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이 남긴 아쉬움의 그림자 하나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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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이 남긴 아쉬움의 그림자 하나쯤
  • 이진숙(민주노총인천본부 정책교육국장)
  • 승인 2014.10.07 0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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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시민사회다운 분석과 성찰, 발언이 필요하다

 

인천아시안게임, 잔치는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천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앞으로 더욱 가중될 인천시 재정위기, 조직위원회의 허술함과 부실한 준비로 인한 파행적 대회 운영, 그로 인해 해외에서 조롱거리가 된 한국의 ‘국격’, 한류스타 말고는 내세울게 없는 상상력과 문화적 자산의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낸 문화행사 등이 대회 기간 내내 우리를 어지럽게 했다.

한편에서는 북한의 대회 참여, 시민사회가 중심이 된 남북공동응원단의 활동 등을 통해 인천아시안게임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른바 북한 실세 3인방의 폐막식 참여는 이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어쨌거나 잔치는 끝났고, 인천시가 손에 쥔 손실과 이득의 대차대조표는 차차 제출될 것이다. 아마도 그 내역에 따라 대회를 유치한 전임 안상수 시장, 대회 인프라 구축과 전반적인 준비를 진행했던 전임 송영길 시장, 그리고 대회 진행을 관장한 현 유정복 시장 간의 책임공방도 한차례 떠들썩하게 진행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을 ‘바라보며’ 느낀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다.
 

‘단일이슈 중심의 운동’이 가지는 폐해, 위험성

사회운동을 하다보면 ‘단일 이슈 중심의 운동’이 가지는 위험성과 폐해를 종종 만나게 된다. 세상은 넓고 문제는 널려 있으며, 하나의 사안 안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여러 이슈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이슈를 선별하고, 그들 각각에 대응하는 여러 힘들이 서로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

‘단일 이슈 중심의 운동’은 하나의 이슈, 의제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다른 이슈 의제들이 주변화되거나 기각되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다보니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입장과 태도를 가지는 정치집단, 사회운동들이 해당 이슈를 중심으로 손을 잡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이러한 ‘단일 이슈 중심의 운동’이 일반적으로, 언제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의 세월호 문제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운동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다만, 그런 방식의 운동이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 운동이 지나간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단일 이슈 중심의 운동’의 폐해는 역사적으로도 많이 있었던 일이고, 다른 나라의 운동 속에서도 그 사례는 많다. 사회운동의 역사를 다루는 많은 문헌들에서는 특히 페미니스트 운동의 경험이 많이 언급된다.

좀 먼 나라의 얘기긴 하지만 하나의 사례를 들어 보자. 1970년대 말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반성폭력법’ 입법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이탈리아 의회는 성폭력을 여성의 신체와 인격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니라 사회도덕에 반하는 범죄, 일종의 풍기문란 죄로 간주했다. 말하자면 성폭력이 여성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사회혼란을 야기한 범죄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일부 페미니스트 그룹은 국민발의 절차를 통해 반성폭력법의 입법을 추진했다. 그런데 보수파를 대변하고 당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던 기독민주당이 이 법을 공격해오자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운동이 펼쳐지게 된다. 평소에 서로 상이한 입장을 견지하던 페미니스트들이 단결하여 이 법안을 방어하는 투쟁에 돌입한 것은 물론, 페미니스트들은 대부분의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서로 판이한 입장을 가진 여러 사회세력들을 이 운동으로 끌어들였다.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러 단계의 수정을 거쳐 하원을 통과한 법은 결국 성폭력을 여성의 인격에 대한 범죄로 규정했다. 하지만 애인과 남편은 처벌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이 가족을 ‘폭력의 자유지대’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커다란 단일이슈를 중심으로 운동이 조직되면서, 그 외의 쟁점들이 운동 내부에서부터 기각된 것이다.

물론 여성의 권리에 대해 그토록 무지하고 척박한 토양 위에서, 우선 그 정도의 입법도 성과가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단계의 가능성이 봉쇄되었다는데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중심이 되어 서로 상이한 입장과 전망을 가지는 사회세력들을 한데 모아 추진한 법안이기 때문에, 이후 페미니스트들이 추가적인 행동을 조직하기란 명분과 실제적 측면 모두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인천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단일이슈 중심의 운동이 남긴 폐해, 폐해라는 표현이 과하다고 한다면 아쉬움의 그림자 하나쯤이 될 사례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시민사회다운 분석과 성찰, 발언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질만한, 가져야 하는 이슈가 북한의 대회 참여를 계기로 남북교류를 촉진하고, 민족 간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류의 활동 밖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리미화를 이유로 졸지에 생존권을 잃은 노점상, 그리고 단기계약직, 아르바이트 등으로 채용되어 아시안게임 지원업무를 한 노동자, 학생들의 최저임금 위반을 비롯한 열악한 처우 문제, 행정편의적으로 진행된 승용차 2부제 운행 문제, 지역에서 진행 중이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과의 관계에서 신중히 고려할 점은 없는지, 본질적으로 아시안게임이 인천시 재정을 빚더미에 올려가면서까지 꼭 해야만 하는 행사인지에 대한 시민사회다운 분석과 성찰 등 이슈는 차고 넘쳤다.

이 중 어떤 이슈가 더 중요하고 어떤 이슈는 부차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남북공동응원단 활동 외에 어떤 이슈도 시민사회의 주목을 끌지 못했고, 누구도 이에 대해 발언하지 않았다(내 기억으로는 인천녹색연합 활동가가 경향신문 독자칼럼에 기고했던 글이 이와 관련된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의 유일한 발언이었다).

하다못해 노동자 민중의 정당으로 표상되는 PT당이 집권한 브라질에서조차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올 상반기 내내 벌어졌었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집행하는 인천시의 상황이 그보다 더 평화롭고 시민들의 권리는 안녕했던 것일까?

인천지역 시민사회가 남북공동응원단이라는 단일이슈 중심의 활동을 펼치면서 남긴 아쉬움의 그림자 하나쯤 없는지 곱씹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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