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으로 둘러싸인, 신포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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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으로 둘러싸인, 신포동 일대
  • 유광식
  • 승인 2016.09.09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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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소요] (4) 유광식 / 사진작가

 
   2012_항동(신포역 지상)_ⓒ유광식
 
 
이번 여름엔 폭염을 탓하며 지낸 날이 많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한 바람에 당황스럽다. 이 가을이 이렇게 툭! 안긴다. 비슷하게도 인천이 내게로 툭! 안긴 경우다. 인천 하면 떠올려지는 몇몇의 동 가운데 으뜸은 단연 신포동이다. 여기서 신포동은 신포동만이 아니고 주변 지역(중구)을 통틀어 일컫는 고유명사격이다. 7~80년대 신포동(이하 동인천권) 하면 인천의 메카라는 이야기를 곧잘 듣곤 한다. 그런데 지금은 번성보다는 반성의 사건이 많아진 느낌이다. 2005년쯤부터(응봉산 자유공원정상 진입차도를 없애기 이전)였는데 좌우 이념대립으로 말미암은 맥아더동상 철거 논란이 심각했다. 그 좁은 응봉산 정상에 진보와 보수 그리고 경찰까지 진을 치고 맥아더 동상을 어쩔 줄 몰라하는 기억으로부터 나의 신포동 일대기는 출발한다.


 
2011_내항부두 일대_ⓒ유광식
 
2015_신포시장_ⓒ유광식
 
자주자주 올랐던 응봉산 정상! 기상대와 내항부두, 건너 월미산, 중구청 일대를 관망하기에 좋다. 공원 곳곳에는 어르신도 많고 비둘기도 많고 천천히 걷는 연인과 중국 관광객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사시사철 크고 작은 행사가 펼쳐지고 이념의 대립양상도 심심찮게 조망할 수도 있다. 오랜 동네이다. 가끔은 찬 공기 속 새벽녘을 걷고 있는 것처럼. 슬며시 노니는 고양이들, 바쁜 사람들, 비밀스런 골목길 등이 켜켜히 쌓여 오밀조밀해 작고 강한 곳. 신포동 일대를 얘기해 달라면 부모세대는 한마디씩은 거들 수 있을 것이다. 나야 닻을 내리고 첫 발을 디딘 것처럼 설렘이 가득했으나 5년여(2011~16)의 거주민으로 지낼 적에는 이해의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이 일대 정말이지 화합과 다름, 교란이 많은 곳이다. 역동의 지점으로 덮어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나름의 토착심이 내포된 우위감에 어떤 경계심도 심심찮게 감지된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마을이기 앞서 번지르한 '시스템 공화국'에 와 있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영화 ‘트루먼 쇼/1998’가 생각난다.) 알 수 없는 손아귀, 도전과 도약, 버무려진 생활상에서 현재는 상당히 자본화 되었기에 말이다.

 2016_경동_ⓒ유광식


지난 7월말 개봉영화 중에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과거 한국전쟁 맥아더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인데 논란이 된 영화다.(논란도 전략인지 1달여 만에 누적관객수 700만이다.) 10년 전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올해 영화를 보는 시각이 번갈아 교차되는 이유는 뭘까? 1883년 개항 후 인천은 강제와 자력으로 크게 변모하였고 그 처음과 중심은 곧장 신포동 일대가 되었다. 여전히 근현대 시대의 유무형 자산과 먹거리 풍부하기로 소문나 영화촬영, 역사교육, 여행지 등으로 활기가 있다. 전국 최초의 지하상가가 건립되었고 종교, 교육, 체육, 문화, 철도 분야 등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너무)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랬던 곳이 시청사 이전(1985)과 인현동 호프집화재참사(1999) 이후 침체기였으나 근래 다시 생기가 돌아오고는 것 같다.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은 국민외식처가 된지 오래고 (재)인천문화재단 사무공간이 구월동에서 해안동으로 옮겨(2010)지면서 관련 인력과 연관시설이 집중되면서는 문화예술 분야 약진의 발판이 되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잘못 해석되고 파괴하는 행태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여름, 우현로 35,39번길에 대한 개항각국거리 졸속 조성을 강행하려는 시도에 지역의 반발이 있었다. 잠시 주춤했다지만 1년이 지나 그 사업은 이름만 달랐지 완공 되었다. 배회하던 자본은 신포동 일대를 하나하나 잠식하며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꼬아 버린다. 이것만이 아니다. 개선이라는 이름하에 멀쩡하던 건물을 허물고, 터를 갈라놓는 배다리 지역 산업도로 문제와 생활취약계층이 많은 응봉산 서북쪽 기슭 송월동 일대에는 온갖 캐릭터를 모아 동화마을로 명명하더니만, 정부종합청사에서 표창까지 받는 모습에 선정한 정부나 웃는 자치구나 매한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마을은 더하기만 있으면 안 된다. 사칙연산이 가능해야 마을이다.



