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 해주는 아이 - 박주혜 단편 청소년소설 <승리초등학교 5학년 2반 이기자 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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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다 해주는 아이 - 박주혜 단편 청소년소설 <승리초등학교 5학년 2반 이기자 여사님>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3.18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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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18.
2012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승리초등하교 5학년 2반 이기자 여사님> 삽화 (문화일보)
 
유아기 때 엄마가 곁에서 돌보아 주지 않은 아이는 자존감이 약해 무기력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많이 공감하실 겁니다.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정서 발달에 무척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고 우리 사회가 이제 육아 시간 확보를 공론화하게 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과도한 관심이 아이의 건강한 자아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늘 곁에서 지켜보며 관심을 기울이되 간섭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는데, 간섭하지 않는 관심이라는 게 뭘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아이와 협력하여 과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게 왜 나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지켜보기만 하라는 것인지, 그렇게 해서 혹여 성취동기가 약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한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 ‘넌 할 수 있어’, ‘넌 어쩌면 그렇게 똑똑하니’ 하면서 칭찬하면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어려운 과제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칭찬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심리학 연구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로젠탈’ 실험은 이를 입증하였습니다. 아이의 지능이 높다고 알고 가르치면 실제로 성취도가 높게 나온다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들이 경쟁적으로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도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공부한 아이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라는 자기 인식을 갖게 되고 실제로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로젠탈’ 효과에 반하는 실험 결과들이 소개되어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칭찬의 역효과’라는 말도 널리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칭찬이 아이를 공부 못하게 만든다니요.
 
‘알피 콘’이라는 심리학자는 칭찬이 역효과를 낸다는 걸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하긴 하지만 칭찬을 중단하면 오히려 성취 수준이 더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아이의 내면에서 비롯된 동기가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보상은 아이 내면의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으며 오히려 이기심만 커지고 학습을 즐길 수 없게 만든다고 합니다. 최근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너는 다른 아이보다 특별하다’는 칭찬이 아이의 자기중심적 성격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 아이가 타인과 잘 소통하지 못하고 자폐적 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는데 이번 연구 결과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칭찬에 익숙한 아이는 모든 문제를 자기 평가의 잣대로 받아들여 과제 자체에 관심을 갖고 몰입하기가 어려우며 더 심해지면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게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도 오직 자존감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만 의미를 둔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정서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남을 자신을 비춰보기 위한 거울로만 보니 곧 나르시시즘(자아도취)에 빠진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아이는 늘 심리적으로 우울감에 시달리고 심하면 정서 장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존감 형성을 위해 친밀한 돌봄은 꼭 필요한데 욕심을 내어 칭찬을 잘못 하면 아이를 고통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상을 받고 성적이 오르면 부모는 기뻐 어쩔 줄 모릅니다. 이 아이가 커서 큰일을 해낼 거라고 기대감이 막 부풀어 오릅니다. 그 기대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어 아이는 한편으로 뿌듯해지면서 한편으로는 부담감을 갖게 되겠지요. 그 아이가 짊어질 심리적 부담을 한번 들여다봅시다. 마냥 기뻐할 일인지 무엇을 주의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삼학년 때, 수업시간에 아빠에 관한 동시를 썼다. 선생님은 내 동시를 칭찬해 주었다. 잘 쓴 시를 뽑아서 전국대회에 내보낼 것이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상을 받아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등을 말이다. 엄마는 그때부터 글짓기에 온 힘을 쏟았다. 대회란 대회는 모두 참가했다. 물론 모든 작품은 엄마가 썼다. 그러고는 항상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달희야, 너는 공부만 잘하면 돼. 이런 건 엄마가 쓸게!'
엄마가 내 이름으로 응모를 하는 작품들은 거의 상을 탔다. 상도, 상품도 아주 다양했다. 엄마는 내가 상을 받을 때마다 정말 좋아했다. 내가 할 일은, 엄마 대신에 조회 때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는 것이다.
학교 친구들은 내가 뭐든지 잘하는 줄 안다.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잘하는 건데 말이다. 엄마가 한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글짓기도 싫고, 그림을 그리는 건 더욱 싫다. 피아노와 플루트는 재미가 없고, 그중 제일 재미가 없는 것은 공부다. 시험 때마다 서점에 나온 문제집들을 모두 사서 푸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선생님이 월요일까지 글짓기 가져오래."
"알았어. 그래서 지금 하고 있잖아. 걱정 마. 넌 나가서 공부나 해."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글짓기에 푹 빠진 것이다. 나는 거실로 나왔다. 빨리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보면, 항상 공부하라는 말밖에 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속속들이 잘 알지만, 내 진짜 속은 모른다. 나는 뭐든지 잘하는 엄마가 부담스럽다. 엄마가 나는 아니니까.
 
설마 이렇게까지 하는 엄마가 있겠습니까. 숙제할 때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백일장 원고를 대신 써주는 건 너무 심했다고들 하시겠지요. 그런데 숙제하라고 잔소리 하는 정도까지도 아이 입장에서는 대신 해주 거랑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유념해야 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닌, 주어진 일에 신명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억지로 하는 일에서 성취감을 맛보기 어려우며 그렇게 해서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대신 해줘 버릇하면 아이는 혼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거나 반발 심리를 억눌러 속으로 곪게 됩니다. 글짓기대회 원고를 대신 써주기까지 하는 엄마의 극성이 ‘달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글쓰기를 무엇보다 싫어하게 되는 건 당연하고 자아정체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초경(첫 월경) 경험이나 비밀 일기는 엄마의 극성이 아이의 자아정체성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심리학 이론은 형상화한 것이라고 봅니다. ‘달희’가 자기만의 세계를 갖게 된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초경과 비밀일기는 어찌 보면 ‘달희’의 기적 같은 소외 극복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나르시시즘에 빠진, 소외된 능력자로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요. 폭 빠져들어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자기 세계를 갖지 못하고, 내키지 않는 데다 꿰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쳐야 하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고 답답할까요.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다지만 고래에게는 춤추는 사육장이 감옥처럼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래가 고래다우려면 대양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나를 남과 끊임없이 견주어야 하는 아이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진실하게 소통할 수 없게 됩니다. 나와 마주 앉은 사람이 나를 보지 않고 나를 거울로 삼아 자신만 보고 있다면 그 사람과 마주 앉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잖습니까.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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