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을 시작하는 아이들 - 이문영 청소년소설 <3월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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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을 시작하는 아이들 - 이문영 청소년소설 <3월의 법칙>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3.04 2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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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16.
청소년소설 <3월의 법칙> 삽화 (출처 =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http://teen.munjang.or.kr/archives/2217)
 
새 학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에는 학교가 등교 시각을 늦추면서 새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인천에서는 전 교육감 임기 중에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학력향상선도학교 정책이 격심한 성적 경쟁을 부추겨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였는데 작년에 새로 바뀐 교육감이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올해 등교 시각을 늦추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수면 시간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많이들 공감하고 있었던 터라 시민사회가 반기고 있는데 몇몇 일반계 고등학교가 종전의 등교시간을 고집하여 해당 학교 교문에서 1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학생을 건강하게 키워내는 게 본분인 학교 당국에게 학생들 잠 좀 자게 하라고, 아침 밥 좀 먹게 하자고 시위를 하는 게 작금의 우리 교육 현실입니다.
 
의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청소년은 수면 호르몬의 분비가 늦어져 늦게 잠이 들며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은 대체로 8시 이후에 뇌가 깨어나게 되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7시에 등교하기 위해 6시에 일어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니 학습 능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일탈 행동이 빈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적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수면 시간 부족으로 불법 약물 복용과 학업 중단 비율이 증가한다는 통계 결과는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등교 시간을 늦추면 학생들이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학업성취도도 높아진다는 게 실증적으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경쟁 때문에 서로 발목을 잡는 악순환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형국입니다.
 
남보다 더 적게 자고 더 많이 공부하려는 경쟁이 아이들의 심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인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120여 개 고등학교 중에서 선택하여 지원하도록 되어 있으니 공부를 못 하면 전혀 원하지 않는, 집에서 먼 학교에 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할 것이며 친구 관계는 또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집 근처 학교에 다닐 수 있으면 어릴 때부터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 못해서 집에서 먼 학교로 밀려 배정되면 아는 친구도 하나 없고 낯설기만 한 학교생활이 얼마나 힘들까요. 그러니 고등학교 신입생 3월은 너무나 끔찍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는지 3월 입학 첫날 교실을 들여다 봅시다.
 
“안녕!”

최대한 발랄하게 인사를 날렸는데 선예는 슬쩍 눈인사만 보낸다.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한 반이 된 두 명 중에 그나마 안면이 있는 축이다. 선예 옆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선예와 한 패거리인 모양이다. 둘인가, 아니 셋인가? 우리 중학교 출신은 아니니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는 친구들인 모양이다. 저렇게 눈인사만 보내는 것은 그냥 체면치레만 하겠다는 의미다. 같은 패거리로 끼어들 생각은 하지 마라, 라는 뜻이다. 그래, 아직 날은 창창하고 아이들은 많다. 나라고 해서 굳이 네가 필요한 건 아니란다.

아무 것도 아닌 척하면서 반을 한 번 둘러보기 위해 머리를 쓸어올리는 시늉을 해본다.

“아얏!”

신경 딴 데 쓰다가 새끼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고 말았다. 우앙, 쪽팔려! 모두 나를 쳐다보는데 누구 하나 걱정해주는 인간이 없다. 선예는 킥킥 웃기까지 했다. 아주 첫인상부터 제대로 구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자리가 반절이나 비어 있다는 것? 아침 자습시간까지 15분이나 남았다. 눈 찔린 김에 얼굴을 덮은 손가락 사이로 교실을 스캔한다.

동창이 보이지 않았으니 어디에 앉을지 궁리를 좀 해야 했다. 이미 친한 티를 내는 아이들 옆에 앉아서 슬쩍 끼어들 것인지, 아니면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 앉아서 내 편을 만들 것인지 결정을 내릴 때였다. 아무래도 벌써 자리를 잡은 아이들 사이에서 끼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옆자리가 빈 책상에 가방을 올렸다. 동창이 들어오다가 내 얼굴쯤은 기억하고 옆자리에 앉아주면 좋겠다. 음식점마다 붙어 있는 것처럼, 내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할 터이니.

아직 이름을 모르는 동창은 십여 분 뒤에서야, 이제는 맨 앞자리 말고는 거의 빈자리가 남지 않았을 때서야 느릿느릿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복장이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무릎을 덮는 촌스러운 치마. 거기에 손등까지 내려온 소매 단.

“설날에 한복 대신 입어도 되겠군.”

너무 한심한 복장이라 나도 모르게 비웃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가 버렸다. 작게 중얼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주제에 귀는 밝은지 얼굴색이 싹 변하면서 나를 야리고 지나갔다. 동창이고 나발이고 이제 저것하고 친하게 지내긴 틀렸다. 하지만 그런 범생이 복장으로 누구랑 친구는 하겠니, 라고 생각한 순간,

“영미야, 여기.”

한 아이가 손을 들며 범생이 동창을 불렀다. 영미도 히죽 웃으며 손을 들었다.

“주연아!”

쪼르르 달려가 그 아이 옆자리에 털썩 앉아 버렸다. 주연이라 불린 아이는 재빨리 자기 패거리들을 영미에게 소개해주었다. 망했다. 이제 저 그룹에 낑기는 건 다 틀렸다.
 
‘혜정’이는 고등학교 등교 첫날 짝이 될 친구를 찾느라 마음이 분주합니다. 중학교 때 ‘베프’(베스트 프랜드)가 한 반에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다못해 같은 중학교 출신이라도 좋으니 짝으로 앉았으면 좋겠는데 중학 동창은커녕 같은 어린이집 출신과도 맺어지질 못합니다. 다른 애들은 첫날부터 그룹을 형성하고 ‘짝패’를 짓느라 분주한데 ‘혜정’이는 알만한 애한테도 배척을 당합니다. 짝이라도 잘 만나 그룹에 들고 싶은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아싸’(아웃사이더) ‘오희정’과 짝이 되어 버렸습니다. 3월의 법칙에 따라 구제불능의 루저(패배자)가 되고 말까봐 끔찍합니다. 3월 안에 친구를 만들지 못하면 흡혈귀를 만난다는데 같이 집에 갈 친구가 없어 교실에서 머뭇거리다 ‘아싸’와 단 둘이 남게 됩니다. ‘오희정’이 바로 흡혈귀?
 
학생들의 건강을 축내면서까지 학력향상선도학교가 되어 차별 예산을 타낼 수 있으면 좋은 학교가 되는 건가요. 아이들은 흡혈귀가 되어 가는데 말입니다. 시험 점수로 경쟁을 부추겨 학생들의 심성까지 피폐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인성(人性)까지 점수화 하겠다고 하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시험 점수로 좋은 학교를 가려내고 점수로 학교가 서열화 되면 아이들 마음에 병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가 재미있기는커녕 살벌한 생존 수단이 되었으니 학교는 흡혈귀들이 사는 ‘지옥’이 됩니다. 마음이 병들어 공부를 손 놓은 아이들은 차라리 내보내는 게 낫다는 학교가 지옥이 아니고 뭡니까. 살아남기 위해 흡혈귀가 된다는 이야기가 허풍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지옥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습니다. 끔찍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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