2015_중구나라 우주상사_ⓒ유광식

 
최근 수인선 구간이 개통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환영했다. 한편 월미은하레일사업은 부실시공과 안전문제로 7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데 그동안 운행도 못한 차량이 녹슬어 고철로 팔리는 신세가 된다. 철거와 존치로 맞선 상황에서 모노레일로 개통은 한다는데 한 번 지켜볼 일이다.(7월말 개통한 인천지하철 2호선도 아직은 안전 불안이 있다.) 하여튼 응봉산 자락을 중심으로 신포동 일대는 교통 접근성도 좋아졌고 과거 인천사의 현장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다양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신포동을 주제로 창작에 열을 내고 있다. 자연스레 생활과 활동의 주 근거지로서 많은 이해관계가 발생하고 이에 연유한 마찰은 덤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의 두터움이 짙은 장소인지라 섣불리 얕보고 날뛰다가는 지나는 어르신한테 뺨을 한 대 맞을 수도 있는 곳이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감과 소스를 주는 곳으로 이만한 장소가 없다. 신포동 일대는 작지만 손색이 없는 작은 인천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다양성은 그 어떤 풍성함을 쏟아 붓지만 매번 좋은 방향만은 아니다. 수인선 개통은 신포동 주변 점포의 임대료 상승을 가져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낳고 있다. 한편 낙후된 시설의 점검과 보수는 필요하겠으나 부지불식간의 철거나 변조는 공간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큰 상실을 전한다. 신포동에는 흔한 일이니 혹시 상실의 공간? 중구청 뒤 아테네 모텔도 내게는 그런 곳이었다. 삼치거리 입구 옛 학교건물도 그랬고 자유공원 매점과 그 옛)동방극장 건물도 그랬다. 배다리 수퍼가 있던 빌딩도 그랬다. 그런 후 한결 같이 주차장이다. 주차장이 싫은 건 아니나 결국 차량유입을 증가시키고 가뜩이나 좁은 골목에 사람 아닌 괴물만 느는 형국이니 숨 막힌다. 이것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상념을 안겨 주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바람이 뛰고 나무가 발 뻗는 저녁에 여느 도심과는 다른 짙은 조용함에 맥을 못 출 정도로 취하기도 했으니깐. 사연이 생겼고 기억이 되었음에 이를 기록해 두고자 주변 인물의 인터뷰 작업도 자연스레 행해졌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한데 기록되니 배부른 소리가 난다.



2011_전동(응봉산 송신탑 옆)_ⓒ유광식
 

2014_우현로39번길(신포시장 옆)_ⓒ유광식


2016_내동(삼치거리 입구)_ⓒ김주혜
 
올해 초 중국 아오란 그룹의 직원 6,000명이 월미도에서 치맥파티를 연 일이 있다.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뤄진 행사인데 이후 시 차원의 맥주잔 조형물을 설치한다며 뭇매를 맞았다. 이거 아니고도 신포동 일대의 공공조형물 난립이 문제시 되는 형국에 하필 중국 건까지.ㅠㅠ 자꾸자꾸 자치단체장의 욕심대로 간다면 분명 맛있는 계란 대신 분란만 낳을 것이다. 시장의 활성화도 좋지만 대박일 필요는 없다. 상식의 선을 넘은 마음, 은근히 숨기며 취하는 행태는 반성해야 한다. 늘어만 가는 카페와 음식점이 우리의 삶을 배불릴 수 없는 것처럼.
 
신포동 일대는 이래저래 매 시끄럽다.(내가 지켜 본 이상 그렇다.) 시끄러움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 거주, 지역문화, 활동의 관점상 온당치 않은 판단이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소란이 정말 시끄러운 소란으로 남는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차분히 쌓인 시간(역사)과 일구어진 공간(마을), 산업(생활)의 내에는 여전히 기대가 존재한다. 10년여를 보아온 모양은 일그러진 영웅처럼 건강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신포동 일대의 소음이 기분 좋은 선율로 빚어져 인천의 자양 마을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늘 함께 했던 공기와 꿈, 그 전부의 놀이터가 지금도 아련하기만 하다.
 


2014_내동(내리교회 아래)_ⓒ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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