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 칼집골목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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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칼집골목의 추억
  • 디비딥 장윤석 블로거
  • 승인 2014.10.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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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딥의 인천이야기] 2


어린시절 그러니까 70~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까지 신포동은 인천의 명동이라 불릴만큼 꽤나 번화한 곳이었다.
 

개봉관들도 동인천,경동 일대에 몰려있었고, 데이트하기 좋은 자유공원을 끼고, 쇼핑과 먹거리 그리고 많은 카페들까지...


지금은 구도심의 작은 번화가 정도로 다소 움츠러진 신포동은 내가 태어나 자라고 30대가 되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이기 때문에 지금도 친구들을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고 찾아가곤 한다.


그렇게 신포동을 오가다 보면 신포동과 신포시장을 이어주는 눈에 들어오는 작은 골목이 있는데, 우리는 그 골목을 칼집골목이라 불렀다.



카페와 의류매장의 화려함 뒤로 이어진 이 작은 골목에는 당시에 칼국수를 비록한 분식을 파는 분식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 찾았을 때 칼국수 가격이 아마 400원 정도 였으니, 코딱지만한 용돈을 받던 우리들에게는 한 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흔히들 '칼집'이라 불리던 이 골목안 분식점에서는 작고 낡은 텔레비전으로 개봉하기 전의 영화나 옛 중국영화를 틀어주곤 했는데, 어쩌면 나는 배고파 찾는 식당이 아니라 영화 한편을 편안하게 보려고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극장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여서, 집에서 유선방송에서 온종일 틀어주는 B급 영화를 보는 게 다였으나, 이 칼집에 가면 아직 극장에서 개봉하지도 않았던 영화를 칼국수 하나 시켜놓고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줄거리를 떠들며 이야기를 해주면 친구들은 귀를 종끗 세우고 집중해서 실감나게 액션을 취해가며 떠들던 내 얘길 들어주곤 했다.
 


신포동 칼집... 커다란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진 칼국수... 그리고 테이블마다 놓여진 튀김가루를 잔뜩 넣고 천천히 먹으며 우리는 짧은 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술 한잔 하다가 칼집골목 이야기가 나오면 어떤 친구는 칼국수 가격이 300원이었던 때부터 다녔다고 하니... 아마도 이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닌 게 아닌가 싶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주로 남자 친구들은 대부분 가본 반면에 여자 친구들은 안 가본 친구가 많은걸 보면,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쳐 들어가야 하는 데에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했었나 싶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를 거친 우리 또래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칼집 골목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 골목은 92년 군입대 전 친구들과 마지막 저녁을 먹었던 것, 당분간 못 먹어볼 그 칼국수를 먹어보기 위해 비오는 저녁에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이 골목안 어느 식당에서 했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세월이 훌쩍 지나 중년이 되어 찾아갔을 때... 이미 많은 식당이 문을 닫고 썰렁해진 골목 안에서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이 남아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본다.


아직도 남아있는 내 어린시절의 추억의 조각이 잠시나마 나에게 작은 행복의 미소를 짓게 만든다.
 

20년이 지나 먹어본 칼국수는 어릴적 먹어본 그것에 비해 맛은 없었지만, 한 입 먹고 주위를 둘러 보고 한 입 먹고 또 주위를 들러보며 그렇게 나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스포츠머리의 중학생인 내가 되어 본다.


우리들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래서 지금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칼국수 한 그릇...


세상이 앞만 보고 달려가기를 강요할 때, 문득 일상에 지쳐 뒤돌아 보았을 때 그 자리에 이어주는 이런 추억은 새삼 고맙기만 하다.


쌀쌀한 기운이 올라오는 가을... 칼국수 한 그릇 때리러 친구들과 함께 칼집골목을 찾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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