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에스페란자호와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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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에스페란자호와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며
  • 김연식
  • 승인 2016.03.20 10: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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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에스페란자(Esperanza). 새로운 희망 - 김연식/그린피스 항해사


<인천in>이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33)와 함께 <위대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3월21일부터 격주 연재하며,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작년 10월, 한국인으론 최초로 에스페란자호 항해사가 된 김연식씨는 인천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과 동시에 인천일보에서 취재기자로 3년간 일했습니다. 사직하고 한동안 청년백수 생활을 전전하다가 전 세계를 두루 구경하겠다는 꿈을 품고 부정기 벌크화물선 선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5년 승선경험을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예담 2015)'로 펴냈습니다. '지구별 항해기'로 2012년 제47회 신동아 논픽션에, 또 단편소설 '흥남27호'로 제 8회 해양문학상에 당선되기도 한, 기대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2002년 2월에 출항한 에스페란자호는 은퇴한 '그린피스호'를 대체한, 그린피스 선박들 중 가장 큰 선박입니다. 에스페란자(Esperanza, 스페인어로 '희망')는 그린피스의 온라인 서포터들이 이름을 지어준 최초의 배입니다.



# 푸른 눈, 노란 머리의 선원들

2015년 11월 1일. 그린피스 에스페란자(Esperanza)호는 태평양 동쪽 바다를 항해한다. 배는 콜롬비아를 지나 페루 연안을 따라 남쪽 칠레를 향하고 있다. 이 일대는 혹등고래가 출몰하는 지역이라 속도를 높일 수 없다. 나는 천천히 적도를 향해 배를 몬다.

대서양에서 파나마운하를 건너 태평양으로 넘어온 지 이틀째. 주말이라 선상 바비큐파티가 열린다. 주방장 다니엘(멕시코)이 선미 넓은 공간에 숯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는다. 선장 조엘(미국)과 기관장 벤트(독일)를 비롯해 이탈리아, 러시아, 호주, 스페인,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15개국에서 온 선원이 그 주변을 둘러싼다. 고기 굽는 냄새가 퍼질수록 흥분한 기색이 돋는다. 각자의 악센트를 담은 영어로 배는 시끌벅적하다.

승선한지 사흘밖에 안 된 나는 아직 영어가 불편하다. 그 틈바구니에 벙어리 삼룡이가 되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마냥 신기하다. 내가 어쩌다 피부색 다른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먹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바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상업 선박회사에서 항해사로 일하던 내가 말이다.


# 목적이 이끄는 삶

내가 그린피스의 선박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6개월쯤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부정기 벌크화물선에 승선하고 있었다. 길이가 200미터도 넘는 대형 상선을 타고 지난 5년간 전 세계 36개국에 기항했다. 큰 바다를 항해하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항구에 상륙했다. 그 이야기를 모아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예담, 2015>라는 책을 탈고하고 난 후였다.

나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졸업과 동시에 지역 신문 인천일보에서 3년간 취재기자로 일했다. 그런 내가 엉뚱하게 선원이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닌 이유는 오직 하나다. 온 세계를 두루 구경하고 싶다는, 철딱서니 없는 바람에 취한 나는 멀쩡한 신문기자직을 버리고 부산으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바라던 대로 부정기 화물선을 타고 지구 구석구석을 누볐다.

남들은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찼고, 더러는 배를 타면 돈이라도 벌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허나 단언컨대 나는 한 번도 배를 타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받은 월급에 취한 적 없다. 물론 5년간 항해사로 일하면서 젊은 나이에 만져보기 힘든 거액의 연봉을 받았다. 목돈을 모으고 나서도 나는 재테크니 부동산이니 하는 것에 기웃거리지 않았다. 나는 세계 방랑에 흠뻑 빠졌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데만 전념했다.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꼭 한번 책으로 내고 싶었다.

