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팠어. 이러다 내가 죽나부다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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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팠어. 이러다 내가 죽나부다할 정도로"
  • 김인자
  • 승인 2016.02.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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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다시 만난 보라돌이할머니
"이게 누구야아~~?"
우와, 보라돌이할머니다.
"아고, 나는 울 선상님 어디 아픈가?
어째 나는 한번도 못보나?
나 죽기 전에 볼랑가?
그랬다아~."

지난 여름과 가을 나는 매일 오후 네 시 십 분이 되면 우리 아파트에 있는 벤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그림책을 읽어드렸었다. 심계옥엄니가 치매센터인 사랑터에서 오시는 오후 네 시가 되면 심계옥 엄니를 마중하고 힘들어  하시는 심계옥엄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벤치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매일 그림책 한 권 씩을 읽어 드렸었다. 그리고 춥고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어 할머니들이 벤치에 못나오시게 되자 한겨울 내내 그림책벤치는 긴겨울방학에 들어갔다.

보라돌이할머니는 그림책벤치에 거의 매일 나와서 앉아계셨던 모범생 할머니셨다. 왜 보라돌이할머니냐면 옷도 보라, 신발도 보라, 양말도 보라. 보라돌이 할머니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보라색으로 치장을 하셨는데 보라색이 정말 잘 어울리셨다. 보라색이 잘 어울리는 보라돌이할머니. 할머니는 보라색을 어릴때부터 좋아하셨다고 했다.

"할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응, 나야 잘 지냈지."
"근데 할무니,어디 아프셨어요?
얼굴이 왜캐 마르셨어여?"
보름달 같았던 보라돌이 할머니 얼굴이 조막만해지셨다. 너무 안스러워 보라돌이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며 볼에 쪽하고 뽀뽀를 해드렸다. 그랬더니 보라돌이할머니가 내귀에 대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아팠어. 아주 많이. 이러다 내가 죽나부다 그런생각이 들정도로 많이 아팠어. 근데말야, 내가 죽는건 하나두 안 아까운데 우리 이뿐 선상님을 못 보구 죽으믄 으트카나 그게 내 근심이었어."
"할무니 ...... ."
"울이뿐 선상님 안본 새에 얼굴이 말이 아니네. 방학동안에 좀 쉬지그랬어. 엄니땜에 그것도 맘대로 못했겠구만 그래...... ."
"많이 쉬었어요 할무니..... . 근데 할무니 어디 가세요?"
"머리가 하두 숭해서 머리 지지러 미장원갈라고."
"우와, 파마하실라고요? 그럼 가신 김에 염색도 하세요."
"염색은 못혀. 옴 올라서...... . 근데 이 할망구가 왜 안나와?"
"붕붕카할머니여?"
"아니, 9층 할멈"
9층 할머니가 누구시지?
2층에는 붕붕카할머니랑 짝꿍하부지인 왔다갔다하부지가 사시고,
21층에는 함박꽃할머니가 사시고,
9층엔 어떤 할머니가 사시지?
이사오셨나?
나중에 보라돌이 할머니에게 여쭤봐야겠다.

어서 새봄이 왔으면 좋겠다.
살랑살랑 봄바람부는 따뜻한 봄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따뜻한 새봄이 와야 내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그림책을 읽어드릴텐데.
콧바람 샬랑대는 그림책벤치에서.



책읽어주는 할머니/김인자글 이진희그림


할머니는 그림책을 좋아하십니다.
내가 큰소리로 책을 읽어 드리면
깜깜하던 세상이 환해진 것 같다고 하시거든요.
나는 잠자기 전에 할머니께 전화를 합니다.
그림책을 읽어드리려구요.
매일 밤 나는 할머니께 그림책 한 권을 읽어 드립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언제나 똑같은 장면에서 흥분을 하십니다.
"이런 이런 고얀놈들 같으니. 거 좀 긴 손으로 꺼내주고 가지...... ."
그리곤 또 조용히 들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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