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못사줬다 내가.하 그걸 생각하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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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못사줬다 내가.하 그걸 생각하믄..."
  • 김인자
  • 승인 2016.02.2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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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할머니의 아픈 기억

"엄니,커피 드실껴?"
"응, 근데 뭐햐?"
"책 읽을라고."
"뭔 책을 맨날 읽냐?
너는 공부가 지겹지도 않냐?"
"공부 아녀? 엄니"
"뭐시 아녀? 어릴 때도 글자백혀있는 것은 죄다 찾아 읽었다, 니가."
"ㅎ그랬어여?"
"먹구살기 힘들어서 내가 너 그르케 좋아하는 책을 맘컷 못 사준게 지금도 한이다...... ."
"엄니, 책읽어주까여?"
"책을 읽어준다고?
자라고? 지금 밤이야?"
"아니, 낮이여"
"근디 밤도 아닌데 왜 책을 읽어?"

밤마다 나는 심계옥할무니 주무시기 전에 책을 읽어드린다. 그런데 지금 책을 읽어드리겠다고 하니 잠을 자야하는 밤인줄 아시는가 보다.
"책읽어서 녹음할라고"
"맨날 녹음은...... .
녹음하믄 돈 나와?"
"하하 돈 안나와"
"돈도 안나오는거 맨날 힘들게 혀서 모햐"
"좋으니까...... ."
"좋기도 허겄다."
그래도 너희 엄마는 24시간 공부하라고는 안하시잖아.
우리 엄마는 공부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봐.
"책에 똑바로 썼구만그래. 요즘 젊은 엄마들 애덜한테 너무햐."
"뭘 너무햐?"
"공부해라 공부해라. 날만새고 일어나믄 공부해라 공부해라 애덜을 성가시게 하잖아."
"그럼 공부를 해야지. 안함 쓰간?"
"싫은데 억지로 시킨다고 하나? 지가 하고 싶어서 해야지.
나는 너 키울때 공부하란 말 한번도 안해봤다."
"그치.. 내가 공부에 한이 맺히긴 했지."
"너는 공부든 머시든 내가 하라고 성화대본 적이 읍다."
"딱히 내가 잘 하는게 없어서 그랬지."
"그래서 그랬나.안그람 우리 형편에 고등핵교도 못 간다는걸 니가 안 것이지.
불끄고 자라고 하믄 알았다 알았다 하믄서 밤새 책보고 그랬다 니가."
"내가 그랬나?"
"그랬다 니가.

국민핵교 몇 학 년이나 됐을랑가 몇 날 며칠을 뭐 싼거모냥 중중거리고 댕기더니
하루는 니가 엄니 나 뭐 사주면 안돼? 하더라"
"아...... ."
"생각나냐?"
"생각은...... .안나."
"생전 뭐 사달라고 떼쓴 적 없는데 무슨 전집이라나
그거 사달라고 딱 한번 말했는데  모른척 했다 내가."
"그랬어? 나는 생각 안나."
"근데 내가 그걸 못 사줬다.돈이 읍어서.
사주고 싶었는데 그걸 못사줬다 내가.하 그걸 생각하믄 지금도 내가 요기가 아푸다."
그러시며 심계옥엄니가 가슴팍을 퍽퍽치신다.

"아프다 어메야...... ."
엄니손을 잡는 내손을 심계옥엄니가 꼭 쥐며 우신다.
"어린게 을메나 갖고 싶었으면 생전 안하던 말을 할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믄 내가 여기가 저리다. 미안허다. 아가"
"아고 어메야~ 나는 생각 하나도 안난다.
다른건  싹 까먹음서 그딴건 모하러 기억하는데‥"
"미안허다.
내가 죄가 많아가지고."
그림책 한 권을 읽는 동안 심계옥엄니는 옛날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나 어릴적 얘기를.
그러면서 내가 죄가 많아가지고 그말을 얼마나 얼마나 많이 하시던지.
"너 다 읽었냐?"
"응"
"그럼 내가 읽어주까?"
"엄니가?"
"그랴"
"왜?"
"그냥, 읽어주고 싶어서. 시르냐?"
"아이고 싫기는? 억수로 좋아."

엄마 왜그래
나는 우리 엄마가 책읽어라~ 책읽어라~ 이 말 좀 안했으면 좋겠어."
책벌레 지혜가 안경을 신경질적으로 추켜올리며 말합니다.
"맞아. 엄마들은 한 장도 안 읽으면서
우리보고만 읽으라고 해."
차선이도 억울해합니다.
"말 안 해도 내가 알아서 읽을건데.
책 읽을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엄마가 '책 읽어라'하면 책읽을 마음이 딱 사라져."

"히햐~울 엄니 올해 여든 일곱 살 잡순 할메 맞어?
목청좋고 발음좋고
이제부터 엄니가 책읽어주는 할무니햐."
"내 하라믄 못 하까."
"아쭈우~ 좋아. 엄니 내가 기분 좋은김에 확 까주까?"
"머슬 까?"
"옛날에 엄니가 나 책 안 사줘서 서운한 맘 이거로다 몽창 다 까주께."
"까준다고?증말로?"
"그러엄 증말이지.~엄니 엄청 고맙지.~"
"응, 고맙다...... ."
"고마우면 엄니도 약속햐?"
"뭣을?"
"내가 죄가 많다. 이 말 하지마러.
철딱서니없이 없는 살림에 책사달라고 한 내가 나쁘지. 
엄니가 뭔 죄가 많다그랴. 그니까 앞으론 그런말 마러여.
아라찌이.
이거루다가 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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