인도와 미국, 호주, 네덜란드, 브라질, 일본, 두바이, 이집트. 36개국이면 바다를 접한 주요 나라는 다 가본 셈이다. 결국 나는 우여곡절의 항해와 그보다 갑절이 넘는 파란중첩 끝에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를 통해 책을 발간했다.


# 아무도 꾸지 않은 꿈

욕심일까? 아니면 꿈의 진화일까? 인생의 목표였던 책을 썼으니 이제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그린피스가 번쩍 떠올랐다. 그간 뉴스와 다큐멘터리에서 그린피스라는 국제 환경보호단체에 대해 얼핏 들었던 것이 마침맞게 생각났다. 그 길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 그린피스의 활동을 둘러봤다.

이 단체의 선박은 남태평양에서 불법 참치어선과 대치하며 어자원을 보호하고, 북극해에서 석유를 시추하려는 선박에 올라 마지막 청정바다인 북극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을 벌었다. 과격하고 때로는 위험한 활동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빠져들더니 어느 순간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게 확 올라왔다. 이게 뭔가 싶었다. 한번 마음이 기울자 나는 밤이 깊도록 마우스를 놓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전부 찾아보고, 그린피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샅샅이 구경했다. 그 날 그린피스에 환경감시선 세 척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당연하게 지원서를 썼다. 에스페란자(‘희망’이라는 뜻)라는 배가 유난히 끌렸다. 이미 내 마음은 에스페란자에 있었다.

물론 부모님의 반응은 달랐다. 서울 변두리에 아파트를 장만했고, 뜻하던 대로 책도 출간했으니 이제 남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며 평범한 삶으로 돌아오길 바라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단꿈에 젖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배를 타기로 작정했을 때처럼 나는 다시 한번 확고한 꿈에 빠져들었다. 처음 배를 탄다고 했을 때도 모두 반대했는데, 나는 그 반대를 무릅썼기에 힘든 상황에서 돌아갈 수 없었다. 큰소리 쳐놓고 맨손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어느덧 반대를 무릅쓰는 걸 즐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번에도 큰소리 치고 안정된 삶의 항로에서 뛰쳐나왔으니 나는 내가 바라던 바를 이루리라 직감했다. 나는 다시 힘차게 칼을 뽑은 것이다.



<그린피스 에스페란자호 선원들. 아랫줄 오른쪽 세번째가 필자> 


# 찬란한 꿈, 비루한 현실


숙고에 숙고를 거쳐 자기소개서를 썼다.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끝에 연애편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명문대에 가겠다 싶고, 이렇게 연애를 하면 김태희도 꼬실 수 있을 것 같았다(물론 심정적으로만 말이다). 그렇게 간절한 기원을 담아 떨리는 마음으로 ‘보내기’버튼을 눌렀다.

이메일을 보내고 부터는 스토커로 변신했다. 제대로 보낸 건지 궁금한 마음에 매 시간마다 ‘수신 확인’을 눌렀다. 조바심이 났는지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식당에서, 영화관에서 수도 없이 ‘수신 확인’을 눌러댔다. 그러기를 며칠. 실망스럽지만 끝내 아무도 내 메일을 열지 않았다.

스토킹의 시작은 관심, 탐색, 접근, 접촉, 집착이 아니던가(미리 밝히지만 스토킹을 해본 적은 없다. 정말이다). 자연스레 집착이 생겼다. 그래. 이메일로 안 되면 전화다. 그린피스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우리보다 7시간이 느리다. 우리 오후 4시에 암스테르담은 오전 9시다(썸머타임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대표번호로 전화했다. 교환원이 받았다.

-해사부 직원들은 아직 출근 안했습니다.
-아, 네.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할게요.
한 시간 뒤.
-아까 전화했던... 해사부 찾던...
-아, 네. 지금 회의 중입니다.
-아, 네... 그러면 오후에 다시 연락할게요.
그리고 오후.
-아까 그.. 해사부...
-아, 전부 외근중입니다.
-네, 그러면 메모 좀 전해주세요. 저는 한국에 사는 김연식이라고 하는데, 선원 지원서를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달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뚝!

