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_인천, 고향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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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_인천, 고향을 짓다
  • 강영희
  • 승인 2015.12.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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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_도시, 영희의 고향이야기]⑦<끝>영희와 수민이의 고향 이야기
강 고향이야기

다른 세계관이 필요한 시대


세계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가난하고, 낡고, 오래된 마을을 모두 밀어버리고 똑같은 주택을 짓던 '주택 재개발'을 했고 이어 똑같은 네모의 '아파트 재개발'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1998년 IMF경제재난이 밀어닥치기 전까지 그것은 당연하다 못해 행운이었다. 집이 있는 사람은 마당에 못쓰는 수도까지 보상을 받고 나왔고, 세입자들도 분양권에 가족 숫자대로 이사 비용을 받아 나왔다.

가난한 마을을 나와 어디 가서 그때보다는 좀 더 넉넉하게 살 수 있었기에 그 시절의 재발의 환영은 세계경제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시기임에도 '개발'이라던가 '발전'이라던가하는 이름으로 지역을 뒤흔들었다. 인천의 많은 지역-서구 가정, 석남동 일대, 남구 도화,용현,숭의, 주안, 학익동 , 중구 송월, 신흥, 율목동 , 부평 산곡, 청천동, 동구 송림, 서림, 금창 등등... 구 도심 지역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여 도시환경개선사업 등의 명목으로 강제수용까지 하려 하면서 인천을 마구 뒤바꿔 놓았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를 격으며 일부는 진행되고 일부는 멈췄다. 개발이 진행된 곳도 더 이상 개발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이 퍼졌고, 미국 경제를 흔들었던 가게부채의 폭탄을 고스란히 가져와 빛 내서 집을 사라 했다. 지금도 빚을 갚고 소비를 하며 살 수 있는 근간인 임금은 올리지 못하게 하며 폭탄의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

고향이라 할 수 있었던 추억과 기억을 담은 공간은 그런 과정-개발이니 발전이니 하는 코앞의 이익에 희생되어 속절없이 찟겨지고 부숴지고 사라져갔다. 그 위에 세워진 아파트는 그 높이 만큼이나 천청부지로 가격이 치솟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도 적지 않게 생겨났다.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 비슷한 무엇

강 고향이야기


나고 자라고 그 기억과 추억이 있는 공간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어쩌면 고향 마을은 없다. 아니 사라졌다. 그렇다고 가난한 삶을 좀 살만하게 해준 돈과 고향을 바꾼 부모님 세대에 대한 원망도 사실은 없다.  새삼스레 게다가 도시에서 '고향', '고향' 하는 것도 좀 우습기도 하다.
가끔 좀 오래 살기도 했지만  2년 마다 이사를 다니며 또는 자기 집이라 해도 아파트니 공동주택에 살면서 이웃과 추억을 만든다거나 인사를 한다던가 하는 교류가 거의 없는 도시의 삶에서 '고향'은 낯설어진 단어다.  

이번 고향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사라진 그 마을 위에 세워진 아파트 단지와 주상복합건물, 공동주택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공간은 '고향'은 아니지만 비슷한 무엇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연배가 있는 분들이 "당연히 고향이지.." 하고 말하면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격은 사람들만이 고향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곳이 도시이던 시골이던 ...



'응답하라 1988'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

강 고향이야기


한 두해 전부터 '응답하라 ****' 하는 드라마 시리즈가 지난 시간들을 들추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특히 지금 방영하고 있는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딱 내 세대의 이야기지만 여러모로 요즘의 패션 트렌드와 비슷한 점이 지금의 세대에게도 공감이 되는 모양이다.

게다가 그 시절를 지나온 이들에게는 이웃과 음식을 나눠먹거나 어려움을 알고 함께 아파하고 걱정하고 해결해가는 모습 등 '이웃 사촌'의 의미가 살아있고, 이웃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절을 담고 있어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모르는 요즘,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따듯한 위로를 주고 있어 보다 폭넓은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공동체', '마을만들기', '공동체 회복' 같은 말들이 '이것이다!' 하며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어 좀 더 관심있게 보게 된다.  쌍문동 그 작은 골목이 내 옆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 다시 왔기 때문이다. 일이 있을때 내 아이를 돌봐줄 이웃, 하루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걱정하고 들러봐줄 이웃, 공부는 못해도 씩씩하고 착한 마음을 알아봐주는 이웃, 좀 모자란 친구를 왕따 시키지 않고 '깍두기'라고 해서 이쪽 저쪽 모두 어울리도록 하는 이웃이 필요한 시절이 왔기 때문이다.  친척보다( 또는'만큼') 가까운 이웃이 되는 일,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젊은 세대들은, 그들 보다 더 어린 세대들은 더 모를 수 있다. 모르면 배워야지 싶지만 누구한테 배우나, 시대의 어른으로 불리는 채현국, 장형숙 어르신같은 분들이 우리들 사이 어딘가에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그런 어르신처럼 늙어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    


인천_도시, 우리들의 고향이야기


내가 활동하고 있는 배다리는 나에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선 ‘너의 배다리-쉼이거나 위안, 편안함을 주었던 고향 같은 그 곳-는 어떠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배다리가 다시 다른 지역의 무엇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렇게 사라진 내 고향일 수 있었던 마을을 기억해내고, 그 전시를 옮겨 담았다.

