질유효기간이 폐지되었고, 그에 따라 정밀검사와 관련한 내용도 함께 폐지되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다큐멘터리 ‘블랙딜’은 자본, 정치권력, 각종 이익집단의 추악한 뒷거래가 민영화의 추진동력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암묵적 동조, 그리고 반복되는 사고와 재난에 대한 망각 또한 ‘블랙딜’의 한 축이라고 역설한다.

최근 인천지하철 2호선 안전문제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의 대응도 소강상태에 빠져 있었다. 유정복 시장 집행부의 입장과 계획이 무엇인지 다시 이 문제를 쟁점화 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인천시의회에서도 시민의 안전문제를 챙기는 특별위원회 구성이 논의에 들어갔으니, 인천지하철 2호선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수 있기 위한 대응이 재조직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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