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 최고위급 3인의 전격 방문이 가져올 중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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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北 최고위급 3인의 전격 방문이 가져올 중대 변화
  • 지창영 시인, 번역가
  • 승인 2014.10.06 0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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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 대화냐 전쟁이냐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에 참석해 선수단에 손을 흔드는 북측?고위급 3인 (사진=SBS뉴스 캡쳐화면)

상상을 초월한 행보

2014 아시안게임의 대미를 장식한 뉴스는 북측의 최고위급 인사들인 황병서·최룡해·김양건의 폐막식 참석이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경색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남북 관계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이들이 12시간 가량 인천에 머무르는 사이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언론에 밝혀진 내용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정작 중요한 일은 물밑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언뜻 보아도 이들의 방남은 예사롭지 않지만 보이지 않게 감지되는 기류를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변화를 몰고 올 사건임을 추측할 수 있다.

우선 방남한 인사들의 면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황병서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이고 최룡해는 노동당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며 김양건은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다. 아시안게임은 스포츠 행사이므로 북에서 스포츠 정책을 총괄하는 최룡해 위원장이 온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인민군의 수장인 황병서와 통일선전부의 수장이 함께 왔다. 그것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별기를 이용했고 역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근접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총국의 소속의 경호원들을 대동하였다. 모두가 이례적인 일들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여 판단해 볼 때 이번 방남은 단순한 스포츠 교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그를 대신하여 왔으며, 그 목적은 군대와 통일정책이 결부된 중대 사안을 논하는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미국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는 북

그렇다면 북이 그와 같이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전격 방문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북의 행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 북은 미국과 60년 이상 서로 갈등 관계 속에서 때로는 상호 위협도 하고 때로는 화해 무드로 접어들기도 했다. 북과 미국 사이의 관계 변화에 따라 남북 관계도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과의 대결에서 힘겨워하던 북이 이렇게 과감한 행보를 할 수 있는 것은 뭔가 중대한 변화가 있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북이 세계 앞에 드러낸 가장 큰 변화는 핵무장이다. ICBM(대륙간탄도탄)과 잠수함 등 미국이 놀라고 심각히 우려할 만한 무기 체계도 속속 선을 보였고 이들을 이용한 군사훈련도 밀도 있게 진행하였다.

이러한 터 위에서 북은 미국 본토를 타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을 공격하지 못한다.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추측만으로 이라크를 공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한마디로 북은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북 관계를 변화시킬 여건을 조성해 놓았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북의 최고위급 핵심 인사들이 남한에 들어온 것이다. 단순히 북 지도자의 통치스타일이 과거와 달라서 생긴 일이 아니고 그만한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솔길을 대통로로 열어가자"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우리는 사실 오늘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가는데 성과가 많다" "소통을 좀 더 잘하고,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는 말을 남겼다.

“성과가 많다”는 말은 그들의 방문 목적이 상당히 이루어졌다는 말로서 남북 관계의 변화를 염두에 둔 말로 풀이된다. “대통로로 열어가자”는 것은 이번 성과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자는 말이다. 향후 남북 관계는 급물살을 타듯 빨라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변화의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결국 6.15, 10.4 선언의 이행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북은 그동안 남북 정상 간에 이루어진 합의 사항을 이행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따라서 이를 가로막는 5.24 조치는 폐기해야 할 것이고, 대북 삐라 살포 등의 반북 비방 행위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추진하던 남북 협력 사업이 재개될 것이다. 남북을 잇는 철길이 다시 이어지고 공단이 확대되어 민족의 공동번영이 시작될 것이다. 무궁무진한 북녘 자원의 공동 개발과 수출로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가운데 세계의 관광객들은 개방되는 금단의 땅을 밟으려 몰려들 것이다.

양날의 칼, 대화냐 전쟁이냐

그러나 마냥 장밋빛 기대만 할 수 없는 것이 남북 관계다. 남북 관계는 북-미 관계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급변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 북과 미국 사이에는 화해 무드가 절정에 달해 곧 북-미 정상회담이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 그 해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가 하면,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을 방문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반 세기 넘도록 미국과 대결해 온 북은 핵무기를 배비해 놓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이 미국을 압박할 때 늘 던지는 말이 있다. “대화면 대화, 전쟁이면 전쟁 모두 준비돼 있으니 대화냐 전쟁이냐 선택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핵무기로 본토가 공격당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북과 대결할 의지가 없을 것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되기 이틀 전인 지난 8월 16일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탑승한 군용기가 급히 평양을 방문하고 동 훈련이 조용히 그리고 예정보다 일찍 끝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의 최고위급 3인의 방문은 남한 정부에 대한 결단과 선택을 촉구하는 것이 본질일 것이다. 그 핵심은 남북 관계 개선이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결국 대화냐 전쟁이냐로 귀결될 것이다.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서 우리 정부의 과감한 정책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는 미국에 의지하여 정책을 결정할 시기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북과 더불어 마련해 놓은 대통로를 따라 민족 공동의 번영을 열어 나가야 한다.
(지창영/시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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