이 고향이야기는 개인사를 통해 그 공간과 이웃에 대한 기록을 들추고, 소시민들의 작은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개인사를 드러내는 일이 좀 어색하고 민망하지만 이를 계기로 책으로 쓰면 몇 권이라는 그 삶에 처음은 그렇게 한 ‘점 . ’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라져가는, 잊혀져가는 어느 작은마을 사람들-어르신들은 그렇게 사진을 전해주고, 이야기를 해주고, 사진을 찍으라 했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그저 이름 석 자에 나이와 짧은 이야기와 사진뿐인데 그렇다. 이것은 그들-과거-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현재-에게는, 조카-미래- 세대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잃어버린 나의 고향은 이제 나의 조카들의 현재 고향이다. 다시 그렇게 대규모 재개발이 일이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고향일 공간이다.

40대 중반의 나(영희)와 그 이전 세대의 기록을 중심으로 <부평연와 벽돌공장이 있던 마을>이야기에서 이제 아파트와 차, 아스팔트, 상가 간판과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고향’을 묻고, 마을 만들기라는 공동체 회복이 트랜드인 시절에 지역사회에 귀한‘재료’를 들여 고향을 짓자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왜 지금 낡아빠진, 촌스런 ‘고향’일까? 그럼에도 내가 조카들이 나고 자란 인천이 왜? 어떻게? 어떤? 고향이면 좋겠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지금 그 곳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고향을 짓다

고향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정리하면서 그와 동시에 일어난 수 많은 일들에 영향을 받았다. 계속 되새김질 하며 매번 다른 소화액을 마신 느낌이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고향은 부개동 벽돌공장 마을에서 머물지 않고, 인천으로, 도시로, 시대로, 역사로 이어져 있었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고향이라는 말이 썩  잘 어울리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는 개인적인 바램이자 꿈은 '함께 지어가는 도시에서의 삶' 그 자체다.  '함께 살아 가는 일' 그것을 넓히고 높히고 깊어지게 하는 일이다.

. . .

짓다와 만들다 차이1
짓다 : 재료를 짜임새나 구조를 갖추어 새로 구성하는 것
만들다 : 원래 없는 것을 인위적이거나 물리적인 조작을 통하여 새로 생기게 하는 것

짓다와 만들다의 차이2
'집'을 짓다, '밥'을 짓다, '시'를 짓다......
천 번의 노력과 만 번의 생각과 무한의 열정으로 이루어내는 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입니다.

짓다와 만들다의 차이3
"해송아! 엄마는 '짓다'는 말이 참 좋더라. '만들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지만, 엄마는 '짓다'라는 말이 훨씬 좋더라. '만들다'에는 왠지 정이 덜들어가는 것 같은데 '짓다'에는 정도, 정성도 더 들어가는 느낌이어서 좋더라. 집을 만들지만 '만든다' 하지 않고 ' 짓는다' 하잖아. 온 가족이 살아가는 소중한 터전을 마련함에 '만든다'하지 않고 '짓는다' 하듯 살아가는 모든 것에 그리 정성을 들여가면 좋겠어. 인연을 지어가고, 복을 지어가고, 세월을 지어가고 ...
해송아, 나중에 옷을 만들 거잖아. 집을 짓듯이 인연을 짓듯이 복을 짓듯이 그렇게 지어가면 좋겠어. 그냥 만들지 말고, 잘 지어가면 좋겠어. 자신을 받쳐주는 땅에 어떠한 상처 한 조각 주지 않으면서 제 역할 묵묵히 해내는 지어짐 같은 ... 엄마는 우리 해송이 옷이 그러면 좋겠어"  -<엄마와 딸, 바람의 길을 걷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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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연와'라는 부개동의 커다란 벽돌공장이 있던 마을, 이제는 사라져서 사진 한 장 구하기 어려운 수 많은 마을중에 하나일 뿐인, 그러나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에 아련하고 애틋한 마음에 <인천_도시, 영희의 고향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찾아낸 이야기와 사진들이 전시 한 번 하고 또 그렇게 사라져 갈까봐, 인연이 있는 <인천in>에 제안하여 그 내용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시준비와 진행 등이 순조롭지 못하기도 했고, 차분히 책상머리에 앉아 시간을 들여야하는데 이런저런 상황속에 그것이 쉽지 않아 약속한 만큼 써내지 못했고,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맞춰 이 부족한 글도 마무리하고자 한다. 

관심을 갖고 읽어준 분들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글을 연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인천in>에도 이 과정을 통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며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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