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실패의 역사를 세월호 진상규명에서 되풀이해서야
상태바
반민특위 실패의 역사를 세월호 진상규명에서 되풀이해서야
  • 이희환 기자
  • 승인 2014.12.08 01: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의 식민잔재와 반민특위 유산 돌아보며 세월호 진상규명 뜻 모아

반민특위 인천지부 사무실이 위치했던 인천 중구청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속속 위원을 선임하면서 새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인천지역에서 수사권과 기소권, 재판권까지 부여받았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의 역사적 실패과정을 인천의 일제잔재와 함께 돌아보는 강연과 답사가 진행됐다.  

[인천in]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천지부,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가 공동 주최해 마련한 "인천의 식민잔재와 친일군상, 반민특위의 유산을 찾아서" 역사길걷기가 12월 7일 오후 2시부터 인천시민 약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인천아트플랫폼 H동 강의실에서 진행된 사전 강의에서 이상의 인천대 교수(역사학)는 "친일청산은 왜 좌절되었는가"라는 주제로 해방 후 국내외 정셍와 함께 반민특위가 좌절되는 과정을 이승만 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의 전면화과정 속에서 설명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1945년 8.15해방은 일제하 민족해방운동과 대일전쟁에서 연합국의 승리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한국 문제가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전승국가인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국가건설을 주도하지 못하고 친일세력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일제잔재의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뒤로 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일청산이 역사적으로 좌절된 과정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는 참석자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뒤늦게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짊어지고 탄생한 반민특위는 그러나 반민법의 제정과정에서 이승만 정권과 친일세력의 엄청난 방해와 압력 속에서 만들어졌고 그나마 동요하는 친일잔재 세력을 이승만 정권의 "동요하지 말라"고 옹호해나가면서 결국 수많은 반민족 행위자 중 겨우 7명만 실형이 선고되고 그나마 거의 감형 내지는 집행정지로 풀려나는 좌절의 역사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상의 교수는 "오늘날 '70년이나 된 일을 왜 끄집어내느냐?' 혹은 '일제시대에는 누구나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시대적 분위기가 넓게 조성돼 있는데, 이는 반민특위의 좌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철저한 과거사청산과 달리 우리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 청산 없이 역사가 전개돼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역사청산 없이 밝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마무리했다. 

이 교수에 이어 민변 인천지부 소속의 김재용 변호사는 반민족행위처벌법(1948)과 4.16세월호특별벌(2014)을 비교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법률이란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명료하고 좋은 것"이라면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은 간명하게 3장에 걸쳐 제1장에 '죄' 제2장에 '특별조사위원회' 제3장에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을 규정하고 국회의원이 위원으로 구성되는 등 매우 강력한 법적 체계를 갖추었다."고 평했다. 

반면에 세월호특별법은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법안의 명칭부터가 매우 포괄적이고 세월호 참사가 원인과 정부 구조실패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 유가족에 대한 지원 등에 걸쳐 매우 복잡다단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어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민특위법과 4.16세월호특별법을 비교 설명하고 있는 김재용 변호사

뿐만 아니라 김 변호사는 세월호특별법의 조사방법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지 못한 채 진술서 제출요구, 출석요구 자료및물건 제출요구, 사실조회, 감정의뢰, 실지조사 등으로 나열돼 있지만 조사대상자나 참고인 관계기관, 시설, 단체 등이 이를 거부해서 실효적인 강제수단이 되지 못한다며 진상규명에 있어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사위원회가 출석요구나 동행명령에 거부하는 조사대상자를 고발 및 수사요청을 해도 반민특위의 특별검찰과 달리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하고 검찰의 판단에 따라 수사여부가 결정되도록 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강연에 이어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역사학)의 안내로 진행된 역사길걷기 답사는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 중구청, 인천경찰서터, 홍여문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 연구위원은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탈의 핵심적 기구로 기능했던 일본우선주식회사의 역사적 역할을 소개하는 한편, 인천 중구청에서는 일본영사관, 인천부청, 반민특위 인천지부 사무실, 인천시청 등으로 인천의 역사적 사건의 주요한 장소였던 인천 중구청에 아무런 역사적 표식이 남아있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인천 중구청이 일본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리모델링한 중구청 별관과 일본 고양이 캐릭터

특히 인천 중구청을 둘러보면서 최근 인천 중구청이 관광개발을 명분으로 일본조계의 흔적들을 무차별적으로 복제해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고 있는 문제점은 참가한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인천 중구청 별관 앞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고양이 인형을 설치하면서까기 관광개발을 하는 인천 중구청의 반민족적 관광개발의 문제점은 최근 중구청이 전개하고 있는 동화마을 개발, 각국거리조성사업, 크리스마스문화축제와 같은 졸속적 관광개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 자리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답사 참가자들은 일제강점기 인천의 식민통치의 공안조직 본산인 일본헌병대(인성여고 자리)와 인천경찰서(인성여고 건너편 주민자치센터) 터를 돌아보고 홍여문 위에 올라 일본인거류지역과 조선인 거류지역의 차별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뒷풀이 자리까지 함께 한 최사묵 평화재향군인회 상임공동대표는 "과거 인일여고와 인천고 등에서 십수년간 교사로 재직했지만, 인천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 그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의 역사를 알게 돼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히면서 "세월호특별법이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국민들이 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