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 협궤열차 마지막 차표 하나 더 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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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협궤열차 마지막 차표 하나 더 샀죠"
  • 강영희 시민기자
  • 승인 2015.11.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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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사람들] 잡지 소장가 서상진씨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 - 아벨서점이 42주년을 맞았다. 아벨전시관 2층 시다락방 옆에 '책으로 말하는 역사실'을 만들며 전시관 확장을 기념해 잡지 소장가 서상진씨의 근대잡지 초대전을 갖고, <책으로 읽는 역사이야기>강연도 진행되었다. 
 
서상진씨는 현재 진안에 살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잡지책을 구하고, 잡지이야기를 하고, 잡지 전시를 하며 지내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배다리 아벨서점과의 인연은 10대 후반이었다. 보통의 책은 몇 백원을 줘야했던 시절 몇 원에서 몇 십원이면 살 수 있었던 오래된 잡지를 사서 보았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귀한 옛 잡지들을 많이 소장하게 되었고, 어느새 잡지 소장가가 되었다.

그는 잡지를 무조건 모으지는 않은다고 한다. 먼저 서가에 꽂히기 전에 다 읽어본다. 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읽는 것으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장서를 구비하게 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2000년대 이후 잡지 관련 전시는 서상진씨의 소장본을 빼고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잡지는 책도 아니야"

그는 3,000권 이상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노고를 존중하고, 그 자료의 가치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주는 상이 있었는데 여기에 '잡지 제외'라고 써 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그렇게 잡지는 책으로서의 존중은 받지 못하던 것이었다고 한다.  잡지'雜紙'의 잡이 '잡스럽다'의 그 잡. 그렇다보니 다른 것 보다 10배 이상 저렴했고, 그래서 내가 읽을 수 있었지요. 못버리는 스타일이라  그것들이 쌓인것이라 했다.

못 버리는 사람들 중 한 가(家)를 이루게 된 사연이다.


잡지 소장가 - 서상진잡지 소장가 서상진씨

옛날 잡지 전시가 아벨전시관에서 단 7일간 진행된다고 해서 잊어버릴가봐 긴장하고 있었다. 몇 번 마음 먹다가 지난 6일 늦은 아침에야 겨우 들러 전시를 둘러보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서상진씨가 토요일에 쓸 강연 자료-ppt를 좀 수정해야 한다며 도움 청할 곳을 찾기에 사진관으로 모시고 갔다.

잡지의 연도별로 정리안 된 것들을 돕고, 커피 한 잔 내려드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수인선 협궤열차 마지막 열차를 탔어요. 차표가 있어요. 차표는 역무원이 잘라가잖아요. 그래서 혼자 갔지만 하나 더 샀어요. 찍어둬야 해요. 상점 간판, 동사무소나 마을회관 같은 거 .. 다 남겨둬야 해요. 그게 역사예요 .. 그게 .. "

커피를 내리는 동안 갤러리에 걸린 아벨관련 사진 중 2004년 아벨전시관 전시내용을 담은 사진이 있었는데 어둡고 흐린 사진 속에서 '40년대 무엇', '50년대 무엇'을 읽어낸다.

" 배다리는 제 젊은 날의 추억이예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재미있잖아요. 인연이 있으니까 .. "

"주로 박물관이나 도서관 등 학예사를 대동해 진행하는 전시를 해왔는데 이런 개인 공간에 전시는 처음이라 도록도, 책 목록도 아벨사장님 혼자 준비하고, 여러모로 힘드셨을꺼다. 소장가인 본인이 개인 공간에 전시를 잘 몰라 도움도 못드려서 미안하다"고 했다. 귀한 자료인 걸 당신(아벨 사장님)이 아셔서 굉장히 부담스러워하셔서 그 무게감에 달랑 7일밖에 하지 않는다며 토요일 강의를 들으러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전시와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 이번에 전시된 잡지 중에는 다른 전시에서 잘 내놓지 않았던 것도 꽤 있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잡지들이예요. 잡지 전시가 희귀해요. 게다가 잡지 강의도 마찬가지고 ..

잡지는 교과서에 없어요. 교과서 바깥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디서 들을 수 없는 잡지예요. 잡지과도 없어요. 전산학, 도서관학 신문방공, 문헌정보 정도가 자료를 다루지만 잡지과가 없어요.

박물관들이 빈약한 곳이 많아요. 그래서 제 자료를 원하는 곳도 많지요. 혼자서 다 보관하고 연구할 수 없으니 언젠가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제가 가지 않아도 그들이 많이 찾아와요. 그 능력이 되는 곳에 보내야겠죠. "


 

동사무소나 구청 등에서는 그 기관의 역사만큼의 기록은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을 알고 놀랐다. 기록과 보존이 너무 부실하다는 것에 새삼 더 놀랐다.

개인인 필자 조차도 손에 들어온 것을 잘 버리지 못하기도 하려니와 누군가 갖고 있으려니 하며 적지 않은 자료들을 해마다 정리해왔다.
운동권도 아니고 뭐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팜플렛 하나, 대자보며 쪽지, 회의자료, 소식지 등 어디서 접할 기회가 없던 내용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인쇄물들과 함께 지나온 내 역사이기도 해서 쉽게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때론 그것들이 내 손에 있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의 고민 끝에 책꽂이에 끼웠다 뺏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게하고도 남아있던 자료들을 인천민주평화인권센타에 보내고 한 시름 놓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자료들이 있다.