이런 통화를 일주일 넘게 반복했다. 나중에는 말이 점점 짧아져서
-여기 한국. 해사부 좀.
-또 너니? 없어.
-응. 메모 전해줘.
-알겠어. 안녕.
이렇게 단어만 나열해도 대화가 되었다. 교환원 놈이 정말로 메모를 전해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낸 이메일의 ‘읽지 않음’ 표시는 바뀌지 않았다.


# 교통사고처럼 찾아 온 인생의 반전

그 사이 뜨거웠던 마음은 점점 식어버렸다. 가만 생각하니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바로 에스페란자에 승선할 수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세상에 뜻대로 척척 되는 일이 어디 많겠는가. 제 방귀조차 뜻대로 되지 않아 망신을 사는 판에 말이다.

평생 열심히 잘 살아왔으니 나를 둘러싼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한다고, 내 주변은 내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 일, 꿈, 그리고 일상조차도 내가 완벽하게 주무를 수 없다. 주방에서 칼에 손가락을 베거나, 운전하다 사고가 나거나, 문틈에 손가락을 찧거나, 아차 하는 순간 커피를 엎거나 넘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세상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님을 아프게 깨닫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핑계 삼아 뜨거워진 마음을 슬슬 거두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상선을 오래 타고 내려 3개월간 휴가를 보내고 있었고, 일하던 회사에서는 다음 승선 일을 잡아 놨다. 마침 선원 교대가 늦어져 10월 초순까지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 이제 며칠 후면 다시 부정기 화물선에 오른다. 나는 군 입대를 앞둔 것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승선 일만 기다리며 지루한 나날을 보냈다.

그날도 그런 나날의 어디쯤이었다. 정말 무료해서 뜬금없이 우박이라도 한 대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도 심심해서 선박에서 9개월을 같이 보낸 동료 선원을 만나러 나갔다. 이건 휴가 나온 군인이 서울에서 군 동료를 만나는 겪이랄까. 노량진 육교 근처 커피집에서 남자 둘이 어색하게 앉아있는데 정말 고맙게도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아주 요란하게 말이다. 이런 어색한 때에 누가 나를 찾아주나 반가워서 전화기를 꺼냈는데 네덜란드 번호였다.

-우리 선원 중에 네덜란드에 기항한 사람이 있나?
-보이스피싱 조직이 중국을 넘어 네덜란드까지 간 모양인데?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몰려왔다. 보이스피싱 조직이면 어떻게 약 올릴까 생각하며 통화버튼을 누르는데 뜻밖의 말이 나왔다.

-Good morning, This is Greenpeace international. (안녕하세요. 여기는 그린피스 본부입니다.)

숨은 진작 멎었고, 나는 이 때 난생 처음으로 2초쯤 시간이 멈추는 희귀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답했다.

-아, 옛쓰 옛쓰. 디쓰이즈 김연식. 아... 굿모닝, 아... 굿모닝... 땡큐 땡큐.

초라한 몇 가지 영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식어가던 열정이 몇 초 사이에 기름 부은 것처럼 후끈 타올랐다.
인생의 반전은 교통사고처럼 찾아왔다. 허나 교통사고도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길바닥으로 나와야 일어난다. 그날 예고 없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2편에 계속



<칠레 발파라이소항에 도착해 묘박하고 있는 에스페란자호>


   <갓 승선한 선원들>


<다국적 선원들의 저녁식사. 주로 서양식 요리가 나온다. 이날을 일요일이라 간단히 9가지 피자가 나왔다. >


<칠레 발파라이소항에 상륙한 선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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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혁 2016-03-21 15:23:19
대전집에서 처음만나 소주한잔 하면서 그린피스 얘기를 했던것 같은데 결국 꿈을 이루었네요. 항해를 축하 드립니다. 힘차게 나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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