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회 배다리 시낭송회 열다
상태바
제 100회 배다리 시낭송회 열다
  • 신은주 시민기자
  • 승인 2016.09.25 0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정희 시인 추모의 시간으로



제100회 배다리 시낭송회’가 9월 24일 오후 2시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 ’ 책방의 이층 다락방에서 고정희 시인 추모 시낭송회로 열렸다.
 
고정희 시인은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중 뱀사골에서 실족하여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1979년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이후, 「실락원 기행」,「초혼제」,「이 시대의 아벨」,「눈물꽃」,「지리산의 봄」,「저 무덤위에 푸른 잔디」,「광주의 눈물」,「여성해방 출사표」,「아름다운 사람 하나」,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시집을 펴냈다.
 

김승희 시인은 고정희 시인을 “현대 여성주의 시의 야성적 개척자이자 인간을 억압하는 독재와 남근 중심적 자본주의의 재앙을 외쳤던 카산드라적 존재” “ 나혜석 이후 한국의 근대가 억지로 닫아놓은 판도라 상자를 자신의 예지와 용기로 과감하게 열고 판도라 상자 안에 숨겨 있던, 그러나 세상 밖으로 이미 나와 버린 재앙들을 하나하나 불러내며 그것들과 싸웠다. 또한 아직 판도라의 상자 안에 숨어있던 ‘희망’을 붙들고 뜨겁게 꿈을 노래하기도 했다. 그녀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비판적 고발과 풍자에만 머므르기에는 너무도 많은 유토피아적 꿈을 가진 ‘비전의 사람’으로 한국문학사에서 고정희 시인을 자리매김했다.
 
배다리 시낭송회는 2007년 11월 24일 첫 회를 시작으로 올해 햇수로 10년이 되었다. 10년 동안 이곳에 초대된 시인은 80명 정도 된다. 해마다 6월과 12월은 참석자가 시인이 되어 창작시를 낭송하고, 몇 년 전부터는 인천의 작고시인을 1년에 한 두 차례 추모하는 시낭송회를 열고 있다.
 
100회까지 시낭송회를 이끌어올 수 있었던 힘을 묻는 질문에 곽현숙 대표는 20대에 책방을 시작할 때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만난 고정희 시인의 시였다고 했다. 지금도 책방 일은 힘들지만 책속에 숨어있는 가치들이 너무 소중해서 책을 손에 쥐면 가슴이 아직 뜨겁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낭송회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100회 행사도 처음 배다리 시낭송회가 탄생할 때와 같이 소박했다. 오늘도 시낭송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변함없는 마음과, 처음으로 시낭송회를 찾은 사람들이 바쁜 생활속에서 얻은 보상이라고 표현해주는 마음들이 만났다. 앞으로도 배다리 시낭송회는 이 마음들이 모여 강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101회 배다리 시낭송회는 전방욱 시인을 모시고 2016.10.29.일 오후 2시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에서 열린다.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고 정 희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슬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 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 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