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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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
  •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15.05.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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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시각 협약] ‘행복 프로젝트’와 ‘새뜰마을 사업’을 들여다본다

 

96살 할머니의 고향 마을

골목길에 돗자리를 펴고 옹기종기 모여 햇빛을 피하고 있는 할머니들 틈에 끼어들어가 말을 얹었다. 마을살이가 보통 30∼40년을 훌쩍 넘은 분들이다. 역시 “집을 고쳐줄 거냐?”는 질문이 앞을 막지만 정작 마을이 얼마나 오래 됐는지 아는 사람들은 없다. 조용히 앉아 있는 할머니 한 분한테 이목이 집중되자 올해 96살이 되었다는 김씨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껏 같은 곳에서 살아왔다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초가집이 벽돌집이 되고 집을 허물어 다시 집을 짓고 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단다. 그래도 마을의 형태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서문안 마을’이라는 이름도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한다니 꽤 오래전부터 불러 왔던 이름인 듯하다.

강화 서문안 마을은 명칭 그대로 강화산성 서문 안에 붙어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역사는 적게 잡아도 조선후기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되지 않겠냐는 게 동행한 강화도 연구자의 추측이다. 인근 구릉에서는 성곽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 연무당터가 앞에 있으니 강화도의 역사를 지켜봐 온 마을이면서 지금도 문화유적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길게 뻗어있는 길옆에 낮은 단층집들이 벽을 맞대고 줄지어 서 있는 모습과 처음 마주친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농촌마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으나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서면 공동으로 사용하던 우물이나 낡은 대문 등을 통해 마을의 연원이 꽤 오래됐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다만, 쌓여있는 연탄도 그렇고, 허물어진 담장, 이것저것 덧대놓은 지붕 등 주민들의 삶이 녹록하지는 않다는 걸 함께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화장실은 재래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도시가스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때문인지 강화 서문안마을은 최근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서문안마을 전경(좌)과 서문안마을 내 공동우물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와 ‘새뜰마을’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는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추진하는 사업의 명칭이다. 지난 3월 24일 전국 85개소를 사업대상지로 선정해 발표했는데, 도시 30개소와 농어촌 55개소를 대상으로 올해에만 국비 550억 원, 4년에 걸쳐 3,2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인천시에서는 모두 3개소가 선정돼 강화 서문안 마을과 함께 부평1지구(부평동 760-270번지 일원)와 동구 만석어촌마을(만석동 2-102번지 일원)이 각각 대상지로 이름을 올렸다.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홈페이지(www.region.go.kr)에 따르면, 사업대상지 선정은 도시의 경우, ‘달동네 등 도시 내 주거취약지역’, 농어촌의 경우 ‘생활여건이 취약한 행정리’라는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도시의 경우는 4개 년, 농어촌은 3개년 간 사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사업 내용은 모두 5개 분야를 중심으로 추진된다. 

- 안전확보 : 재해예방(산사태, 상습침수 등), 노후시설(건물, 축대, 담장) 보수 등
- 생활·위생 인프라 : 상하수도, 빈집철거, 골목정비, 소방도로, 급경사지 정비
- 일자리·문화 : 주민자활, 독거노인·소년소녀 가장복지, 생활문화·체육시설 등
- 집수리지원 : 지붕방수, 단열, 슬레이트지붕 등
- 주민역량강화 : 주민공동체 활성화, 주민참여 확대 등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는 선정된 지역을 통칭하는 명칭을 최근 공모해 ‘새뜰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사업 명칭 역시 ‘새뜰마을 사업’이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앞으로 사업 대상지에 ‘새뜰마을’이라는 마을 안내표지판도 세울 예정인 듯하다. ‘새뜰마을’은 ‘마을을 새롭게 정비하여 희망을 가꾼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BI도 새로 정했다. 붓터치 모양으로 그린 BI의 컨셉은 ‘행복한 페인팅’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는 “그동안 위험하고, 불편하고, 불결한 상태로 방치됐던 곳들이 ’새뜰마을‘이라는 이름처럼 깨끗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을 내놓았다. ‘행복’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데서도 눈치 챌 수 있지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 프로젝트>, 즉 ‘새뜰마을 사업’은 ‘지역행복생활권’이라는 현 정부의 지역 정책에서 출발한다. ‘새뜰마을 사업’ 자체가 ‘농어촌 낙후마을, 도시 달동네와 쪽방촌 등 기본적인 생활 여건도 갖추지 못한 곳을 대상으로 안전확보, 생활·위생 인프라 확충, 공동체 활성화 등을 지원하는 지역행복생활권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이다.
 

