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포동 공연문화’의 희망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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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포동 공연문화’의 희망을 보다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5.03.09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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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던 신포동을 깨운, ‘블랙 신드롬’ 인천 공연 후기
록 밴드 '블랙 신드롬'의 7일 인천공연 모습.

“인천 시민들이 착각을 했었다. 한때 ‘록의 강자’로 군림했던 인천이 IMF 이후 그 분위기까지 다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것 말이다. 아직 이 분위기, 이 문화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지난 토요일 신포동의 공연 클럽 [글래스톤베리 인천]에서 열린 블랙 신드롬의 공연을 보고 난 뒤 한 관객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사실 글을 쓰는 기자도 그랬고,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후반 정도에 인천서 태어난 사람들 모두는 한결같은 소리를 했었다. “인천엔 이제 록 음악 문화가 없다”고. 그런데 토요일이었던 지난 7일, 그 한결같은 소리가 다 무너졌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리고 성의 붕괴 사건’처럼 말이다.
 
오후 7시까지 [글래스톤베리 인천]은 너무나 조용했다. 사전예매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는 이곳 클럽의 특성과 당시까지의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취재를 나온 기자로서도 몇 명이나 이곳을 찾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기자는 이 공연의 후기를 기사로 쓰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보는 사람만 보는’ 인천 클럽 공연의 분위기가 오늘도 반복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블랙 신드롬에 앞서 무대에 오른 록 밴드 '파티 메이커'.

인천문화재단에 근무하는 태지윤씨가 리더로 있는 파티 메이커가 무대에 올라 첫 곡을 연주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클럽 안에는 그리 많은 관객들이 있지 않았다. 그런데 두세 곡 정도를 연주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옛 인천 록 밴드였던 ‘사하라’의 곡 ‘Vagabond’를 파티 메이커가 연주하자 관객이 갑자기 구름떼처럼 몰렸다, 무슨 일일까. 무엇이 지나가던 사람들을 갑자기 이곳에 오게 만들었을까.
 
파티 메이커에 이어 지하드의 무대가 끝나고 블랙 신드롬이 무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클럽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클럽의 주인장인 이진우씨에 따르면 100여 명 정도까지 수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그날 그 정도 인원이 모였겠다 싶을 정도로 클럽이 가득 찼다. 기자는 한 달에 평균 두어 번 정도 이곳을 찾지만 이날처럼 클럽이 가득 찬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연주가 시작됐다. 보컬리스트가 손을 뻗으면 관객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앞쪽까지 관객이 들어찼다. 쪼그려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약간의 공간만이 허용될 정도로.
 
이날 블랙 신드롬은, 잠자고 있던 인천시민들의 옛 공연문화에 대한 즐거움의 기억을 다시 깨웠다. 밴드의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많은 시민들이 클럽 바깥에 걸린 공연 출연진 중 블랙 신드롬의 이름만 보고 충동적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실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수많은 클럽을 다니며 취재를 해본 기자였지만, 이날의 현상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블랙 신드롬의 1990년대 초반 발표 곡으로 영어 가사인 ‘Feed The Power Cable Into Me’가 연주되는 동안, 인천 록 팬들이 아니면 알지도 못할 곡을 다 따라 부르고 있었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정말 그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십수년 취재를 해왔지만, 이렇게 예상을 180도 깨는 광경은 가히 처음 겪는 일이었다.
 

'블랙 신드롬'의 보컬리스트 박영철. 지천명을 넘은 나이에도 아직 현역 로커다.

이날 공연에 ‘충동적’으로 들어온 인천 관객들 대부분은 “마음 속 꿈틀대던 뭔가를 느꼈다”고 했다. 90년대에 이들의 공연을 보며 열광하던 그때의 기억이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런 공연을 하면 또 보러 오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관계자들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한국대중음악상]의 심사위원으로 평소에는 조용히 공연을 보곤 했던 인천 출신의 김성환 음악평론가 역시 “오늘 너무 좋다”며 입이 귀에 걸린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본디 블랙 신드롬은 인천 밴드가 아니었다. 하지만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 인천이 록 음악에 대한 만만치 않은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을 당시, 그들은 인천에서 여러 차례 공들여 공연을 했었고, 적어도 그들은 인천에서 ‘아이돌’이었다(지금도 이들을 토종 인천 밴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은 없어진 옛 시민회관에서 그들이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1천명이 넘는 관객들이 줄을 서서 티켓 발권을 기다려야 했고, 현재 인천예총이 사용하는 수봉공원 문화회관 소극장에서는 여학생들이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갈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다. 그것이 재림할 거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이날 블랙 신드롬의 무대에 대한 관객의 피드백은 그들이 8090시대 인천에서 정성껏 공연을 했던 데에 대한 팬들의 ‘보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공연을 주관한 [글래스톤베리 인천]의 이진우씨는 “나 역시 10대 시절 블랙 신드롬의 공연을 줄 서서 봤던 사람으로 공연 내내 벅참을 주체하기 힘들었다”면서 “어린 시절 록 스타를 꿈꾸게 했던 이 형들과 공연으로 만나게 된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상황”이라 밝혔다. 그간 이씨가 수많은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봐왔지만, 그가 얼굴까지 달아오르며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 목격하는 일이었다.
 
그간 인천에는 이런 무대가 흔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헤비메탈과 같은 강성의 음악에 몸을 맡길 기회가 없다보니, 이 문화에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주로 구성된 신포동이 오랜 기간 잠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과거의 향수를 추억하러 오는 LP바들이 곳곳에 생겨나는 신포동의 현재를 생각했을 때, 어쩌면 이 향수를 흔들어 깨워 현재진행형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비록 헤비메탈이 과거에 인기가 많았던 음악임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이 헤비메탈을 방향타로 잡는 신진 뮤지션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지 않던가. 다만 그 신인들이 인천을 찾지 않고 있을 뿐이다. 만약 이날을 좋은 사례로 삼아 앞으로 신포동이 곳곳에서 좋은 공연들을 많이 열 수 있다면, 실로 ‘8090시대 신포동의 재림’을 현실화할 수 있지 않을까.
 

'블랙 신드롬'의 기타리스트 김재만. 아직도 인천 록 팬들이 '형님'으로 부르는 인물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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