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 - 조희양 단편 동화 <드디어 엄마를 찾았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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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 - 조희양 단편 동화 <드디어 엄마를 찾았다아>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3.12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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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17.

단편 <드디어 엄마를 찾았다아>가 수록된 조희양 창작동화집 표지
 
아이가 친구 관계도 어려워하고 학교 다니기를 힘들어 하면 부모는 이 아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민을 하면서 어릴 때 아이에게 뭔가 잘못한 게 없을까 뉘우치게 됩니다. 아기 때 잘 돌봐주지 못한 걸 후회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 때 잘했어야 하는데’ 하면서 가슴 아파합니다. 흘려들었던 옛말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선인(先人)들의 누대에 걸친 경험 축적에서 나온 속담에는 세상 이치를 꿰뚫는 진리가 담겨 있다는 걸 새삼 되새깁니다. 『엄마 냄새』라는 책이 많이 읽히는 걸 보면 요즘 부모들이 다들 이런 아픔을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더 많은 부모들이 이 아픔에 대해 공감하길 바랍니다. 아이의 아픔이 따지고 보면 다 부모의 잘못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으며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 드립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세상 전부거든요.
 
세 살 무렵은 ‘에릭 에릭슨’이 말한 발달 단계 중에서 ‘구강기’와 겹치는 시기입니다. 구강기는 주로 입(구강)으로 세상을 만나는 시기로 쉽게 엄마의 젖을 빠는 시기라고 보면 됩니다. 아기가 무슨 물건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시기로 이때에 대인관계의 신뢰감이 기본적으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아기가 젖이 고파 칭얼거릴 때 엄마가 젖을 물려 욕구를 해소시켜 주면서 엄마와의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것이지요. 이 시기에 기본적인 욕구가 억눌리게 되면 타인과의 유대감이 결핍되어 인성 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강기’ 다음을 ‘항문기’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인 배설욕을 참고 조절하는 시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시기에 절제하는 심성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서구의 심리학 이론은 우리 속담에 담겨 있는 지혜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의 심성은 아기 때 거의 이루어진다고 보는 게 동서고금의 공통된 지혜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유아기에 모자(母子)간의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대인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그 반대로 과잉보호는 아이의 의존적인 심성을 강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엄마와 늘 마주 대하며 표정으로 감정을 나누면서 자라면 자연스럽게 정서적 소통에 익숙해지고, 양육 조건이 여의치 못하여 늘 혼자 있었던 아기는 타인의 정서를 읽고 배려하는 심성을 잘 익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경향이든 한 쪽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니 해코지를 하고도 미안한 줄 모르게 되고, 자식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한 부모의 간섭을 받고 자란 아이는 의존성이 강한, 소위 마마보이로 자라나 나중에 심한 자아 분열을 겪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옛날에는 아기가 자라면서 늘 엄마가 곁에 붙어 있었고 성숙하여 사회화되는 나이 때에는 아버지가 아이 훈육을 맡는 게 보통이었는데 요즘은 엄마가 너무 어릴 때부터 훈육을 감당하여 아이는 너무 일찍 엄마를 잃게 되고 엄마는 엄마대로 돈벌이, 집안일, 교육 삼중고에 시달립니다. 저는 전통사회의 아이들이 느끼는 기아(棄兒 버림받은 아이) 공포와 요즘 아이들이 겪는 엄마 부재(不在)가 본질적으로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전이 된 동화가 요즘 아이들에게 잘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시대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동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엄마를 잃고 아파하는지 그 속마음을 들여다봅시다.
 
“너! 너! 너어엇!”
엄마는 시험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탁탁 끊어지는 소리로 나를 부른다. 오늘 4학년 들어 첫 중간고사를 쳤다. 국어가 70점이고 그 나머지는 차마 밝힐 수 없을 정도로 점수가 엉망이었다.
엄마의 잔소리폭격이 시작된다.
“이걸 시험이라고 쳤니? 눈 감고 쳐도 이보단 낫겠네. 다른 애들이 공부하는 동안 넌 뭐 했니? 이럴 바에야 학원엘 뭐 하러 다녀.”
엄마는 그래도 설마 하다 몹시 실망한 모습이다. 하긴 나도 다시 확인하기 싫은 시험점수니까 뭐.
엄마의 표정은 좀체 풀리지 않는다. 괜히 거실에 어슬렁거려봤자 좋을 게 없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막 들려는데 안방에서 큰소리가 난다. 아무래도 내 성적 때문에 싸우는 모양이다. 가슴이 쿵쿵 뛴다.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밖이 신경 쓰여 잠이 오지 않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가 돌아누웠다를 몇 번째 반복 중이다.
 
주인공 ‘인성’이가 시험을 아주 망쳤습니다. 엄마가 난리가 났습니다. 아빠랑 말다툼까지 하더니 결국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 이게 웬 떡입니까. 야호!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만날 엄마가 있게 된 겁니다. ‘인성’이는 신이 났습니다. 학교 끝나고 짝꿍 ‘환희’를 데리고 옵니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간식도 먹고 같이 공부를 합니다. 엄마는 ‘환희’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따로 읽기 지도까지 합니다. ‘인성’이는 은근히 부아가 나기 시작합니다. 얼마 만에 되찾은 엄마인데 엉뚱한 놈한테 엄마를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환희’도 엄마도 다 싫어졌습니다. 만날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워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환희’는 엄마가 없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아직 글도 잘 못 읽습니다. 엄마는 ‘환희’가 불쌍해서 특별히 돌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환희’는 그렇게 보살핌을 받는 게 너무나 행복했나 봅니다. 엄마가 돌아온 느낌이겠지요. ‘환희’가 엄마한테 얼마나 잘 배웠는지 학교 글쓰기에서 최고로 뽑혔습니다. ‘환희’의 작품이 학교 방송으로 낭독이 되고 학생들이 다 감동 먹었습니다. 나도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미워했던 게 미안했습니다. 나는 참 속 좁은 애인 것 같습니다.
 
엄마가 늘 곁에 붙어서 잔소리를 퍼부어 애들은 참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바쁜 중에 틈을 내어 아이 교육을 신경 쓰자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 주라는데 말이 쉽지 그게 됩니까. 이러니 요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엄마를 너무 일찍 잃어버리는 셈입니다. 잃어버린 엄마를 되찾아 너무 기쁜 ‘인성’이가 또 엄마를 빼앗길까봐 신경질 내는 건 당연합니다. 불쌍한 친구한테 그럴 거까지 있냐고 얄밉기도 하겠지만 ‘인성’이 마음에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엄마 빈 자리가 너무 커서 친구와 나눌 여유가 없는 겁니다.
 
혼자 독차기 하려고 친구를 밀쳐내는 건 좀 유치한 게 맞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엄마 냄새가 부족해서 늘 마음이 고픕니다. 엄마가 멀리 있어도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없지만 엄마가 너무 바짝 붙어서 다그쳐도 엄마 냄새 맡을 수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유아적(唯我的) 상태에서 대자적(對自的) 존재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몸은 어른이 되어도 마음은 아기처럼 옹알거리는 상태로 사는 거지요. 유아적이라는 건 자기만 안다는 겁니다. 엄마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엄마 냄새가 늘 부족했으니 그 결핍이 아이를 자라지 못하게 한 겁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 자체가 타인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 존재(대자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엄마 냄새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작품은 그런 성장 과정의 한 부분을 적절한 사건으로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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