?새뜰마을? BI


‘지역행복생활권’과 ‘창조적’ 마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는 200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로 출범한 기관이다. 2009년 지역발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주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현 정부는 ‘HOPE(지역희망) 프로젝트’라는 지역발전정책을 설정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하고 ‘지역행복생활권 정책’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역행복생활권’은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던 ‘광역경제권’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기초 인프라, 일자리, 교육·문화·복지 서비스 등을 지자체 간의 자율적인 합의에 따라 설정된 권역에 기초하여 긴밀히 연계하자는 계획이다.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시군구의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서비스 기반을 다지자는 게 기본 컨셉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일상생활 공간은 ‘마을-농어촌중심지-도시’로 계층화하고, 이를 다시 ‘중추도시생활권’, ‘도농연계생활권’, ‘농어촌생활권’으로 유형화 해 지역 발전을 꾀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 거점이 필요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정책에 맞는 ‘창조적 마을만들기’에 필요한 지원을 해나가겠다는 것이 ‘지역행복생활권 정책’의 큰 줄기다.

일면 마을 간의 네트워크나 효율적인 예산집행 등을 기초로 주민들에게 실효적인 지원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인 듯 보이나 문제는 이러한 정책 수행을 위해 마을을 고도로 기능화된 거점으로 특화, 육성시킨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을 경영체의 지원이나 노후, 불량 주택의 철거 및 개량을 통한 경관의 정비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근거하다보면 마을은 지역발전을 위한 톱니바퀴의 한 축밖에 담당하지 못한다. 마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행복생활권 정책’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로서 거점 지역이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역사를 담은 마을, 무덤이 된 도시

마을이 국토 안에서 나름대로 효율적인 기능을 담당해 제 역할을 맡는 일은 중요하다. 주변 마을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함께 발전해 가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마을의 과거를 지우는 방법으로 변화를 꾀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새뜰마을’의 BI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마을에 새로운 색깔을 입히는 게 이번 사업의 목표다. 그 과정에서 과거는 낡은 것, 불결한 것으로 정의가 내려진다. ‘노후한’ 기억을 없애고,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마을을 만들자는 슬로건은 마을이 겪어 온 오랜 역사를 한순간에 무덤 속으로 집어넣을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예를 들어, 강화 서문안 마을과 함께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부평1지구는 통칭 ‘삼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오던 마을이다. 1939년 히로나카 상공(弘中商工) 부평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만든 집단 주택지가 남아 있는 곳이다. 히로나카 상공은 1942년 미츠비시(三菱) 중공업에 공장을 매각했고 이후부터 이곳을 ‘삼릉’이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됐다. 사업 대상지 발표가 나오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하듯 ‘삼릉’을 일제강점기의 부끄러운 잔재로만 다루기 시작했다. 부평구청 역시 “흉물로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노동자 공동주택”이라는 표현으로 이 마을을 규정짓고 ‘빈집과 폐가 등을 매입, 공동화장실, 빨래방, 공동작업장 등을 건립해 열악한 기반시설을 정비’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미츠비시(三菱) 노동자 공동주택


‘삼릉’은 ‘삼릉’만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마을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 조병창과 함께 시작된 ‘신촌’, ‘산곡동 근로자주택’은 물론 부평역 인근의 철도관사, 미군기지인 ‘캠프마켓’ 주변의 주거지 등과 연계되면서 부평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다. 역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캠프마켓의 반환 문제와도 연결해 생각해 봐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낡은 집을 없애고 다른 지역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공동작업장을 만들고 하는 일만으로 이 마을의 미래 모습을 계획하는 건 너무나 안이한 태도다. 더구나 부끄러운 과거이니 무조건 정비하고 보자는 생각 또한 무지한 판단이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겠다는 의지와 함께 마을의 과거를 통해 마을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을의 옛일들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겉으로만 보이는 집들이 아닌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마을만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가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거다. 사람과 과거를 잊고 새로운 덧칠만을 하려고 하는 마을 개조는 도시에 또 하나의 무덤을 만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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