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로 도시 인물을 산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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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로 도시 인물을 산책하다
  • 강영희 객원기자
  • 승인 2015.07.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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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영동 철로변 어울림 갤러리 <류성환 초상화전>
도원역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철로변 길에는 갤러리가 조성되어있다. 지난 2012년 철로변 걷고 싶은 길을 조성하면서 만든 야외 전시공간이다. 동구청에서 목공방<풍경너머 새로운 세상> 대표에게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다. 야외에 있는 액자에는 참 다양한 그림들이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짜증나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재미있다. 때로는 빨리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좀 더 오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묘한 곳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내가 택할 수 없는, 조금은 강압적인 전시이기도 하고, 생경한 낯섦을 선사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수준부터 스타일이며 천차만별. 그래서 익숙하고 익숙한 이 길에 사소한 변화로 그 주변의 어르신들에 입에 오르내리며 긴장과 낯선 체험을 하게 하는 공간이다.
 

<철로변 어울림 갤러리>
 
 
익숙한 공간에 사소한 변화가 선물하는
긴장과 낯선 체험

 
6월 말에는 난데없는 할아버지 얼굴이 걸렸다. 똑같아 보이지만 약간의 변화가 있는 사진이 .. 그러다가 갑자기 사진이 작아지고, 여러색으로 덧칠된 얼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좀 낯설지 않은 느낌의 그림이었지만 철로변 주변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뭐여 저게 .. 귀신같이 .. 흉측하구만 ..”, .. “이상해요?”..“이상해, 귀신같고 도깨비 같고 ..” .. “전 멋진데 .. ” .. “좀 있으면 없어져요.. 열심히 그려 붙였으니 좀 지나면 없어지니까 그냥 봐 주세요...” .. 철로변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대략 이러했다.
 
매일매일 그 길을 오가는 나로서는 돌 액자 속 변화들이 즐거웠다. 커다란 할아버지 얼굴 사진이 작아지더니 구겨진채 붙혀져 있고, 공영주차장에 있는 액자부터 어르신들의 다양한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 걸려 서서히 도원역 방향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야외갤러리 류성환 작가의 작품들>
 
누구예요? 약력도 없고 ..
그림 재미있네. 어른들은 쫌 안좋아 하시지만 ..
 
“류성환이라고, 몰라?”
“이름만 들어서는 잘 .. 얼굴을 봐야 ..”
“굳이 밝히지 않겠다 하더라고, 수요일 마다 초상화를 그려주니까 와봐.”
 
그 다음 주 수요일, 서둘러 도원역을 향하는 와중에 익숙한 얼굴이다. “어쩐 일이예요?”, “전시해요, 여기서..”, “아~! 자기가 이번 전시하는 사람이구나?, 초상화 그려주러?”, “예 .. 이제 끝나고 정리하는 중..” 아는 사람이었다. 바쁜 걸음에 “다음 주 첫 빵 예약!”, “네”, “다음 주에 봐요~”
 

<몇번의 기다림, 류성환 작>

 
당신의 삶에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상화를 그려드립니다.
 

7퉐15일 오후 2시, 배다리 육교 옆 창영어린이공원, 할아버지 앞에서 이젤에 스케북을 올려놓는 그를 만났다. 남인천 케이블 방송에서 촬영 중이었다. '일빠'로 예약은 했지만 할아버지가 계서서 할아버지를 먼저 그리시도록 했다. 작가는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하고 기자는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는 영흥도에서 태어나 사시다가 대부도에서 포토농사를 지으시며 사셨는데 일 년전 인천에 사는 자식들의 성화로 배다리 헌책방거리 주변 주택가로 이사와 살고 있다 하셨고, 평일에 창영학교 아이들 귀가를 돌봐주는 알바를 하신다고 하셨다. 많이 봐도 70대 중반, 작가는 60대 후반으로 봤는데 80대 초반이라 하셔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모님 때부터 믿음이 신실하셔서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아 그렇다고 하셨다. 그렇게 작가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기자는 그 모습을 찍었다.
 
더운 날씨라 시원한 마실꺼리를 준비해서 다시 가 보았더니 초등학교 소녀가 다음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림은 마무리 되고, 남인천 케이블 방송이 작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10살인 요리사가 꿈인 소녀가 학원을 가야해서 급하다 하니 또 양보하고 구경을 했다.
 

<할아버지를 그리는 작가>
 
인물과 마주보고 나누는 이야기가
손 끝에 힘이 되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자화상을 그렸다고 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지는 20여년 .. 옛날부터 사람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초상화를 그린 것은 13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삶의 초상, 삶의 터 .. 등의 ‘삶’ 시리즈에 이어 지금의 ‘인물도시산책’ 여덟 번째 프로젝트으로 이어지는 작업은 문화바우처 사업과 연계하여 중,동구 홀몸어르신들의 초상화를 그려드리면서 그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분들이 작가를 그러보게도 했다고 한다.
 
작가가 자라왔던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려운 이웃들의 삶에 조심스레 들어가 목적 없는 이야기-어르신들의 생애사, 청소년들의 꿈 등 -를 나누다보면 어느덧 그림은 그려져 있다고 했다. 그들의 삶이 이야기가 손끝에 힘이 된다고 한다.
 
 
부침이 있는 삶의 시간을 지나온
그들이 소소한 행복이 더 빛나더라

 
자신이 그리는 그림은 밝은 느낌의 초상화는 아니지만 어두운 모습이지만은 않다. 부침이 있는 삶이 마냥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다들 어렵고 힘든 삶이지만 그 가운데 소소한 행복이 더 빛나더라. 내 그림은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아니다. 작가의 내적 과정을 지나 무의식적으로 삶의 부침-어떤 슬픔과 아픔을 넘어선 무엇을 담을 수 있게 된다. 작가로서도 당신들과의 삶에 시간을 잠시 공유하며 작업하는 것이 좋다.
“어른들이 그림이 흉측하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하루에 한 두 번 밖에 보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이 낯섦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림이라니 .. 게다가 사진처럼 똑같은 내 모습이 아니다. 당장은 생경하여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나 이 경험이 시간을 지나면 또 달리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우리는 누구나 내 얼굴보다 남 얼굴을 더 많이 보며 살아간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며 살아가듯. 기자가 사진을 찍어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순순히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물며 초상화는 더 그럴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낯선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다.
 
작가의 인물산책은 계속될 것이라 한다. 그 즐거운 산책에 타인의 삶을 조심스레 담아내는 태도가 서로를 마주보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해진다. 초상화를 그리며 나눈 이야기들을 담아 책으로 역어 볼 예정이라 한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듣고나니 언제 나올지 모르는 그 책이 벌서 기다려진다.


<낯선 시선, 류성환 작>
 

 
*류성환 작가 전시는 오는 7월 25일까지 진행되고, 수요일 오후 2시~5시, 창영어린이공원에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초상화를 그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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