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햇살 따땃한 베란다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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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햇살 따땃한 베란다에 앉아
  • 김인자
  • 승인 2016.03.29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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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할머니의 책읽기
"엄니~ 거기서 뭐햐?"
"햇살이 여그까지 걸렸다."
일층에서 윗층으로 이사와 안 좋은건  심계옥엄니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실 줄 몰라 일 층 살 때처럼 심계옥엄니 맘대로 나다닐 수 없다는 것이고
이사와서 좋은건 동향집에서 살 때 많이 아쉽던 해를 새집에서는 실컷 많이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참 좋은거 같다.
"맘이 다 환해지는거 같구만."
심계옥 할무니 봄햇살 따땃한 베란다에 앉아 강아지 감자에게 책을 읽어주고 계신다.

"이게 모다냐?"
"홍삼~ 심(힘)이 쎄야 책도 잘 읽어줄거 아닌가배.언능 쪽 빨아 잡숴."
"이걸 먹으믄 힘이 쎄져?"
"그람, 힘이 쎄지지."
"그라믄 니가 먹어라. 나는 이거 안묵어도 모든지 잘 먹으니께."
"뭔 말이디야. 나야말로 뭐든지 잘 먹어서 이딴거 안 먹어두 힘쎄야. 엄니나 언능 드셔."
"나는 되았다. 너나 먹어라. 자꾸 어지럽담서."
"아고, 저기 또 있어여. 그니까 엄니 언능 드셔. 책도 힘 많아야 읽는 것이여. 어트게 계란 한 판 드실래 엄니?"
"계란은 왜?"
"목청이 좋아야 낭창낭창 감자한테 책을 잘 읽어줄거 아닌가배."
"그렇다고 계란 한 판을 먹어야?"
"이왕지사 먹는거 한 판은 먹어줘야 목청이 화악 트이지 ~"

"아이고 니가 어릴적 부터 읍는 살림에도 통이 억수로 컸니라."
"무슨?"
"니가 대여섯 살 때였는가
집에서 노는가 암신경도 안 썼는데 일하다보니 니가 읍(없)서 진거야.
깜짝 놀라 나가보니 계란장수 앞에 니가 철푸덕 앉아서 계란을 앞 뒤로 구멍내 쪽쪽 빨아먹고 있드만. 그러고 날 보더니 하는 말이 엄마 계란 값~이러더라고."
"내가 진짜 그랬다고?"
"진짜지, 그럼. 어린게 겁도 없이 계란 한 판을 외상으로 먹고 앉았더라니까."
"내가 벨나긴 했나보네."
"니가 그랬다. 어릴때 부터 좀 유별났니라."

홍삼 한 개 빨아드시고 심계옥엄니 책을 읽으신다.
한글도 몰랐던 심계옥엄니,국민핵교 가는 남동생 책보자기 빨아주며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었다던 심계옥엄니.
국민핵교도 못가 한글도 몰랐던 심계옥엄니의 까막눈을 번쩍 뜨게 해준건 우리집 큰딸 민정이다.
지금말고 심계옥엄니 나 시집보내고 시골에 혼자 사실 때 우리 큰넘이 일 년 동안을 매일밤 즈이 할머니께 전화로 그림책을 읽어주었었다. 그게 벌써 우리 큰 넘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이 글자가 왜케 쪼그라 들었어? 너도 나처럼 늙은 것이냐"
"꽤나 더듬네. 하하."
"너도 웃기냐? 감자야~"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심계옥할무니옆에 강아지 감자가 신통방통하게도 어디 안가고 심계옥할무니옆에 딱 붙어있다.
이렇게 내 생애 기뿐 오늘이 또 흘러가는구나.
기분도 좋은데 계란이나 한 판 삶아먹으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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