개인의 사소한 자료들도 쥐고 있기 힘든데 그 것을 40여년 해 오셨으니 .. 그런 귀한 자료를 무상 기증을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참 무례한 짓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민주화 운동 자료들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다. 당시 사무실도 많이 털리고 어쩌고 .. 들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니 ...

" 인천 운동권 잡지도 있다. 80년대 자료부터 .. 전국적으로 다니며 많이 갖고 있게 됐다. 인천지역만의 잡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회 할 만큼 많다. '말'지 창간호도 있다. 팔지 않았다. 뿌렸다. 당시에는 그 책 가지고 있으면 다 잡아갔다. 80년대에 전철역에서 검문 있어서 그런 책을 받은 날은 버스를 타고 갔다.
 여기 울산서점 옆 샛별서점(강남순)이 유명안 운동권 서적 루트였다. 그 사람 도청당할까봐 전화도 놓지 않았다. 갓난 애기가 있었는데 ... "

잡지 이야기는 80년대 90년대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 삼엄했던 시절 우연히긴 하지만 적지 않은 좌익 잡지나 서적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본인 역시 꽤 오랜동안 전화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잡지는 그 다양한 내용들이 있어서 민주화운동 뿐 아니라 화가들의 표지그림이나 서예가들의 글씨-제호전시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가 가능하다. 잡지 표지만 찍어놔도 읽을 수 있는 역사가 정말 많다며 가볍지만 중요한 자료들이 적지 않게 담긴 잡지의 기록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남선의 <청춘>표지-호랑이 그림은 최초로 표지에 그림을 넣은 잡지로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씨가 그린 것이다. 역시 최남선이 발행한 <소년>은 사진을 실은 최초의 잡지이도 하다. 동정 박세림의 제호는 강은 잘 모르겠지만 몇 손가락에 꼽는 글씨-서예가로 유명하다."

그렇게 시작된 책 이야기는 그 책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적 의미가 있었고, 기록과 보전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지난 7일 강연으로 이어졌다.
 

최남선의 소년
최남선이 18세에 혼자 발행한 잡지 <소년>


최남선의 <청춘>-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씨가 그린 표지화


 

이중섭의 목차화
<책으로 말하는 역사실> 잡지 소장가 서상진씨의 '근대잡지 초대전' 전시모습

이번 전시는 곽현숙 아벨서점 사장님과 10대 후반부터 인연을 가져온 서상진 소장가가 사장님의 주문으로 인천과 인연이 깊거나 인천관련 옛 잡지들을 중심으로  마련되었다고 한다. 문예사의 틈을 메꿀 수 있는 자료들도 포함 60가지가 전시되었다.

최남선의 <소년>이나 <청춘>, 최초의 문예동인지<창조>, 장준하의 <사상계>, <현대문학>, <자유문학>, <경기문단>등의 옛 잡지들이 있었고 창간호도 있었고, 서림학교 교사들이 만든 동인지도 처음 공개되어 있다.


경기문단, 해풍 등 경기 인천과 관련된 잡지를 중심으로 전시되었다.


'아벨서점 42주년'이자 '역사실 개관' 기념으로 '근대잡지로 보는 역사 이야기' 강연 모습


대표적인 친일 잡지인 <태양>창간호도 전시 되어있다.

<전선> 사회주의 계열 잡지

어린이
'어린이'라는 말을 방정환 선생이 제일 먼저 쓴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미 최남선의 <소년>'어린이의 꿈'라는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도 어린이라는 단어는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는 설명이었다.


<삼사문학>표지의 그림은 '김환기'작가의 그림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화가들이 벌이가 어려워 잡지 표지등도 많이 그렷다고 한다.


<은영> 창간호, 영화 관련 잡지도 해방 이후 발행되었다고 한다. 각종 문예지들도 폐간되었다가 해방 이후 재발간 되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 잡지의 절반이 폐간당한 역사도 이야기 하신다.


<싱클레어> 2000년에 발간된 싱클레어는 독립출판으로 발행되고 있는 독립잡지의 할아버지 벌이라고 하시며 그 노력에 소중함을 언급하신다.

60이 넘은 그는 여전히 잡지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전국의 많은 길도 헌책방 길을 중심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제물포 역 근처에도 정말 많은 책방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그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내가 간직하려 했던 인천문화잡지 <옐로우>도 전부 챙겨드렸다. 창간호가 빠져있어 이것을 찾아 전해드리기로 약속도 했다. 나보다 이분께 있는 것이 더 온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여서이다.
그렇게 책으로 치지도 않는 잡지로 듣는 역사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보전하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의 노고 어린 발자국이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을 남겼다. 화장실에 달랑달랑 매달려 심심풀이가 되었던 잡지들이 떠 올랐다. 그래서 남아있지 않은 잡지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 어린날의 즐거움이었던 <보물섬>이며 나에게 별의 꿈을 꾸게 해주었던 <소년경향>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런 어린이 만화는 특히 잘 남아있지 않다고 하니 맘이 서운하고 아쉬웠다. 우린 후대에게 남겨줄 무엇이 있을가도 생각해보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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