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 주역 고등학생, 구두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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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주역 고등학생, 구두닦이
  • 이한수
  • 승인 2016.03.1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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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팩션] (11)마산 MBC 『누나의 3월』
 
오늘은 3.15의거가 일어난 지 5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나이 든 분들은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가 바로 떠오를 겁니다. 3.15부정선거, 4.19의거, 5.16쿠데타가 연이어 생각나면서 어제 그제 일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다 꿰어집니다. 군사정권 때 학창시절을 보냈으면 4.19, 5.16이 잊혀질 수 없지요. 그런데 요즘 청년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김주열’, ‘최루탄’ 정도가 단편적으로 기억될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공감되지 않은 과거는 단순 암기 사항에 지나지 않아 쉬 잊혀지고 맙니다. 온 몸으로 시대의 아픔을 겪은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공감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공감된 역사는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4.19를 그려낸 소설은 다수 있는데 3.15의거를 중심으로 그려낸 소설로 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작품이 없어 아쉬웠는데 마산MBC에서 만들어 방영한 『누나의 3월』을 만나게 되어 참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김주열 열사가 시위 도중 경찰에 의해 살해당할 때 나이가 17살입니다. 마산상고에 합격했는데 학교를 다녀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3.15의거 때 경찰의 발포로 죽은 12명 중 17세 김주열, 김종술을 포함하여 8명이 10대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월 28일 대구에서 처음 시위가 일어나고 3월 8일 대전, 10일 충주, 14일 부산, 15일 마산으로 확산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벌인 시위였습니다. 4월 18일 서울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 도중 정치 깡패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면서 시위는 대학생, 교수들에게까지 번지고 전 국민 궐기로 나아갔습니다. 꽃다운 학생들의 죽음으로 4.19는 시작되었고 결국 찌들대로 찌든 권력자를 권좌에서 몰아냈던 것입니다.
 
『누나의 3월』은 이 위대한 어린 영혼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고은 시인께서 노래한 인물들을 영상으로 되살려내고 역사의 진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구두닦이, 막일꾼, 다방레지 등 보잘것없는 하층 민중들이 시위에 앞장서는 이야기는 역사의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은 시인께서는 3.15 마산의거 시위에 앞장섰다가 산화한 김영길(당시 18세, 향도철공소 직공, 4.11일 2차 시위 때 총 맞고 사망), 오성원(당시 20세, 구두닦이, 3.15일 1차 시위 때 총 맞고 사망), 노원자(당시 18세, 마산 제일여고 총학생회장) 열사들과 악질 경찰 박종표(일제시대 친일 헌병보,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5.16 이후 석방), 신 형사(마산경찰서 사찰계 형사, 시위자들을 빨갱이로 만들기 위해 거짓자백 강요) 등을 실명으로 노래했는데, 열일곱의 어린 학생, 구두닦이가 민주 열사로 노래불리고 국립묘지에 모셔진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마산 3.15기념묘지 오성원 묘.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10pixel, 세로 231pixel
<마산 3.15민주묘지 오성원 묘>
 
마산 3.15민주묘지에 모셔진 구두닦이 열사 오성원의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길가는 나그네여 여기 길 잃은 민주주의를 찾으려다, 3월 15일 밤 무참히도 떨어진 21년의 꽃봉오리가 누워 있음을 전해다오.’ 이 나라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은 적인 없는 젊은이가 청춘을 나라에 받쳤습니다. 그의 죽음을 마주하며 저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철없던 젊은 시절은 오탁번 시인의 4.19 역사소설 「굴뚝과 천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출세를 위한 공부에 매달려 혼탁한 세상의 불의를 외면하던 한 대학생이 운동권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며 제 비겁한 삶을 부끄러워하는 이야기는 저를 참 아프게 했더랬습니다. 지금 또 고은 시인의 『만인보』, 3.15 역사드라마 『누나의 3월』이 고자누룩한 제 일상을 따끔하게 깨웁니다.
 
