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봐야 노는 법을 알고 중독이 돼봐야 중독의 의미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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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봐야 노는 법을 알고 중독이 돼봐야 중독의 의미를 안다
  • 정대민(인천미디어시민위원회 기획정책위원장)
  • 승인 2015.03.16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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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의 미디어로 세상헤집기> 12.


학창시절, 춤을 좀 춘다거나 노래를 좀 한다거나 옷을 좀 튀게 입는다거나 야한 사진을 좀 돌린다거나 개그를 좀 한다거나 하면 우린 “날라리”라고 불렀다. 악기 태평소의 다른 이름인 날라리는 지진아나 열등생 부류도 아니었고 또 그렇다고 주먹 꽤나 쓴다는 일진도 아니었다. 그냥 제 멋에 취해 노는 녀석들이었지만, 그 끼가 넘쳐 학우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재미난 종족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논다는 것, 놀이! ‘놀이’는 즐거워야 한다. 그렇다면 태고 인류의 놀이는 즐거웠을까? 아마 놀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즐거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사냥의 즐거움, 번식을 위한 행위의 즐거움 등등... 그러다가 윗동네 불량종족들과 사냥감을 가지고 시비가 붙어 동족 하나가 죽어버렸다면?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로 발을 동동 구르고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질렀을 것이다. 복수심으로 윗동네 불량종족 두 놈을 죽여 배로 응징했을 수도 있다. 이제는 그 쾌감으로 땅을 발로 동동 구르고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질렀을지 않았을까? 인류 종족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고 종족안전과 번식을 위한 샤먼과 토템의 장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며 살육의 역사다. 이 엄연한 사실이자 불편한 진실 속에 인간은 끝없이 영혼이나마 평안하길 자기 종족의 ‘신(God)’에게 빌었고, 죽음을 바쳐 삶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祭)의식을 정착시켰다. 이 아이러니한 의식에 엄격한 룰이 부여됐고 발을 동동 구르던 몸짓은 강렬함과 유려함으로 훈련되어 ‘춤’이 되었으며, 괴성은 다듬어지고 화음이 더해져 ‘노래’로 재탄생되었는가하면, 멀리서도 알 수 있게 형형색색 꾸미다보니 화려한 ‘옷’이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인간들은 삶의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웃고 떠들며 마시고 먹어댔다. 그렇게 놀이는 신을 향한 의식으로 시작해 인간을 위한 문화로 이어져오고 있다.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다.”

1938년 네덜란드 학자 요한 하위징아(Huizinga, Johan)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본질은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주장했다. 호모 루덴스란 놀이를 하는 유희의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선다고 하위징아는 부연했다.

1900년대까지 아귀 같은 전쟁놀이에 심취해 있던 나라들은 큰 전쟁을 두 차례나 치르면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고 인구도 현저히 감소했다. 싸울 돈도 싸울 사람도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위징아의 주장처럼 인간은 놀이를 만들어내는 호모 루덴스다. 소소하게 즐기던 놀이를 전쟁을 대신할 큰 놀이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축구, 야구 등 스포츠다. 정리하면 Play 즉, 단순한 놀이가 Game 즉, 약속된 게임이 된 것이다. 

스포츠게임은 승승장구하며 전쟁 후 공황에 빠진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관심은 스포츠시장을 형성했고, 경쟁은 스포츠경제를 확대시켰다. 각 나라마다 경기장을 지었고 그 돈은 전쟁비용보다는 훨씬 싸게 먹혔으며 쏠쏠한 수익도 보장되었다. 그렇게 야전에서 끝났던 전쟁은 스타디움에서 부활했고 총성은 함성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도 1980년대를 지나면서 스포츠 강국으로 진입해갔다. 원래 기마민족 태생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제강점기와 독재시대를 거치며 억압되어있던 욕구가 스포츠게임으로 분출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세계적 스포츠스타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타디움에서 선보인 대한민국 게임의 저력은 작은 서막에 불과했다. 21세기 첨단IT시대에서 그 진가가 톡톡히 발휘됐는데 바로 온라인게임이다. 

사이버세계의 온라인게임에서 대한민국은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의 시초는 1960대 초 미국 MIT사에서 시작되었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는 일명 MMORPG(다중접속롤플레잉게임)은 1990년대를 관통하며 좌절과 극복 속에 만화 원작의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메이플스토리>를 만들어 낸 당시 20대 한국 청년들이었다. <바람의 나라>는 20년이 되었고, <리니지>는 아이템 법적 분쟁이 일어날 정도로 매니아들이 전 세계에 깔려있으며, <메이플스토리>는 전 세계 회원수가 1억 명이 넘는다. 

게다가 1996년 출시된 미국 B사의 <스타크래프트>는 PC방과 맞물려 유독 한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어 프로게이머와 대기업들이 설립한 8개의 프로게임단, 게임해설가, 게임중계케이블, 게임기획사 등 새로운 게임직업군을 형성시키며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제는 전설이 되었지만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3종족인 테란, 프로토스, 저그 외에 ‘한국인’이라는 종족이 따로 있어서 전 세계 게이머들이 벌벌 떨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임요한, 홍진호, 이윤열의 명성은 지금도 식지 않고 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은 게임개발의 강국이며 프로게임의 종주국이다. 이제는 ‘e스포츠’라는 종목으로 당당히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는 물론 2014년 전국체전에서도 채택되었다. 또한 게임중독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대학에서 e스포츠학과 생겨나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로써 e스포츠는 그 역사만큼 K-POP 이상으로 한류를 선도하고 있으며 지금은 리그오브레전드(LoL)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중국팬들만 수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민국 콘텐츠산업 수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을 두고 셧다운제니 매출의 5%를 추징하니 등 규제 법안이 발의되어 계류 중에 있다.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러나 규제는 또 다른 중독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장발을 금지하면 더 길러지고 싶어지듯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청소년들의 심리다. 아니, 인간 모두의 심리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통해 진지하게 해석해야지 현상만으로 정책을 입안해서는 절대 안되는 게 놀이 즉, 게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또 추징으로 인해 창의적 산업을 위축 시키는 것 보다 차라리 온라인 오프라인 놀이를 다양하게 만들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더 현명하다. 그래서 더 체험하고 즐기게 해야 한다. 중독도 배움의 과정이다. 놀아봐야 노는 법을 알고 중독이 되어봐야 중독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성숙이란 어릴 때 놀이에 열중하던 진지함을 다시 발견하는 데 있다.”
- <프레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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