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할머니들이 애기들처럼 그림책 시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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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할머니들이 애기들처럼 그림책 시간을 기다립니다
  • 김인자
  • 승인 2016.03.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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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설레는 데이트(2편)

올해 들어 처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그림책을 읽어드리러 왔습니다.
인천시 남구 주안에 있는 부곡 경로당입니다.
열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번을 정해 점심도 해서 드시고 얘기도 하시고 운동도 배우고 즐거이 놀다들 가십니다.
오늘은 할머니들이 감기에 걸리셔서 세 분이 못 오셨네요.
"할머니들 이제 다 오셨어요?"
"아니, 서너 명 더 올거야."
"다들 늦어. 감기걸려가지고."
"어제도 한 명이 죽었어."
"돌아가셨다고요? 어제여?"
깜짝 놀라 쳐다보는 내게 할머니들은 그게 뭐 별거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씀하십니다.
"죽는게 뭐 대수냐?
갈 때 되믄 다 가는 것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 눈이 제게는 그렁그렁해보입니다.

"할머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 구십 너잇."
"우와~ 구십 넷이여? 할무니,진짜 동안이시다. 할무니 칠십도 안되보이세요."
"무슨~ 쭈글쭈글 쭈그렁 밤탱이구만.쩍쩍 갈라진 논바닥이여."
무슨~ 하고 이렇게 말씀하셔도 어려보인다는 말에 기뿌게 웃는 할머니 얼굴이 복사꽃처럼 환하게 이쁩니다.
"할머니는요?"
"나는? 용띠여."
"용띠여? 그러면 어디보자 심계옥엄니가 팔십 칠세 말띠니까 용띠믄 두 살 위니까 팔십 구세?
우와~ 부곡 경로당은 물이 좋은가봐여. 할머니들이 모두 다 튼튼대장님이시네여."

그런데 할머니들 대화에 끼지 않으시고 멀찌감치 저짝에 떨어져 앉아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얌전히 앉아있는 할머니의 연세는 아흔이시랍니다.
할머니의 성함은 모상례.
"할머니, 앞치마 진짜 예뻐요."
"이뻐? 밥 당번이여."
그러고보니 할머니들이 잡수실  밥을 준비하는 부엌에서는 기름냄새가 지글지글 납니다.
"할머니, 오늘 반찬은 뭐예요?"
"별거읍서. 콩나물국하고 괴란튀김."
"근데 남의살 굽는 냄새가 나는데요. 이건 분명 생선튀기는 냄샌데?"
"읍서.어제 몽창 다 먹어뿌렀어."

"근데 이뿐 삭시가 오늘 왜 왔어?"
"만화책 읽어준디야~~"
"아녀 애기들 책이리야~"
아흔
아흔 넷, 아흔, 여든 아홉 할머니들이 꼬마 애기들처럼 이뿌게
앉으셔서 그림책읽어주는 시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잘 드러눴네."
"나는 저렇게 못 드러눠. 허리가 아파서."
"저 할마씨는 돈많은 집 할망구가봐."
"왜?"
"입성이 그르찮어~"
우리 할머니는 비싸요~표지그림을 보며 할무니들이 이러구 저러구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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