나는 하루 150환을 버는 막일꾼이올시다. / 구공탄 배달하는 막일꾼이올시다. / 허위어위 / 비탈길 오르면 / 한겨울에도 내 몸에서 하얀 김이 한 소쿠리씩 피어납니다. / 나는 구공탄 친구올시다. / 나는 구공탄 쓰는 / 언덕빼기 가난한 집들 친구올시다. / 내 자식놈은 야간학교 고학생이올시다. / 김영호올시다. / 구공탄 배달 김위술의 아들 김영호올시다. / 마산 남성동 파출소 찾아가 / 어느 놈이 내 자식 죽였느냐고 / 부르짖는 내 마누라마저 / 수갑 채워 형무소 보낸 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이올시다. / 내 자식 총 맞은 뼈 그대로 / 땅에 묻었습니다. / 마누라는 콩밥 먹고 나왔습니다. / 정신 나가버렸습니다. / 나는 구공탄 리어카 끌고 / 오르막길 오르고 / 내려막길 내려갑니다. / 영호야 / 영호야 / 영호야 / 속으로 불러봅니다. / 소리내어 불러봅니다. / 오늘 빈 리어카하고 나하고 비탈길 굴러버렸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 나는 자식 잃은 막일꾼이올시다.
『만인보』 中 <김위술 - 3.15 사망 학생 김영호 아버지>
 
『누나의 3월』은 우리 역사의 진실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당시 시위 주모자로 구속된 사람은 총 28명이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20세 미만의 학생과 청년노동자, 무직 청년들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친일 앞잡이였던 경찰은 이 순박한 젊은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사건을 조작하려고 했습니다. 죽은 학생의 호주머니에 이상한 쪽지를 집어넣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몰아가기
까지 했답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까지 팔아먹은 자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뻔뻔한 짓을 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권세가들이 더럽힌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이들은 보잘것없는 신분의 민중들이라는 역사의 진실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투표장 앞에서 뇌물을 돌리면서 공공연하게 여당 후보 지지를 강요하는 행위라든지 짝을 지워 기표소에 들어가게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부정선거 행태를 보여 주고 있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들에 비하면 이런 장면은 한낱 우스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거 때마다 강력한 경쟁 후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등 감춰진 뒷얘기는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할 정도입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4.19 혁명 50주년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100418.HDTV.XviD-SeSang™.avi_000512623.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24pixel, 세로 352pixel
『누나의 3월』 기표소 장면
 
 
『누나의 3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방 레지 ‘허양미’와 동생 ‘양철’이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양철이 같은 어린 고등학생이 시위 중 체포되어 경찰에 끌려가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진술하도록 고문을 받은 건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양미 씨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평소에 다방에 드나들며 치근대던 ‘박종표’ 형사에게 동생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악질 경찰 박종표는 양미 씨를 위해 동생을 살려내겠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는 인간의 정리(情理)를 손톱 밑의 떼만큼으로도 보지 않는 냉혈한에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말종입니다. 양미 씨는 아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던 김주열 군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한테서 ‘박종표’가 독립지사들을 고문했던 일제 헌병 ‘아라이 겐뻬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고 자신의 처사가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수치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4.19 혁명 50주년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24pixel, 세로 352pixel
『누나의 3월』 발포 장면
 
그 어린 김주열 군을 살해한 자는 친일 앞잡이 마산경찰서 경비 주임 ‘박종표’입니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밤 1차 시위 때 마산시청 앞에서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를 지시한 이가 바로 그자입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발포 책임을 추궁당하자 시위대가 던진 돌에 총탄이 비껴나가 발생한 사고사라고 진술하는 그의 뻔뻔함이 참 가관이었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즉사한 김주열 군의 시신에 돌을 매달아 마산 앞바다에 유기한 놈이니 그런 말장난이야 대수롭지 않겠지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도 저리 뻔뻔한 작태는 그의 배후 이승만의 치욕스러운 권모술수를 빗대는 것으로 읽혔습니다.
 
종신토록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이승만의 탐욕은 젊은 시절부터 유명짜했습니다. 권모술수로 미국 유명 대학 학위를 얻어내고, 깡패 짓까지 하며 하와이 독립운동단체 실권을 장악하여 독립운동 후원금을 착복하고 제 권력을 위해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짓까지 했으니 그의 권력욕은 실로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안하무인의 그를 쫓아내는 위대한 일을 10대의 젊은이들과 날품팔이 민중들이 해냈습니다. 걸핏하면 입맛 당기는 걸 찾고, 인공지능 시대 운운하며 풍설을 논하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몸으로 부대끼지 않는 삶은 거짓이요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식자들 중에 오욕의 역사를 배설한 그를 국부로 추앙하며 건국의 아버지 사모곡을 만들자고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참 가긍할 노릇입니다만 지금 여기 나부터 자성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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