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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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의 대화
  • 이세기
  • 승인 2016.03.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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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⑬] 이세기 / 시인


▶ 덕적도 능동 소사나무 방풍림
 


나는 섬이 두렵다. 무너진 섬집을 볼 때마다, 섬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을씨년스러운 빈집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어쩌다 섬에 가서 섬주민과 만나 대화라도 나누면 이구동성으로 살기가 어렵다는 하소연뿐이다. 이 곤혹스러움이란!


섬사람들의 화제 역시 뭍과 다를 바 없다. 주로 먹고 사는 일이다. 일자리가 없는 것은 섬이나 육지나 마찬가지다. 점점 노령화되어 섬이 활기를 찾지 못하는 것도 큰 고민거리다. 그나마 있었던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어 아이들 뛰노는 소리조차 없고, 신생아의 울음소리도 끊긴지 오래다. 적막이 따로 없다.


섬토박이와 외지에서 온 주민이 각자 한 마디씩 한다.
 

“저도 곧 떠납니다. 일이 없어 밥 먹고 살기조차 어려워요.”
 

“정붙이고 살기가 쉽지 않아.”
 

다들 어두운 말뿐이다. 다들 떠날 채비뿐이다.


섬사람들은 서로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 섬에서의 경험이 유사한 이유도 있겠지만, 포기한 것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섬에 사는 것이 자랑이 되진 못해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 하지만 딱히 대책이 없어 좌절감을 느낄 뿐이다.


“건작을 해 보죠. 해풍에 말려서 여행객들에게 팔면 수입도 될 거고.”
 

“물고기가 잡혀야지.”


대뜸 대꾸하는 말에 불만이 가득하다. 현지 사정을 모르는 소리라는 일침이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뭐 하나 내 놓을 것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말인 즉, 오늘날 덕적도를 비롯하여 인근의 섬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바다를 뒤집는 모래 채취 탓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고기 산란터를 뒤집어 놓으니, 물고기가 자라겠어.”
 

해사 채취는 물고기의 산란을 방해하고 섬 또한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한숨 섞인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해변에 앙상하게 드러나는 바위투성이는 어쩌구.”


평생 서포리 해수욕장에서 민박을 하면서 살았다는 원주민도 거들었다.
 

“한창 전성기 때에는 부엌과 안방까지 내줄 정도로 왁자했어요.”
 

곁에서 가만히 듣던 노인은 꽃상여 나가던 시절도 이젠 끝났다고 손사래를 쳤다. 상여가 나가는 날에는 집집마다 떡을 해오던 풍습이 있다고 하고, 상여를 장시하는 지화(紙花)도 서로 품앗이로 만들었단다. 섬공동체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쯤 속내도 드러낸다.
 

“당최 섬이라 해봤자 뭐 내세울 것이 있나, 먹을 것, 즐길 것, 온통 없는 것 천지인데, 누가 오겠나 감옥이 따로 없지.”
 

굴, 바지락 등 섬만의 토속음식을 내놓아야한다는 것을 알아도, 촌로들은 고된 노동으로 “뼈가 시리다”며 이젠 갯바탕으로 일을 갈 수 없는 처지라했다. 갯바탕에서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없는 탓도 크다. 그래서일까? 섬사람들의 인정도 예전만 못하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섬이 사납게 변하고 있다고 한마디씩 거든다.
 

“외지인들이 정착하기 어려워요.”
 

모처럼 섬에서 살겠다고 들어왔지만 정 붙이고 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섬토박이 따로 외지인 따로가 문제라는 것이다. 외지인은 외지인대로 원주민인 섬 토박이들은 토박이대로 서로 무관심하고 이방인 취급하기 일쑤다.
 

섬에서의 대화는 뜨겁다. 대개는 어떻게 하면 섬을 살릴 것인가 고민을 토로하지만 곧 무참히 무장해제 된다. 섬사람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고, 고립감만 커진 탓이다. 하지만 이 모든 섬사람들의 하소연의 밑바탕에는 차별이 깔려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세상에서 묻히기 일쑤라는 것을 섬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섬은 점점 어둡게 물들어 간다. 뭍은 화려한 마천루로 불야성을 이룰 때, 섬의 하루는 고요히 묵화처럼 저문다.
 

세상과의 대화라는 것이 알고 보면 한 줌 재만치도 못하다. 작고 작은 바람이다. 낙도 오지는 옛말이지만 이제는 극심한 소외가 섬을 슬프게 한다. 뭍과 섬이 마음을 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쇠해 가고, 자리깨나 꿰차고 있는 자들의 목소리만이 온통 세상에 바글바글하다.
 

오늘은 왠지 외딴 섬, 가난한 마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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